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령님의 ‘무한도전’…”아메리카로 날아간 동아일보”

▲ 설화 형식으로 된 김일성 우상화 서적 ‘백두산 전설집’ <조선문예출판사, 1987>

북한에서 어린이들을 상대로 한 김일성 우상화 교육의 핵심 내용들은 ‘백두산 전설집’이라는 책에 집대성되어 있다.

‘백두산 전설집’은 김일성의 출생부터 시작해 항일유격대 시절, 해방 직후 북한사회를 이끌던 시기까지의 과정을 설화 형식으로 엮고 있다.

북한 당국은 ‘백두산 전설집’의 수록 내용에 대해 “조선의 사회과학자들이 수 백 번을 마다않고 백두산과 중국 동북지방을 돌아다니며 자료들을 수집했다”고 강조한다.

특히 “전설집에 실린 작품은 모두가 이러한 실제 조사과정을 통해 발굴·고증된 자료들로 객관적 사실에 기초한 것들”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구체적인 내용을 보면 ‘백두산의 장군별’ ‘하늘로 날아오른 종이장’ ‘천리밖을 보는 장군’ ‘가랑잎 타고 다니는 군사’ ‘눈이 있는 총알’ ‘술법을 배운 대원’ ‘99가지 축지법’ ‘바람타고 다니는 장군’ 등 제목만 보고도 그 허황된 내용을 능히 짐작할만한 것들이다.

하늘이 낸 ‘천출위인’

‘백두산 전설집’은 시작 페이지부터 “백두산 전설은 절세의 애국자이시며 백전백승의 강철의 령장이신 위대한 김일성 동지의 불멸의 항일혁명업적을 만대에 길이 전하는 고귀한 혁명적 재부이며 민족의 슬기와 재능이 집대성된 자랑찬 혁명유산”이라고 선전하고 있다.

또한 “예로부터 백두산은 우리 민족의 령산으로 수많은 전설을 간직하고 있지만 그것은 모두 신비경에 매혹된 사람들이 허황되게 지어낸 이야기일 뿐이다. 오직 우리 민족의 전설적 영웅이신 위대한 김일성 동지께서 영광스러운 항일혁명의 봉화를 추켜드시었던 20세기 전반기에 이르러 조선의 정기를 담은 진정한 전설들이 태어나게 되었다”고 말한다.

이어 “김일성 장군님은 하늘이 낸 분이다. 천출위인을 우러르는 마음에 어찌 국경이 있을 수 있으며 민족이 따로 있을 수 있나. 하늘의 태양을 우러러 칭송하는데도 나라가 따로 있고 민족이 따로 있을 수 있나?”라며 김일성을 따라 유격대에 합류했다는 일본군 장교의 소감까지 기록하고 있다.

▲ ‘백두산 전설집’에 등장하는 김일성 묘사화. 입신(入神)의 경지에 이른 김일성 장군이 구름과 날개돋힌 백마를 타고 일본군대를 무찌른다는 내용이다.

축지법, 변신술, 둔갑술, 승천입지까지…

김일성이 이끄는 유격대는 신출귀몰, 백전불패의 용사들뿐이었던 모양이다. 특히 김일성은 입신(入神)의 경지에 이른 ‘신령’의 모습으로 묘사된다.

‘백두산 전설집’에 포함된 거의 모든 일화에는 “장군님은 축지법도 쓰시고 변신술, 둔갑술, 승천입지(昇天入地: 하늘로 솟아오르고 땅에도 들어가다)… . 별별 술법에 능하시고 천문지리에도 환하시어 천리밖에 앉아서도 일본 군대의 움직임을 손금보듯 하신다. 장군님의 뜻은 하늘에 닿았고 장군님의 인품은 천하를 안을 만 하시고 장군님의 자략은 비범무쌍하여 이 세상에 따를 자가 없다”는 표현이 등장한다.

특히 “장군님은 종이를 배로 만들어 강을 건너시고, 종이를 하늘로 날려 그 위에 올라타시었으며, 장군님이 유격대에 지급하신 총알에는 눈이 달려있어 왜놈들을 백발백중으로 명중시켰으며, 백두산 천지에서 조선 반도를 굽어보시며 모든 골 안, 모든 마을의 조선 인민들을 도우셨다”는 표현까지 써가며 전지전능한 김일성의 모습을 묘사하는데 열중하고 있다.

