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평안북도 신의주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African Swine Fever, ASF)이 확산되고 있다고 소식통이 24일 전했다. 북한 당국이 ASF 발생 사실을 공식적으로 확인한 바는 아직 없지만, 앞서 평양 부도심 및 외곽지역에서도 ASF가 발생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는 등 북한 곳곳에서 위험 정황이 포착되고 있다.
평안북도 소식통은 이날 데일리NK와의 통화에서 “이틀에 한 번은 꼭 시장에 나가보는데, 지난 금요일(17일)에 가보니 단속원들이 매대에 절대 돼지(고기)를 내놓지 말며 시장 밖에서도 죽어 있는 것이나 살아 있는 것이나 돼지를 사고팔지 말라고 했다”면서 “돼지고기를 팔지 못하게 단속하는 이유는 바로 돼지열병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다른 곳도 (돼지열병이) 돌았다는데 신의주는 이제 막 돌기 시작한 것 같다”며 “주민들한테 물어보니 평양에서 내려온 사람들과 방역하는 사람들이 돼지를 키우고 있는 개인집이나 농가를 돌며 약을 뿌리고 있다고 한다”고 전하기도 했다.
앞서 본보는 지난달 말 복수의 평양 소식통을 인용해 ASF가 지난 2월 중순부터 형제산구역과 승호구역 등에 돌기 시작했고, 살림집에서 기르던 돼지가 많이 죽어 주민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당시 이 소식통들은 북한 당국이 2월 말부터 돼지고기 유통과 판매를 전면 금지했고, 최근까지도 주민들이 기르는 돼지와 시장에 나온 돼지고기 등에 대해 단속을 이어가고 있다고 전했다.
ASF는 돼지과에 속하는 동물에게 나타나는 바이러스성 전염병으로, 치료제나 백신이 없어 급성형에 감염되면 치사율이 최대 100%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병률 또한 높아 일단 발생하면 양돈농가에 막대한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에 현재 우리 방역당국도 ASF의 국내유입 차단에 주력하면서 관련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ASF가 지난해 8월 초 중국에서 발생한 이래 몽골·베트남 등 인접국으로 확산했다는 유엔 산하 식량농업기구(FAO)의 보고서에 미뤄 북한 내 ASF 발생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으나, 현재까지 북한의 공식적인 피해 및 감염 사례는 보고된 바 없다.
다만 중국에서 ASF가 처음 발생한 곳이 북중 접경지역을 포함하는 랴오닝(遼寧)성이라는 점에서 ASF의 북한 내부 유입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일각에서는 북한이 노동신문 등 매체를 통해 주변국의 ASF 확산 및 피해 상황을 여러 차례 보도했다는 점에도 주목하고 있다. 내부에 발병 정황이 나타나면서 에둘러 주의를 촉구한 게 아니겠냐는 것이다.
실제 올해 들어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여러 차례 ASF와 관련 보도를 내보냈다. 지난 2월에는 연일(22, 23일) ‘축산부분을 위협하는 집짐승전염병’, ‘계속 전파되는 아프리카돼지페스트’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중국과 몽골 등에서의 ASF 피해 상황을 전하며 감염 위험성을 언급했다.
3월 7일에는 중국 베이징에서 ASF 관련 특별주제회의가 개최된 사실을 보도하며 회의 당시 ‘모든 방역조치를 철저히 집행하라’고 강조한 중국 부총리의 발언을 전했고, 가장 최근인 4월 4일에는 베트남에서 ASF 발생에 따른 돼지 살처분 및 방역 노력이 있었다는 점을 다른 세계소식과 함께 짤막하게 다루기도 했다.
한편, 신의주에서의 ASF 발생 소식에 북한 수의공무원 출신 조충희 굿파머스 연구위원은 “신의주는 중국 단둥과 가까워 가공식품이나 사료를 많이 들여오기 때문에 유통되는 과정에서 바이러스에 오염된 중국산 축산 사료가 유입돼 돼지열병에 걸릴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아울러 그는 “북한 가정에서는 부업 축산으로 돼지를 많이 키우는데, 대부분 잔반을 먹이기 때문에 바이러스 감염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고 북한의 돼지 사육 환경을 지적하기도 했다. 현재 국내외 농축산 관련 기관 등에서는 돼지에게 먹이는 잔반(음식 찌꺼기)을 ASF 발생의 주요 위험요인으로 보고 있다.
이에 일부 농축산 분야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북한의 ASF 확산 및 피해 최소화를 위해 우리 정부가 북측과 시급히 관련 협의에 나서 공동방역 등 함께 대응할 필요성이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