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탈린, 6·25전쟁 美 참전유도’ 기사, 해석이 잘못됐다

우리는 1970년대와 1980년대에 걸쳐 ‘해방전후사의 인식’이라는 책을 통해 우리의 역사 인식이 좌편향 왜곡되어 있음을 자주 지적하지만, 그와 반대로 우편향 왜곡의 위험이 있음도 항상 조심스럽게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6·25전쟁 58주년을 맞아 25일자 중앙일보에 난 기사, ‘스탈린이 미국 6·25 참전유도’는 그러한 우편향 역사왜곡의 위험성을 보여주는 사례였다. 이 기사는 새롭게 발굴된 스탈린의 비밀 전문을 인용하면서, 스탈린이 의도적으로 미국이 6·25 전쟁에 참여하도록 하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역사를 잠시 돌이켜 보면, 1950년 1월부터 7월 말까지 소련은 유엔의 안보이사회에 참석을 거부하고 있었다. 당시 중국 공산당을 지지하고 있던 소련은, 미국 등 서방국가들이 장개석의 국민당 정부에게 유엔 안보리의 참석권한을 부여하겠다는 입장에 대해 반대의 뜻을 분명하기 위해 안보리 회의 자체를 전면 거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던 중 6월 25일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하고 안보리는 회의를 소집하여 UN군 파병에 대해 논의하기로 하였고 그때 소련 정부는 종래의 회의거부 방침을 견지하여 안보리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으며, 소련이 불참한 상태에서 안보리는 UN군 파병을 의결하였던 것이다.

UN의 깃발아래 미군이 들어오자, 한반도에서의 전쟁 상황은 미군측에 유리하게 전개되어 낙동강 전선에서 위험한 지경에 빠져 있던 남한 정부는 위기를 모면하고, 미군과 한국군은 인천상륙과 서울 수복 등의 과정을 거쳐 북진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만약 그날의 안보리 회의에 소련이 참석하여 거부권을 행사하였다면 UN군 파병은 좌절되었을 것이고, 그렇게 되었다면 6.25 전쟁의 향방이 어떻게 되었을지 모르는 상황이 되었을 것인데, 소련이 불참함으로써 미국의 의지대로 UN군 파병이 관철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중앙일보 기사는 마치 스탈린이 미국을 6.25 전쟁에 끌어 들이기 위해 일부러 안보리에 참석하지 않은 것처럼 기술하고 있다. ‘파병 쉽게 하도록 안보리 거부권 행사 안해’라는 소제목이 그것이다. 이는 동 기사가 인용하고 있는 러시아 문건의 기록을 지나치게 확대해석한 것이다.

중앙일보 기사는 러시아 문건의 일부를 직접 번역하면서 “미국에게 (한국전 참전을 위한) 안보리 다수 결의를 쉽게 얻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라고 기록하고 있으나, 이는 명백한 확대해석이며 오역이다. 러시아 말은 대부분의 독자들이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에 그 부분을 영어로 하자면 다음과 같다. “to give American government a free hand to gain the majority vote in the Security Council, make more mistakes, and show its true colors to the public.”

이를 한국말로 옮겨보자. “미국정부에게 행동의 자유를 부여하고, 유엔안보이사회 내의 다수를 미국 정부가 활용하여 새로운 어리석은 행동들을 범하게 함으로써 (전세계) 사회여론이 미국 정부의 진정한 모습을 똑똑이 볼 수 있도록 함”이 되겠다.

쉽게 말하여, 미국이 제 마음대로 하게 하여 본색이 드러나도록 하겠다는 의미다. 우리가 어떤 회의체 불참하여 그 회의의 주도권을 가진 사람들이 어리석은 실수를 범하게 할 때가 있는데 바로 그런 경우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이 경우 우리는 그 “주도권을 잡은 사람들이” 어떤 실수를 어떻게 범할지는 미리 알수 없는 것 아닌가?

