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서 사라진 공화국 차수 ‘최용건’ 민족보위상

북한에서 한국전쟁 말기에 대해 쓴 글에는 김일성이 1953년 2월 7일에 공화국 원수 칭호를 수여받은 것으로 나온다. 그러나 당시 노동신문을 보면 ‘김일성에게 원수 칭호를 수여함에 대한 결정’에서는 또 다른 한 사람에게 군사칭호를 수여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바로 당시 민족보위상인 최용건인데, 그는 이때 공화국 차수 칭호를 수여받았다. 하지만 1957년 이후에 나온 북한 자료에서 이 사실에 대한 언급은 찾아볼 수 없다.


당시 공화국 차수 칭호를 받은 최용건은 누구인가? 그는 김일성 유격대 투사 중에 김일성과 가장 가까운 친구로, 북한에서 높은 지위까지 올라갔다. 1946년에 감금당한 조만식을 대신하여 조선민주당 당수가 된 후 1948년 2월에 조선인민군이 창군돼 인민군 총사령관에 임명되었다. 이후 1948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건국, 민족보위상에 임명되었고 1953년에 공화국 차수 칭호를 수여받은 것이다.


당시 북한의 국가 체계는 소련과 매우 흡사하지만 1952년 12월 31일에 도입된 인민군 군사칭호제도는 당시의 소련 제도와 다소 차이가 있었다. 그중에서도 북한의 ‘대좌’ ‘차수’ 계급은 당시 소련에서는 없었다. 러시아말로 ‘대좌’를 보통 ‘상급 대령(старший полковник)’이라고 번역하고, ‘차수’를 ‘부원수(вице-маршал)’로 번역하는데, 1953년 최용건 차수 승진을 보도한 한 한국언론의 기자들은 북한매체를 직접 접근할 수 없어 러시아어 보도를 보면서 최용건의 계급을 ‘차수’가 아닌 ‘부원수’로 오보하기도 했다. 이런 소소한 일에서도 전쟁 속에 분단된 한반도의 현실을 찾아볼 수 있는 것이다.


차수로 승진한 최용건은 새로운 군복 및 계급장이 필요했다. 이와 관련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수는 1990년대 초 소련 사료에서 재미있는 사실을 하나 발견했다. 이는 바로 김일성의 원수 계급장과 최용건의 차수 계급장을 소련에서 만들었다는 점이다. 1953년 북한 정부는 소련 정부에 공식적인 부탁을 했고, 다음과 같은 목록에 따라 견장을 만들어 보내줄 것을 요청했다.


1. 원수 계급장 – 6개
2. 차수 계급장 – 6개
3. 원수 별 – 3개
4. 금석 실 – 8km
5. 원수 모자 – 3개
6. 원수 모자 앞에 붙이는 휘장 – 3개


당시에 북한 계급장은 다음과 같은데, 소련 원수나 대원수 계급장과 달랐다.









▲북한 공화국 차수 계급장(左 1953년)과 원수 계급장(右 1953년).


1950년대 최용건은 김일성에 비해 군복을 자주 입지는 않았지만 란코프 교수가 찾은 자료에서 차수복을 입고 있는 최용건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북한 원수복을 입은 김일성과 차수복을 입고 있는 최용건이 맨 앞쪽에 나란히 앉아 있다. /사진=리호구 소련 장교 제공

1957년까지 최용건은 민족보위상으로 지냈고, 승인을 결정할 때는 일반적으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민족보위상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차수 최용건’을 사용하였다. 마지막으로 북한 매체에서 최용건을 ‘차수’로 호칭한 기사가 1957년 8월 15일에 나왔다. 그러나 이후에 ‘차수’라는 호칭이 한 번도 나오지 않았고, 같은 해 9월 20일에 최용건은 민족보위상이 아닌 실권이 없는 자리라 할 수 있는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되었다.


1976년 최용건이 사망할 때도 노동신문은 그의 군사계급을 인용하지도 않았고, 현대 북한 백과사전에서도 관련 정보는 게재돼 있지 않았다. 북한에서 1985년까지 차수로 승진한 사람은 한 명도 없는데, 1985년에 인민무력부장인 오진우가 차수 칭호를 수여받았다. 하지만 원래 사용하던 ‘공화국 차수’가 아닌 ‘인민군 차수’였다. 이유는 공화국 원수인 김일성의 유일성 및 위대성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예측된다. 


때문에 최용건도 ‘차수’로 임명된 이후 군사 칭호가 사라져 버린 것, 이후 민족보위상에서도 해임된 것도 이와 연결해 볼 수 있다. 필자는 조심스럽게 최용건이 1957년 8월 종파 사건 때 김일성을 열정적으로 지지했지만 결국 이 시기의 숙청 바람을 피하지는 못한 게 아니냐는 추측을 해본다.


또한 1950년대 말 북한을 방문했던 어느 한 소련 사람의 증언에 따르면 당시 최용건의 초상화도 없어졌다고 한다. 북한에서 김일성 다음으로 권력이 높았었던 최용건 민족보위상의 멸망에서 독재 국가의 행태를 볼 수 있다. 초기 ‘노동 계급의 국가’로 세워졌던 북한은 이후 ‘노동당 국가’, ‘당 중앙위원회의 국가’ 이었다가, 결국엔 ‘수령의 국가’로 변해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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