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 NLL, 제대로 알고 논쟁하자

서해 북방한계선(NLL)에 관한 논의가 10월 2일부터 열릴 ‘남북정상회담’의 의제에 포함될지, 또는 의제에는 빠지지만 남북간 대화 중 돌발적으로 거론될지는 불투명하다.

그러나 이번 남북정상회담에서 NLL이 거론되지 않는다 해도, NLL을 둘러싼 친북좌파 지식인들의 주장은 결코 하루아침에 제기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NLL을 인정하지 않는 북한정권과 친북좌파들에 의해 반드시 다시 불거지게 될 것이다.

또 NLL의 정당성을 부정하는 이들의 주장은 기존의 단순무식한 여타 선전과는 달리 나름대로 정교한 논리를 펴고 있고 나아가 국제법과 심지어 미국 정부의 (모호한) 입장까지도 자기네들 주장의 근거로 제시하고 있는 형편이다.

따라서 “NLL 사수”를 외치는 측도 단순히 현상태(status quo) 유지를 바라는 국민감정에만 호소해서는 종국에는 “사실과 논리”를 무시한 채 억지만을 강요하는 “진실의 호도자”라는 누명을 뒤집어 쓸 가능성이 높다.

필자가 볼 때 NLL과 관련된 논의는 일반인들이 그리고 전문가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논쟁기술상 훨씬 더 복잡한 문제이다. 논쟁은 ‘전제로부터 결론을 도출하는 행위들’로 이루어지며, 논쟁의 당사자 일방이 옳다고 인정하는 전제로부터 논리적으로 정당하게 도출된 결론이라 할지라도, 상대방이 그 전제를 인정하지 않을 경우 설득력이 반감 내지는 사라진다.

이 점을 염두에 두면서, NLL문제의 핵을 이루고 있는 정전협정에 한국은 서명하지 않았음에도 정전협정 준수를 남북관계의 기본으로 삼고 있고, 북한은 정전협정에 서명하였음에도 불구하고 1994년 이후 정전협정을 미북간의 평화협정으로 대체하려는 의도에서 정전협정을 무효라고 주장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해 보자. 이때 정전협정의 유효성을 전제로 하는 NLL에 관한 논의가 논쟁기술적으로 얼마나 복잡해질 수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NLL 논쟁, 포퓰리즘으로 흐르면 안 돼

NLL을 한국만이 지켜야 할 북방한계선으로 해석해야만 정전협정과 모순되지 않는다면, 그리고 이 경우 한국의 안보와 주권이 심각하게 침해된다면, 서명도 하지 않은 한국이 왜 정전협정의 문구에 구속되어야 하는가? 또 정전협정을 무효라고 선언한 북한이 1994년 이후부터는 정전협정을 근거로 NLL을 비판할 수 있는 것인가? 또 정전협정의 당사자인 미국은 정전협정과 NLL 사이에서 왜 모호한 입장을 취하고 있는가?

이런 질문들에 답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문구에만 집착해서는 안 되며 역사적 배경과 전체적 시각을 갖고 문제를 조망해야 한다.

예를 들어 “정전협정에는 서해상에 명시적으로 규정된 분계선이 없으므로 북한은 NLL을 인정할 수도 또 인정할 필요도 없다”는 북한과 친북좌파의 주장은, 사실은 NLL이 정전협정에 서명을 하지 않은 이승만정부가 유엔군, 북한군, 중공군 사령관들이 합의한 정전협정을 깨뜨릴지도 모른다는 북한과 중공 측의 우려를 해소시키기 위한 조치였다는 역사적 배경을 망각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역사적 배경에 근거한다면 “정전협정에서 서해상에서는 군사분계선이 규정되지 않음으로 인해 NLL이 요청되었다”는 것이 진실이다. 여기서 아주 명백하게 보이던 위의 주장도 실은 우리가 검토해야 할 여러 ‘잠정적 결론’들 중의 하나일 뿐이라는 점이 드러난다.

따라서 NLL의 합당성 여부에 대한 논쟁에 참여하는 모든 당사자들은 상대방의 견해를 반박하고 자신의 견해에 대한 정당화뿐 아니라, 반박과 정당화가 상대방도 인정할 수 있는 전제에 근거하고 있는지를 객관적으로 돌이켜 보아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NLL에 대한 논쟁은 NLL 설정의 배경에 대한 깊은 이해가 없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포퓰리즘의 형태를 취하거나 문구에 대한 형식논리적 자기최면에 빠지기 쉽다.

정리한다면, NLL에 관한 논의는 사실과 ‘대화논리적 일관성’ 그리고 역사적 배경 등을 자세히 살피는 것을 원칙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정전협정에서의 군사분계선

필자는 비록 전쟁사나 국제법 전문가는 아니지만, NLL의 정당성을 부정하는 기존의 주장들을 검토하면서 그 근거가 매우 피상적이고 일방적이라는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다른 한편 NLL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논리도 상대방을 잠재울 수 있을 만큼 강력하기보다는 필요 이상으로 상당히 수세적이었다고 생각한다.

