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성적 식량난, 北농촌 이렇게 바꿔놨다

북한에 식량난이 닥친 지 벌써 13년이 됐다.

올해 1월 중국에 온 평양 주민 이준호(가명)씨는 “평양시를 제외한 대부분의 지방은 배급을 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씨는 “아직 굶어서 죽는 사람을 보지는 못했다. 그래도 먹고 살기 바쁜(어려운) 것은 여전하다”고 했다.

현재 북한은 체제유지와 민생 문제라는 두 마리를 토끼를 동시에 잡으려 하고 있다.

당국은 주민들이 국가에 손을 내밀지 않고 알아서 먹고 살라며 종합시장 양성화, 분조관리제 실시, 농촌의 소토지 규제를 일부 해제했다.

그런 한편 군대와 통치기관에 우선 식량을 공급하고, 불법장사 단속, 각종 근로단체 조직생활 정상화 등을 통해 무너진 체제유지 시스템을 복구하고 있다.

생산분야에서도 과감한 개혁개방이나 개인영농 전환 등의 근본조치 없이 약간의 실적분배 원칙(인센티브제)을 도입하는 수준에서 생산 증대를 유도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방법으론 만성적인 식량난을 해소할 수가 없다.

주민들은 이러한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을 몸소 깨닫고 스스로 살아남기 위한 투쟁을 전개하고 있을 뿐이다. 만성적인 식량난이 계속되면서 북한의 농촌풍경도 바뀌고 있다. 물론 일부이기는 하지만 식량난이 바꿔놓은 북한 농업의 현주소를 들여다 본다.

◆목표 생산량 인센티브 도입= 식량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원인은 전적으로 집단농업경리에 있다. 북한 농업과학원 출신 탈북자 이민복 씨는 “북한 옥수수 종자 연구는 세계적 수준이다. 아무리 훌륭한 슈퍼 종자라도 북한의 공산분배 시스템으로는 아무런 효과가 없다”고 말했다. 북한은 개인영농이 당국의 통제 이탈을 불러오고 소유개념을 강화시킬 것을 우려해 농업구조 개혁을 하지 않고 있다.

대신 농민들의 생산의욕을 제고하기 위해 분조 단위로 목표 생산량을 초과하는 양에 대해서 농장원들이 가져가는 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이러한 인센티브 제도의 성과도 확인되고 있다. 함북 출신 탈북자 유경준 씨는 “인센티브제도를 실시한 결과 96년도 한 정보에서 800kg밖에 나오지 않던 옥수수가 2배가 넘게 나왔다. 옥수수 씨알(알맹이) 크기가 다르다. 그러니 생산량이 늘 수 밖에 없다. 국가에 바치고도 농장원들이 분배량을 크게 늘렸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런 방식으로 계속 생산량이 늘어야 정상이다. 그러나 다음해부터 오히려 생산량은 감소했다고 한다.

유 씨는 “생산량이 늘어서 농장원들에게 돌아가는 것이 많으니까 당국이 목표 생산량을 크게 늘려 잡았다. 수확량도 채우기 어렵게 되자 농민들이 다시 일을 대충했다. 수확량을 늘려봤자 죄다 국가가 가져가고 농민들은 1년치 식량도 채우기 어려웠다. 이러니 누가 열심히 일하겠는가”라고 말했다. 주민들의 생산 동기 장려보다 당국이 수확량을 얼마나 가져가는가만 관심을 두기 때문에 인센티브 제도도 근본적인 한계를 보이고 있다.

◆소토지 전체 곡물생산의 20%?= 소토지(산을 개간한 토지)는 북한 곡물생산의 부족분을 메워주는 중요한 지표이다. 당국도 이를 감안해 농민들의 소토지 경작을 묵인하고 있다.

1995년 자강도 주민들이 무리로 죽어나자, 연형묵 전 자강도 책임비서가 “산을 개간해서라도 식량을 해결해야 한다”고 김정일에게 요구했다. 이때부터 북한당국은 주민들에게 산을 개간해 3년 동안 농사를 짓게 했다. 대신 산을 개간하면 나무도 함께 심어야 한다. 3년 동안 나무 묘목도 함께 심고 가꾸어 경제림 조성에도 목적을 두었다.

자강도나 내륙 산간지역 주민들은 장사 밑천이 없어 장사활동이 도시보다 덜 활발하다. 산간지역 주민들은 농지가 부족해 화전을 일구어 농사를 짓는 경우가 많다. 산간지대 농민들은 대부분 적게는 1천 평, 많게는 2천 평까지 소토지를 소유하고 있다.

1천평의 소토지에서는 옥수수를 심으면 1.5t 정도가 나온다. 조를 심으면 1t정도의 수확을 거둘 수 있다. 농민들은 개간을 막기 위해 돌아다니는 국토환경보호부 산림경영소 감독원들에게 뇌물을 제공하고 경작을 허용 받는다.