또 “김일성 장군님은 추위에 떠는 인민들을 위해 일제의 총알도 뚫지 못하는 방한방탄 이불을 선물하시었다”거나 “용기골의 효녀 은심에게 백두산에만 있다는 진귀한 약초 백 가지를 넣어 달인 약제를 선물하시기도 했다”는 등 험난한 투쟁의 와중에도 인민들의 고통을 잊지 않았다는 사실을 강조하기도 한다.

하늘에 날아오른 ‘동아일보’

1937년 6월 4일은 북한이 대대적으로 선전하는 김일성의 보천보 전투가 있었던 날이다.

‘백두산 전설집’은 “김일성 장군님께서 친솔하신 항일유격대가 보천보를 들이쳐서 경찰관 주재소는 유격대의 기관총 사격을 받아 벌둥지가 되고 영림창, 농사시험장 등은 불길에 휩싸여 재가루로 날아올랐으며, 죽다 남은 경찰놈들은 삼십륙게 줄행랑을 놓다못해 우리에까지 뛰여 들어서 세상의 웃음거리가 되었다”고 말한다.

특히 “일본 총독이 그 사실을 전한 동아일보를 모두 모아 마당에서 불태웠으나, 하늘 가득 날아오른 불티들이 하얀 종이쪼각들로 변하여 햇빛에 반짝이면서 눈송이들처럼 쏟아져 내려 시민들에게 전해졌다”며 “시민들은 하늘에서 함박눈송이처럼 날아내리는 신문들을 받아쥐고는 보천보가 김일성장군님께서 이끄시는 유격대한테 얻어맞고 만신창이가 되었다며 후련해 했다”고 묘사하고 있다.

이중 가장 압권은 “이 신문의 불티는 바다를 건너고 대륙을 넘어 날려가지 않은 곳이 없었다. 그리하여 유럽의 도시들에서도 하늘에서 날아내리는 신문을 받아보고 놀라와했고 아메리카와 아프리카의 들판에서도 하늘에서 날아내리는 신문을 받아보고 경탄을 금치못해 했다고 한다”는 부분이다.

“김일성 장군님은 하느님의 형상”

일제시대의 활약상(?)을 담은 신화까지야 그렇다치고, 해방 이후의 행적에 대한 우상화 내용은 그야말로 ‘인류 문명에 대한 모독 수준’으로 치닫는다.

일단, 김일성을 시대의 명필가로 묘사한다. “김일성장군님의 글씨체는 추사 김정희의 ‘추사체’를 능가함은 물론,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유명한 서체가들의 장점이 모조리 결합된 것으로 가히 ‘태양서체’라고 부를만 하다. 하기에 누구나 ‘태양서체’인 위대한 수령님의 필적을 받는 것을 더없는 영광으로 여기였으며 그이의 필적을 더없이 귀중한 가보로, 국보로 소중하게 보관하였다”는 설명이 뒤따른다.

특히, 미국의 한 목사는 김일성을 만나보고 나서 “예수가 오늘도 세계 수십억 신자들에게서 숭앙을 받는 것은 인간에 대한 그의 박애심이 원인이지만, 위대한 주석님은 예수도 감히 견주지 못할 사랑의 최고화신이시다”며 감탄했다고 서술되어 있다.

목사뿐만이 아니다. 전국에서 가장 용하다는 관상쟁이가 김일성의 손금을 보더니 “이것이야말로 내가 이제껏 보던 중 처음 보는 손금이다. 나의 견해대로 해석하자면 지혜, 리상, 인망, 판단, 장수, 건강 등이 오직 하나의 결론 즉 우주와 같이 무한하고 땅과 같이 두터워 만사대길로 이어지는 전 우주에 유일무이한 손금이다”고 말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 책은 또한 세계의 명인들과 위인들의 초상을 잘 그려 명성을 떨친 서방의 한 초상화가 ‘어떻게 존경하는 김일성주석님의 초상화를 최대의 걸작으로 그리게 되었는가?’ 라는 기자의 질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답했다고 기술하고 있다.

“나는 주석님을 처음으로 뵙는 순간, 그 어떤 이름할 수 없는 령감에 휩싸였다. 그이의 존안에서 풍겨오는 전지전능함과 박애의 빛발은 내가 감히 그릴 수 없었던 하느님의 거룩한 형상이었다. 나는 사람이 아닌 하느님의 초상화를 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