결론을 미리 말하자면, NLL은 서해에서 사실상의 군사분계선 역할을 정당하게 하여왔고, 만일 NLL을 부정하거나 새로운 군사분계선을 설정하고자 할 경우, 한국은 현재의 NLL 이남으로 그어진 새로운 경계선을 받아들일 그 어떠한 이유도 없다는 것이다.

이 결론이 전혀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결론에 이르는 과정에서 필자는 앞에서 말한 원칙에 충실함으로써 그 객관성이 확보되기를 바란다.

NLL에 대한 논쟁의 두 중심은 정전협정과 남북기본합의서라고 할 수 있다. 우선 정전협정과 NLL과의 관계를 그 역사적 배경과 함께 살펴보자.

1953년 7월 27일 한국전쟁이 정전상태로 들어가는 과정을 규정한 것이 정전협정이다. 이때 중요한 점은-전문가들의 논의에서도 많이 망각되고 있지만- 정전협정의 서언에 “(정전협정의) 조건과 규정들의 의도는 순전히 군사적 성질에 속하는 것”이라는 점이다. 바로 그런 이유로 정전협정의 당사자들은 모두 해당국 군대의 사령관의 자격으로 서명하였다.

즉 현재 한반도를 동서로 가르고 있는 휴전선이나 비무장지대 그리고 서해상의 섬들의 관할권 규정 모두 정전상태로 들어가기 위한 군사적 성질이지, 법률적 관점에서 ‘영토’와는 무관하다는 점이다. 한국의 영토에 대한 규정은 헌법 제3조에 규정된 “한반도 전체와 그 부속도서”로 봄이 최종적이다. 그리고 설사 서해상의 군사분계선과 관련하여 남북이 협의를 한다고 하여도 그것은 영토상의 개념을 도입할 필요가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즉 군사분계선은 ‘현재의 군사적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 필요충분조건이며 다른 일체의 고려는 필요 없다. 여기서 북한이 가입도 하지 않은 국제해양조약을 들고 나오는 것이 언어도단이라는 점이 명백해진다.

정전협정 제1조 군사분계선(Military Demarcation Line)

그렇다면 정전협정에 규정된 군사분계선은 어떠한가?

전쟁상태에서 정전상태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쌍방간의 군사력을 분리하는 분계선이 전제되어야 한다. 실제로 정전협정의 제1조는 군사분계선(Military Demarcation Line)과 비무장지대의 설정에 관한 것이다.

정전협상 시 유엔군은 쌍방의 ‘군사력의 접촉선’을 분계선으로, 북한과 중공은 북위 38도선을 주장하였다. 유엔군측 주장의 이유는 피를 흘려 확보한 38도 이북의 땅을 전쟁을 도발하고 지원한 북한과 중공에게 그냥 돌려 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때 이승만정부가 한반도에 군사분계선을 다시 도입하는 것 자체를 거부하였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북한은 미국의 태도가 요지부동임을 깨닫고 38도선 안을 포기한 후 군사력접촉선을 분계선으로 삼는 것에 동의하였다. 유엔군 측 협상자는 북한과 중공이 전쟁을 정지시키기 위한 군사적 성질만을 갖고 있는 군사분계선을 마치 영원한 국경선인 것처럼 집착하는 데에 상당히 놀랐다는 것이다. 이때 동해에서는 휴전선의 연장선으로 해상 군사분계선을 설정하였으나 서해상에서는 한강 하구의 통항권을 규정한 것 이외에 군사분계선을 설정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서해상에 군사분계선을 설정하는 것을 처음부터 시도조차 하지 않은 것은 아니라고 한다. 정전협상 시에 유엔은 인접 해면의 폭을 당시의 국제기준인 3해리로, 북한은 12해리로 주장하여 합의를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북한 측의 주장을 따르면 서해 5도 대부분이 북한 측에 관할에 들어가기 때문에 북한의 주장은 아마도 서해상에 해상경계선을 설정하는 것 자체를 무산시키기 위한 전술일 가능성이 높다.

다른 한편 휴전협상시의 유엔군사령관인 리지웨이는 개성이 서울과 수도권을 위협할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라는 점을 고려하여 월등한 해군력과 공군력을 바탕으로 점유하고 있던 서해상의 섬들과 개성을 교환할 생각을 하였으나 북한은 개성을 포기하지 않았다. 미국 정부는 협상이 이런 이유로 지연되는 것을 반대하여 현지 지휘관의 의견과는 달리 유엔군측은 결국 개성을 포기하게 되었다.

비록 과문이지만 정전협상과정을 기술한 문헌에서 받은 인상은 서해상의 해상군사경계선 설정에 관하여는 유엔군측과 북한-중공 측간에 심각한 논쟁도 또 특별한 관심도 없었다는 점이다. (정전협상에 관한 구체적 기록을 갖고 있는 전문가들이 그 이유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필자의 짐작으로는 협상 당사자들인 미국, 북한, 중공은 서해상에 군사분계선을 두지 않는 것이 자국의 이해에 더 부합한다고 본 것 같다.)

이렇게 해서 군사분계선에 대한 협상은 1951년 10월경에 마무리되었고 이후 전쟁이 2년이나 더 계속된 이유는 전쟁포로교환에 대한 양측의 입장이 너무나 달랐기 때문이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