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젊은이·간부들 남한 영상물 단속에도 몰래봐”








▲중국에 사사여행 나온 한 북한 여성이 이달초 데일리NK 특별취재팀과 만나 최근 북한 내 한류에 대해 말하고 있다. /사진=데일리NK 특별취재팀


북한이 김정은 체제 출범 이후 자본주의 문화, 즉 한류(韓流)를 차단하기 위해 불시 검문을 하는 등 단속강화에 나서고 있지만, 젊은이들이나 간부들 사이에선 단속을 피해 남한 영상물을 보고 있는 것으로 데일리NK 취재 결과 확인됐다.


이달 초 데일리NK 특별 취재팀은 북중 접경지대인 중국 단둥(丹東)시에 사사(私事)여행 나온 북한 주민들을 만나 최근 북한 내 남한 영상물 시청에 등에 대해 들어봤다. 특별 취재팀이 만난 북한 주민들은 남한 영상물을 보거나 유통시키다 발각되면 극한 처벌을 가하는 등 통제가 심화되고 있어 웬만해선 보지 않는다고 증언했다. 


평안북도에서 나온 50대 남성은 “전기를 주고 한 시간 있다가 들이치든지, 갑자기 문 두드려서 와서 검열하니까 (남한 영상물) 보면 꼼짝 못 한다”면서 “작년 5월엔가 총살 당했는데, 한 사람은 날라다 주고, 한 사람은 팔고. 남조선 영화 보면 이렇게 총살한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2008~2010년에만 해도 그거 (남한 드라마) 보느라 정신이 없었다”면서 “남조선 알판(CD), 중국 연변에서 만든 알판을 젊은이들은 저녁에 모여서 봤다”고 말했다.  


신의주에서 거주하면서 중국에 두 번째 방문 중이라는 30대 여성은 “주변에 남조선 텔레비전이나 영화를 보다가 잡혀간 사람들이 많다”면서 “화교들이나 조금씩 보지 (일반 주민들은) 아예 볼 생각을 안 한다”고 현지 분위기를 소개했다. 그러면서 그는 “젊은이들이나 단속을 피할 수 있는 간부들은 몰래 남조선 드라마들 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김정은 체제가 들어서기 전까지는 남한 영상물에 대한 통제가 다소 완화돼 북한 주민 대부분이 남한 영상물을 한 번 정도씩은 봤다는 게 이들의 증언이다. 김정은 정권 출범 후 체제 불안 요소를 차단하기 위해 단속강화에 나서고 있다는 의미다.


황해남도에서 나온 한 40대 남성은 “남조선 영상물이 돌아다니기 시작한 지는 10년 정도가 됐다. 조선 사람 80~90% 정도는 한 번씩은 봤을 것”이라며 “남한 알판(CD)를 본 사람이 30~40% 정도 될 것이고, 남조선 텔레비전을 정기적으로 보는 사람은 3~5% 정도는 될 것”이라고 말했다.


평안북도에서 거주하면서 황해남도, 강원도 지역 등에 장사를 다녔던 50대 한 여성은 “황해도 해주에 가면 진짜 (남한 TV가) 잘 나온다”면서 “강원도 고원으로 시집간 친척집에 갔는데 내가 ‘좋겠다. (남한 TV) 잘 잡혀서’ 그랬더니 ‘언니 어디 가서 절대 말하지 말라’고 했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황해남북도, 강원도, 평양 등 남한과 인접한 지역은 개인 가정이 보유하고 있는 안테나를 조정하면 남한 TV 시청은 물론 라디오 청취까지 가능하다. 


평안북도와 황해도에서 온 두 남성은 남한 드라마 중 가장 인상 깊었던 드라마는 ‘천국의 계단’이라고 말했다. 평북에서 온 50대 남성은 “한 때 ‘조폭 마누라’를 많이 나왔는데, 이후 직접 본 것은 ‘천국의 계단'”이라고 했고, 황해도서 온 40대 남성은 “‘천국의 계단’이 가장 인상 깊었고, ‘남자의 향기’ ‘쩐의 전쟁’도 봤다”고 소회했다.


피겨여왕 김연아 선수도 북한 주민들 사이에서 유명한 스포츠 스타다. 40대 남성은 “(남한) 운동선수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면서도 “김연아는 안다. 김연아처럼 유명해져야 알지 일반 운동선수는 모른다. 감출래야 감출 수 없는 선수이니까 알게 되는 것”이라고 전했다.


50대 남성은 역시 김연아 선수에 대해 알고 있었다. 그는 “두 번씩이나 1등하고, 잘했으니까 1등을 두 번이나 했지”라며 “통일되면 체육도 강국이 될 수 있는데“라며 아쉬워했다.


지난 10년 간 남한 영상물을 대다수의 북한 주민들이 시청하면서 점차적으로 남한에 대한 인식의 변화도 가져온 것으로 데일리NK 취재 결과 확인됐다.


평북에서 나온 50대 여성은 “남조선에 대한 생각이 그거(드라마, 영화) 보면서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면서 “조그만 나라가 잘사는데, 한민족인 우리 조선은 왜 이럴까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고 심경을 전했다.


그러면서 그는 “여기(중국)서는 이런 거 봐도 조선에 가서는 아무 말도 안 한다”면서 “그런데 습관이 돼서 말이 헛나오면 큰일이다. 심지어 이젠 남한이 경제적으로 못 산다는 선전도 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평남에서 온 50대 여성 최진숙(가명) 씨는 “이전에는 몰랐는데 (남한) 드라마를 보고 (남한 실상을) 알게 됐다”면서 “남조선을 이해하는 데 (남조선) 영화를 보는 것이 도움은 돼도 인민반에서도 말을 주의해야 하기 때문에 밖에 나와서는 말을 못 한다”고 했다.


평북에서 나온 50대 남성은 ‘남한 영화나 드라마를 북한 사람들이 많이 보면 어떻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냐’고 묻자 “조선 사람들이 다 보긴 봐도 주민들은 일순간에 어떻게 변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한편 남한 드라마 외에 국내 입국한 탈북자들이 북한에 있는 가족들과 휴대폰 통화가 가능해지고 생활비가 전달되는 것도 남한에 대한 인식 변화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국내 입국 탈북자들이 남한 영상물을 보고 탈북을 결심하게 됐다는 증언과 같은 맥락이다.


평남 출신 최 씨는 “양강도나 함경도는 남조선에 간 가족들이 많아 손전화기(휴대폰)를 사용하는 사람이 많다고 들었다”면서 “남조선에 간 가족에게 실상을 듣고, 거기(남한)에서 보내준 돈으로 생활하는 세대가 많은데 어찌 (남한에 대한) 좋은 감정을 갖지 않을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본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언론진흥기금 지원을 받아 작성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