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최강이라도 유엔 제재에만 기대선 안 되는 이유

I.
얼마 전 미국의 존 케리 국무부 장관과 중국의 왕이(王毅) 외교 부장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 제재결의안 초안’에 합의했다. 중국을 과거보다 더 강한 대북제재 동참에 설득시킬 수 있는 나라는 미국뿐이고, 미국의 대북 제재 의지를 변질시킬 수 있는 나라는 중국뿐이라는 사실 앞에, 북핵 문제 피해 당사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 착잡한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일단 이번 미중 합의에 대한 필자의 생각을 한 마디로 정리하면 이렇다: ‘회피주의 미국, 패권주의 중국’이 그것이다. 많은 언론들의 낙관적 기대와는 달리, 이번 유엔 대북제재의 근본적인 문제는 그 목적 설정이 잘못되어 있어 성공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점이다. 중국의 왕이 외교부장은 케리와 함께 이번 유엔 대북제재의 목적이 ‘6자회담으로 돌아가는 데’에 있으며 미국도 이에 동의하였음을 명백하였고, 실제로 케리 역시 명시적으로 이 점을 인정하였다.

그렇다면 이번 유엔 대북제재의 지속여부는 북한이 결정하는 것이다. 북한이 6자회담에 그 어떤 명분이건, 그 어떤 목적이건 일단 참가하는 것만으로도 이번 유엔의 대북제재는 종결될 수 있고 또 중국은 종결시킬 수 있는 명분이 있으며, 미국은 반대할 수 있는 명분이 없다. 간단히 말해 이번 유엔 대북제재는 죄수에게 감옥 열쇠를 준 것과 다름없다. 다른 한편 6자회담이 북핵문제 해결의 장이 아니라 늪이라는 점은 이미 지난 10년간의 6자회담의 경험으로 충분히 확인할 수 있었다. 북한은 6자회담을 하면서 핵개발은 물론, 하고 싶은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6자회담에 참여하는 순간부터 한국이나 미국은 다른 대안을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II.
여기에 덧붙여서 왕이는 ‘북핵문제의 해결은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는 것에 있음’을 강조하였다. 중국은 북핵 문제를 역으로 이용하여 한반도의 세력 판도를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게임의 기회로 삼아왔고 지금도 그렇다. 그러나 이번에 이런 기회를 마련해 준 것은 미국이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의하면 작년 북한이 4차 핵실험을 하기 직전에 미국에 ‘평화협정’을 제안하였고, 미국은 비핵화에 대한 논의를 하는 조건으로 이에 응할 수 있다고 조건을 달자, 북한은 협상을 접고 곧바로 4차 핵실험을 하였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북한이 미국으로부터 이미 확인할 것을 모두 확인했기 때문이다. 즉 미국이 북한과의 평화협상을 할 의사가 있다는 점, 북한의 핵무기가 미국을 평화협상으로 끌어낼 수 있는 확실한 수단이라는 점, 그리고 한국을 제쳐놓고 미국이 북한과 협상을 할 의사가 있다는 점이다. 북한의 입장에서 뭘 더 바라겠는가? 핵무기 보유를 기정사실화하고 미국을 겨냥하는 ICBM(대륙간탄도미사일) 실험을 하는 것이 바로 미국을 갖고 놀 수 있는 무기인데 할 수밖에 없다. 미국은 북한이 평화협상을 제의하였을 때에, 협상 거부는 물론이고 북한의 핵포기를 무조건 요구했어야 했다.

오바마 행정부는 이미 중동에서 결정적인 외교·군사적 실책을 범했다. 미국은 이라크에서 발을 빼면서 중동의 세력 균형 문제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고, 이라크의 치안과 안보는 이라크인의 문제라고 선언했다. IS가 급성장하게 된 배경은 바로 오바마 행정부의 무책임한 회피주의 중동 정책이다.