땅을 많이 차지한 주민들은 땅이 없는 도시주민들에게 소작을 주어 가을에 일정부분 현물로 받고 있다. 산간 농민들은 이렇게 생산된 곡물을 팔아 필요한 생활용품을 구입한다. 현재 북한 전국의 산간지대 가구 수는 대략 50만 가구라고 본다면 북한인구의 10%를 차지한다.

이들이 생산하는 곡물은 북한이 공식 발표하는 곡물생산 통계에 반영되지 않는다. 전체곡물의 약 20%로 추정된다. 이 같은 추산은 북한의 산간지대 농민들을 50만호로 가정했을 때 1가구당 평균 1.5t의 곡물을 생산해도 75만t이 된다. 이는 세계식량계획(WFP)의 올해 북한의 곡물생산량 430만t의 20%에 근접하는 수량이다.

농민들은 곡물값이 떨어진 가을에 재워두었다가 값이 비싼 봄철에 팔아 이윤을 챙긴다. 1998년부터 북한당국은 소토지를 조사하기 시작해서 생산된 곡물 중 일부를 세금으로 바치게 하는 방침을 세웠다. 그러나 최근 대북소식통에 따르면 북한당국이 2006년 소토지 조사를 끝냈으나, 아직까지 곡물회수는 없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가을에 놀면 일년 내내 고생=가을이 되면 조바심이 나는 것은 당연히 쌀 수확을 앞둔 벌방(벼농사를 짓는 논) 농민들이다. 식량난 이후부터는 곡식이 여물기 시작하면 군대가 농장 밭을 차지하고 무장보초를 선다.

수확량이 풍부할 때야 도둑질이 없었다. 군대가 직접 농장에서 수확된 쌀을 걷어가는 일은 식량난 이전에는 상상하기 힘들었다. 일년 내내 땀 흘려 지은 낟알 대부분을 군대에게 넘겨야 할 처지에 놓인 농민들은 어떻게든지 일년 먹을 식량을 마련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인다.

벌방은 산간과 달리 개간할 만한 화전이 없다. 90년대 중반 벌방농민들이 황무지를 개간해 농사를 지었지만, 곧 당국이 일체 조사하여 국유지로 만들어 버리면서 빈손 털고 나앉게 되었다. 때문에 농민들은 스스로 훔치지 않으면 일년 양식을 장만할 수단이 없다.

수확된 벼를 탈곡장에 넣기 위해 볏단을 나르는 데는 5~6명이 한 조가 돼 움직인다.

탈곡장을 가는 길에 농장원들의 집을 지나는 경우가 있는데, 우선 가까운 집에 볏단을 하나씩 던져 놓는다. 그러면 가족들은 벼 단을 집안에 끌어들여 낟알을 털어낸다. 그리고 함께 일한 농장원들과 나눈다. 군대가 임의로 농가를 수색하기 때문에 농민들은 밖에 장독을 묻고 거기에 낟알을 숨긴다.

평북도 용천군 용천벌 농장원 출신 탈북자 김정민(가명) 씨는 “가을이 되면 일년 먹을 쌀 걱정에 잠을 자지 않는다. 분배만 가지고 어림도 없다. 도시 주민은 장사를 할 수 있지만, 농민들은 가을에 놀면 굶게 된다. 낟알 도둑질 하다 군대들에게 맞아 죽은 사람이 나올 정도였다”고 회고 했다.

농장원들은 ‘야간작업’도 한다. 밤에 벼 이삭을 도둑질 하는 것이다. 민가와 멀리 떨어진 밭 가운데 나가 준비한 소형작두로 벼 단의 이삭부분을 잘라 마대에 싣는다. 어떤 농민은 소달구지를 끌고 나가 직접 도둑질한 벼를 싣고 오는 경우도 있다. 물론 지키는 군대에 뇌물을 줘야 하지만, 어떤 때는 경비병까지 따돌리면서 도둑질을 한다.

김씨는 “어떤 날은 밭에 이삭 없는 벼 단이 산더미처럼 쌓여져 있었다. 군대들이 무장하고 농가를 샅샅이 뒤져 마당에 묻어놓은 쌀독을 뒤져 회수하고 농장원은 감옥에 넣었다”고 말했다.

90년대 중반부터 정전이 되면서 함경남도 신포, 리원군 등 각지방에는 옛날식 발 방아가 등장했다. 발방아집에서는 도둑질한 벼 이삭도 찧어주는 대신 이익을 나눈다.

최근 국내로 귀환한 납북어부 최욱일 씨는 “농민들에게 충분한 배급을 주지 않아서 사람들이 많이 굶어 죽었다”고 말했다. 도시 노동자보다 굶어 죽는 숫자는 덜했지만, 농촌도 힘들기는 마찬가지였다는 것이다. 결국 만성적인 식량난은 북한 농촌을 군대의 횡포와 범죄가 횡행하는 현장으로 변모시키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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