“미제(미국)와 남조선(한국) 녹화물(영상)을 퍼트려 공화국의 미풍양속을 해친 OO를 사형에 처한다.”
지난해 12월 평양시 낙랑구역에 있는 한 학교 운동장에서 이런 판결이 내려졌다. 이 지역 주민들은 당국의 명령에 따라 동원돼 말없이 공개재판을 지켜봐야 했다. 소위 ‘김정은식(式) 공포 정치’에 주민들이 그대로 노출된 것이다.
사형 판결을 받은 1명 외에도 외부 영상물 판매 혐의로 2명이 더 재판장에 올랐다. 이들은 징역형을 받았다. 외부 정보 유입에 따른 주민들의 의식 변화 가능성에 북한 당국이 상당히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 것으로 읽힌다.
18일 데일리NK 북한 내부 소식통에 따르면 최근 평양 및 주요 도시를 중심으로 외부 영상물이 유행하면서 이에 대한 당국의 단속과 처벌이 강화되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이 외국 정상과 회담에 나서고 해외 문화교류가 진행되는 등 북한이 대외적으로 개방적 행보를 보였던 것과는 달리 내부적으로는 오히려 고삐를 죄는 모양새다.
소식통은 “(지난해 4월) 예술단이 평양에 왔다 간 이후로 아래쪽(한국) 음악이나 연속극(드라마)을 마음껏 듣고 봐도 된다고 생각한 주민이 많았다”며 “하지만 바로 ‘보면 안 된다’는 식으로 으름장을 놨고 상황이 심각하면 체포하기도 해, 주민들이 의아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개혁개방’과 ‘교류협력’에 대한 주민들의 기대감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지만 정작 알 권리는 보장받지 못하고 있으며, 외부 정보에 대한 접근권도 침해당하고 있다. 북한 당국의 체제 유지 전략에 주민들의 정보 자유화는 점점 요원해지는 상황이다.
이 같은 움직임은 다른 지역에서도 포착되고 있다. 실제 지난 3일 북한 양강도 혜산시에서 불법 녹화물 시청 및 유포와 관련한 군중폭로모임이 진행된 것으로 전해졌다. (▶관련 기사 바로 가기 : 14세 청소년 군중 앞에 세워놓고 “한국 드라마 퍼트린 죄인”)
그럼에도 외부 영상물이 삽입된 USB와 SD카드의 시장 수요는 계속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주민들의 외부 정보에 대한 갈망이 더욱 커지고 있는 셈이다.
소식통은 “보위부와 109상무(외부 영상물 시청을 단속하는 조직)를 중심으로 엄격하게 단속하는데 오히려 메모리는 더 잘 팔리고 있다”면서 “부피가 작아서 단속될 위험이 적고 몸에 숨기기도 편해서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공개적으로 상점에서 유통되는 경우도 있지만 등록을 해야하고 단속과 통제도 심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시장에서 비공식적으로 유통되고 있다”며 “또한 시장에서는 가격을 흥정할 수 있어 주민들도 이곳(시장)에서 사는 것을 선호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번 공개재판에서는 마약 유통과 성범죄자에 대한 처벌도 이뤄졌다고 한다. 이와 관련해 소식통은 “얼음(필로폰) 밀매로 여성 한 명은 사형, 다른 한 명은 교화 판결을 받았다”면서 “미성년을 강간했다는 50대 남성 1명에 대해서는 사형 판결이 떨어졌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