1970년대 초 미군철수를 위해 키신저가 주도한 파리협상이 월남적화의 시작이었듯이, 중동에서 미군 철수를 위한 오바마의 회피주의 외교가 중동의 세력 판도를 재편하고 있듯이, 핵위협을 수단으로 미국을 평화협상으로 끌어 들일 경우, 북한이 한국을 제치고 미국과 협상을 통해 적화통일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고 믿을 가능성은 매우 높다. 여기에 지금 중국도 회피주의 미국 외교의 틈새를 노리고 한반도 세력 판도 재편을 노골적으로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한국 정부는 물론 미국도 북한의 핵실험, 미사일 발사, 협상 제의 그리고 중국이 주도하는 6자회담, 한중FTA 체결, 유엔 대북제재 참여, 사드 배치 반대 등등이 한반도 장악을 위한 긴 스토리텔링의 일부라는 점을 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과 미국은 오로지 그때 그때 임기응변으로 반응하여 왔을 뿐이고, 양국 정부의 관심은 북핵 제거가 아니라 언론과 국민 여론을 다독이는 것뿐이었다. 만일 한국 정부가 진정으로 북핵 제거에 관심이 있다면, 어떻게 6자회담 복귀를 목적으로 하는 유엔 대북제재 초안을 긍정적으로 볼 수 있겠는가?

III.
박근혜 대통령은 북핵 문제 해결에 있어서 피해 당사국인 한국의 주도적 노력을 강조하였다. 그렇다면 한국은 이번 유엔안보리의 대북 제재안에만 목매지 말아야 한다. 그 대신 북한 정권이 붕괴의 위험을 실제로 느낄 수 있도록 한국의 독자적 조치들을 지속적으로 해서 기정사실화해야 한다. 그래야만 북한이 6자회담 복귀를 받아들였을 때에 한국이 6자회담을 무산시키고, 이를 이용하여 유엔 대북제재를 지속시킬 수 있다.

다른 한편 사드배치를 미국이 마지막 순간에 연기 내지 중단하였지만, 사실 한국정부가 미국의 조치에 대하여 반대할 명분도 없다. 얼마나 오랫동안 한국 정부는 사드배치를 중국과의 관계를 고려해서 미뤄왔는가? 사드는 일단 미군의 무기이다. 물론 미국도 중국과의 유엔 대북제재 초안 합의를 위해 사드를 정략적으로 사용한 것은 한국이 범했든 자충수를 둔 것이다. 한번 중국과 거래를 위해 사드배치를 스스로 포기하거나 지연시켰다면 사드배치가 필요할 때 중국으로부터 그런 요구를 받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중요한 점은 사드배치가 한국의 안보에 중요하지만, 이번 미국과 중국의 강대국 외교의 현실에서도 볼 수 있었듯이, 우리가 좌우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미국이 사드배치를 포기한다면 그것은 주한 미군의 안전을 포기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배치를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북한의 핵 위협시 미군이 한국에 없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따라서 미국이 안하겠다면 우리는 매달리지 말고 안보절벽의 도래를 막기 위한 더 큰 조치를 구상하는 것이 옳다.

여기서 박근혜 대통령은 왜 이승만 전 대통령이 반공포로를 석방하였는지를 잘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1953년 6월 미군은 6.25전쟁을 빨리 끝낼 생각만 하고 있었지 휴전 후 한국의 안보 문제는 크게 생각하지 않았다. 또 미군의 개입으로 한반도에서 결코 승리할 수 없다고 판단한 중공과 스탈린 사망 이후의 소련은 정전에 사실상 동의하고 있었다. 이 점을 간파한 이승만 전 대통령은 반공포로 석방을 통해 휴전협정체결을 위협함으로써 전후의 한국 안보의 인프라인 한미상호방위조약을 만들었다. 불과 몇 개월도 지속되지 않을 유엔 대북제재 같은 것에 의존하는 현 정부와 그 스케일과 발상의 참신성에서 얼마나 비교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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