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에 의한 북한 최초의 정치탄압

탈북자들과 북한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마다 놀랐던 사실은 그들이 북한 정부에 의한 탄압을 소련의 책임이 아니라, 전적으로 북한의 김 씨 정권의 책임으로만 보는 것이었다.


대다수의 동유럽 사람들이 “소련이 우리나라를 강점해 공산주의 제도를 강제적으로 설립하고 주민을 탄압했다”라고 주장하는 것과는 명확한 차이가 난다.


물론 북한 내 벌어졌던 각종 정치적 탄압은 우선적으로 정권 지도자들의 책임이다. 그리고 민족주의적인 관점에서 자국(自國)의 범죄를 변명하지 않은 것은 참으로 용기있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소련의 책임을 완전히 부인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첫째, 소련의  도움없이 한반도 북쪽에서 공산주의 정부가 설립될 수 없었다. 그리고 둘째, 북한 역사상 김 씨 패밀리(김일성-정일-정은)와 연관되지 않은, 완전히 소련에게만 책임이 있는 탄압도 있었다.


현재 러시아에서 스탈린 시대의 탄압 시스템을 연구하는 단체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메모리얼(Memorial)’이라는 곳이다. ‘메모리얼’에서는 스탈린 시대에 이뤄졌던 재판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고, 스탈린의 정책에 의해 희생된 사람들의 목록을 만들었다.


스탈린 시대의 재판소 중 하나로 25군의 군사 재판소가 있다. 25군은 소련 군정(軍政) 당시의 38도 북쪽의 한국 지역을 통치한 군대로 이 재판소에서는 한국인들에 대한 재판이 이뤄졌다.  


필자는 ‘메모리얼’의 데이터베이스에서 25군의 특별재판소에서 선고를 받은 50명의 명단을 찾을 수 있었다. 성별로는 남자 49명, 여자 1명, 민족별로는 한국인 37명, 중국인 7명, 일본인 6명, 러시아인 1명에 대한 선고 기록이다. ▶ 25군 특별재판소에서 선고 받은 50명 명단 바로가기


최초의 선고는 1945년 10월 1일에 내려졌고, 마지막 기록은 1947년 4월 4일로 나와 있다. 선고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 무죄 : 1명 (여성 피의자)
• 피의자 사망으로 재판 종결 : 2명 
• 유죄 : 47명
• 사형 : 6명
• 징역 25년 : 1명
• 징역 20년 : 2명
• 징역 15년 : 3명
• 징역 10년 : 16명
• 징역 8년 : 7명
• 징역 7년 : 1명
• 징역 6년 : 5명
• 징역 5년 : 1명
• 징역 4년 : 5명


징역을 선고받았던 사람들은 소련의 수용소로 보내졌다.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수가 입수한 소련 측 자료에 따르면 소련 당국은 1955년에 수용소 내 북한인들을 추방하겠다고 북한 측에 제안했다. 당시의 북한은 소련에 많이 의존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북한 측이 동의했을 가능성은 매우 높다.


데일리NK 사이트에 링크된 표를 통해 피의자에 관한 정보(러시아어 원문, 한국어 번역)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자료만을 가지고 피의자들의 이름이나 출생지, 거주지를 정확히 파악하기는 힘들다. 이유는 당시 한국이나 중국 사람들의 이름에 대해 한자 표기나 일본어 발음, 사투리에 따라 기록하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유감스럽게도 이번 재판이 어느 정도의 규모로 진행된 것인지를 알 수 없어 전체적인 탄압의 규모에 대해 확실하게 말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명단을 통해 소련 정부가 1945~1948년 사이 한반도 북부에 자국의 형법을 적용하는 등 어느 정도 자기의 영토로 인식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소련의 통치 방식이 반(半)식민지주의적 방식이었다는 주장도 가능하다. 물론, 북한은 1967년 이후 소련에 대한 의존성을 감추기 위해 역사를 왜곡하고 지금까지도 이 사실을 절대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리고 소련의 이 같은 통치 방식은 같은 시기 38선 남쪽에서 이뤄졌던 미국의 군정(軍政)과도 비교할 수 있다. 소련 군정과 달리  미군정은 미 합중국의 법률제도가 아니라 38선 이남의 ‘군정 법령’에 따라 입법권을 실행했다.


군정 법령은 조선총독의 제령(制令)과 크게 다르지 않았는데, 한국에 대한 두 나라의 정책에서 식민지주의 전통을 엿볼 수 있다. 소련이나 미국 모두 한국을 병합할 계획이 없었지만, 소련의 경우에는 러시아식 ‘내지 연장 식민지주의’식 정책을 실시하면서 본토의 법률 제도를 실행했고 미국은 서양식 ‘구별 식민지주의’식 정책을 실시하면서 본토와는 분리된 법률제도를 실행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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