스탈린이 의도적으로 미국을 6·25 전쟁에 끌어드리려고 UN 안보리에 불참했다는 것은 지나친 상상이다. 아무리 스탈린이 세계 정세를 세세하게 알고 있고 세계 적화의 야망을 갖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런 식으로 모든 일을 정교하게 사전에 꾸밀 수는 없었다. 스탈린을 공산당의 악마로 보는 입장을 취하는 우파의 역사해석이라도, 이건 너무 지나치다. 러시아 원문에 없는 말을 억지로 꾸며 내어 우파적 본능을 만족시키는 것은 진정한 역사연구의 방법이 될 수 없다. 중앙일보 기사를 보면, 이 부분에서 러시아 원문까지 드러내 보이면서 마치 최대한 정확성을 기하고 있는 것처럼 하고 있는데, 실상은 명백한 확대해석이다. 참으로 심중한 문제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중앙일보 기사를 보면 “스탈린이 한반도에서 전쟁이 벌어지면 미국이 개입할 것이라는 예상을 충분히 한 뒤 전쟁을 시작했고…”라고 되어 있다. 하지만 러시아 원문에는 그렇게 스탈린의 의도와 사전예상을 확실하게 엿볼 수 있는 구절은 아무리 찾아 봐도 없다. 스탈린이 어떤 “악의 화신”이라는 점은 어느 정도 동의할 수 있어도, 그가 이러한 놀라운 예측능력을 갖고 모든 것을 미리 예상하고 조종했다고는 도저히 믿기 어렵다. 가끔 우리는 어떤 사람을 악한 사람이라고 가정할 경우, 그의 모든 행동이 사전에 어떤 악을 실현하기 위한 계획과 음모에 의한 것이라고 해석하기 쉽다. 그렇게 되면 종종 그 해석은 사실을 왜곡하게 된다.

결국 이 문건은 “사전(事前) 디자인”을 설명한 문건이라기 보다는 “사후(事後) 합리화”의 문건으로 보는 것이 좀더 온건하고 안전한 해석이 아닌가 싶다. 6. 25 전쟁이 발발하여, 철수했던 미군이 다시 한반도에 들어오게 되고 전쟁이 급속하게 확대되자, 차라리 소련이 UN안보리에 참여하여 거부권을 행사하여 그런 확전의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봉쇄했더라면 좋았을 것이라는 의견이 유럽의 공산주의자들 가운데 일어났었고, 이에 대해 스탈린이 일종의 자기 변호 차원에서 발송한 문건이 아닌가 싶다. 러시아 문건을 읽어보면 그런 느낌이 든다. 영어 문건을 읽어도 그런 느낌이 들지, 결코 스탈린의 “사전 디자인”과 “사전 계획” 혹은 “의도적 미국 유인 등”의 느낌은 들지 않는다.

한국전쟁 발발로 상대적으로 유럽에서의 공산화가 순조롭게, 그리고 평화롭게 진행될 수 있을 것이라는 스탈린의 말은 그냥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되는 것이지, 확대해석하여 스탈린이 그런 목적을 가지고 일부러 한국전쟁을 일으켰다는 말로 볼 수는 없는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는 스탈린이 한국전쟁을 일으켰다고 믿고 있다. 하지만 확증이 있다고 주장하고 싶지는 않다. 이번에 발견된 문건도 중앙일보기사가 주장하는 것처럼 확증은 아니라는 것이 나의 논지이다.

E. H. 카(Carr)는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책에서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는 유명한 말을 하였다. 그렇다. 과거와 현재가 서로 진솔한 대화를 하는 것이 바로 역사일 것이다. 하지만 현재의 필요 때문에 과거를 과장, 왜곡해서는 안될 것이다. 엄밀한 자료분석과 추론을 통해 올바른 과거를 정립해 가는 것이 중요하겠다.

지난 수십년간 좌파의 역사왜곡이 다소 있었다 해서, 이제 우파가 좀 왜곡하면 어떠냐는 생각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이번 중앙일보 기사에서 그런 우파의 역사왜곡의 위험성이 엿보여 이를 경계하고자 하는 것이 내가 이 글을 쓴 이유다.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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