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오는 25~30일로 예정됐던 추석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일방적으로 연기한다고 발표했다. 또한 우리 정부가 내달 2일로 제안한 금강산관광 재개를 위한 실무회담도 연기한다고 밝혔다.
북한 대남기구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는 이날 대변인 성명을 통해 우리 정부가 남북대화를 동족대결에 악용하고 있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북한은 판문점 적십자 통신선이 아닌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이 같은 내용을 일방적으로 발표했다.
조평통은 이어 “북남 사이의 당면한 일정에 올라있는 흩어진 가족, 친척상봉행사를 대화와 협상이 진행될 수 있는 정상적인 분위기가 마련될 때까지 연기한다”면서 “(남측이) 우리를 모략중상하고 대결의 수단으로 삼고 있는 금강산관광 재개를 위한 회담도 미룬다는 것을 선포한다”고 덧붙였다.
조평통은 또 “북남관계가 남조선보수패당의 무분별하고 악랄한 대결소동으로 하여 또다시 간과할 수 없는 위기에로 치닫고 있다”면서 “(남측은 개성공단 합의 등에 대해)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의 결과’니, ‘원칙 있는 대북정책’의 결실이라고 떠들고 있고 금강산관광에 대해서도 ‘돈줄’ 등을 언급하며 중상했다”고 주장했다.
특히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의 구속 사건과 관련해서는 “내란음모사건이라는 것을 우리와 억지로 연결시켜 북남사이의 화해와 단합과 통일을 주장하는 모든 진보민주인사들을 ‘용공’, ‘종북’으로 몰아 탄압하는 일대 ‘마녀사냥극’을 미친 듯이 벌이고 있다”고 강변했다.
성명은 이어 “우리는 북남관계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해나갈 것이지만 우리와 끝까지 대결하려는 자들에게까지 선의와 아량을 베풀 생각은 추호도 없다”면서 “날로 가증되는 반공화국전쟁도발책동에 단호하고 결정적인 대응조치를 취해나갈 것”이라고 위협했다.
이산상봉을 금강산회담을 위한 다리 역할로 활용하려고 한 북한이 우리 정부의 원칙적인 대북정책에 불만을 표출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그동안 유화적인 태도를 보이던 북한이 개성공단 재가동된 후 갑자기 돌변했다는 점에서 이산상봉을 개성공단 재가동을 유인하기 위한 카드로 활용한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유동열 치안정책연구소 선임연구관은 데일리NK에 “이산상봉에 말도 안 되는 남측 숙소 문제를 걸고넘어질 때부터 예견됐던 일”이라면서 “유화적인 태도로 ‘달러박스’인 개성공단 정상화의 목표를 달성한 북한이 더 이상 굴욕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라고 말했다.
유 선임연구관은 이어 “개성공단 폐쇄 카드로 우리 정부 길들이기를 시도했지만 여의치 않았고 북한은 박왕자 씨 사건에 대한 사과를 하지 않으면 금강산관광 재개가 실현될 수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면서 “이후 우리 측의 실무접촉 회담 제안을 지속적으로 거부하면서 남북 관계에 칼자루를 쥐겠다는 의도를 보일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내다봤다.
한편 남북은 지난 16일 이산가족 상봉 남측 대상자 96명, 북측 대상자 100명의 최종명단을 교환했고 이달 25일부터 30일까지 금강산에서 상봉 행사를 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이날 북한의 갑작스러운 발표는 모처럼 혈육 상봉의 기대에 부풀었던 이산가족들에게 또 다시 깊은 실망을 안겨주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