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개최된 북한 노동당 정치국 확대회의에서 혁명의 수도 평양시의 당위원장과 백두혈통의 근원지가 속한 양강도의 당위원장이 각각 김영환, 리태일로 교체돼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무엇보다 이들은 불과 약 두 달 만에 부임지(赴任地)를 옮긴 것으로 파악되고 있어, 이를 둘러싼 궁금증이 증폭되고 있다.
실제 김영환은 지난해 말 열린 노동당 제7기 제5차 전원회의에서 양강도 당위원장에 임명됐고, 리태일 역시 올해 초 전원회의 결정 관철 궐기대회를 통해 개성시 당위원장에 임명된 것이 확인됐다. 그러나 이들은 이번 확대회의를 통해 각각 평양시와 양강도로 전임 발령됐다.
이와 관련해 북한 내부 소식통은 10일 데일리NK에 “평양시 살림집 건설과 삼지연지구 관광 개발이라는 당의 사업을 틀어쥐고나가는 데 있어 김영환과 리태일이 능숙한 당 일군(일꾼)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라며 이들의 인선 배경을 설명했다.
소식통에 따르면 김영환의 임명 배경을 두고 당 간부들 사이에서는 ‘평양시 살림집 건설 사업을 책임지고 이끌어나갈 적임자로 평가됐기 때문’이라는 중론이 모아졌다. 현재 추진 중인 평양시 살림집 건설 사업과 관련해서 건설과 경제에 해박한 김영환이 김능오보다 실무적인 면에서 뛰어나다고 보는 최고지도자의 견해에 따라 평양시 당위원장이 교체된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왔다는 것이다.
앞서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지난달 29일 당 정치국 확대회의 개최 소식을 전하면서 “인민들의 생활상편리를 최우선시하는 우리 당 건설정책의 요구에 맞게 평양시와 지방의 살림집건설을 다그치기 위한 대책적 문제들이 토의됐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본보는 앞서 소식통을 인용해 김 위원장이 최근 평양 모란봉구역에 ‘김정숙거리’를 만들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보도한 바 있다.(▶관련기사 보기: [단독] 북한, 평양에 ‘김정숙 거리’까지 만든다)
김 위원장은 지난 2012년 집권 이후 창전거리, 은하과학자거리, 미래과학자거리, 려명거리 등에 주민 살림집을 현대적으로 지어 무료로 공급하는 일종의 ‘선물정치’로 인민의 지도자로서의 이미지를 부각하며 체제안정에 주력해왔다. 이에 미뤄 이번 평양시 살림집 건설 역시 불안정한 대내외 정세 속에서 최고지도자에 대한 충성심을 고취하고 내부결속을 꾀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이런 배경에서 김 위원장은 과거 당 부부장으로 삼지연 건설현장 시찰에 자주 동행했던 김영환을 평양시 당위원장에 발탁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 건설 분야의 능수로 평가받는 김영환은 전체 건설 공정에 대한 높은 이해도와 준공 목표 달성을 위한 추진성, 건설 자재 수급, 적재적소의 인력배치까지 종합적인 능력을 갖춘 인물로 여겨지고 있다고 한다.
특히 그는 건설부문 행정일꾼들의 의견을 수렴해 사업에 반영하고 기술실무일꾼들과도 조화를 잘 이루는 유능한 당 일꾼으로 타 간부들에게도 귀감이 되고 있다는 게 소식통의 전언이다.
이런 가운데 이번 김영환의 임명으로 평양시 당위원장 직을 내려놓은 김능오는 일단 일선에서 물러나 중앙당 부부장으로 당역사연구소 당사적정리연구 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아울러 양강도 당위원장에 리태일이 임명된 것을 두고 당 내부에서는 삼지연지구 관광 활성화를 위한 포석으로 보고 있다고 소식통은 전했다. 리태일은 북-중 접경지역인 평안북도의 당 부위원장 출신으로, 합작교류 및 관광 사업에 능한 당 일꾼으로 평가받고 있다는 설명이다.
소식통은 “(리태일 임명에 대해) 간부들은 삼지연·백두산지구를 세계적 관광지구로 만들겠다는 당 중앙의 큰 전략 속에 단행된 간부사업(인사)으로 보고 있다”며 “조직지도부도 그의 대인관계, 외교력, 관광산업에 대한 남다른 감각을 보고 삼지연·백두산지구 관광 개발 사업을 믿고 맡길 만하다고 평가했다고 한다”고 말했다.
북한은 올해 10월 10일 당 창건 75주년에 맞춰 완공한다는 목표에 따라 삼지연지구 마지막 3단계 건설을 속도감 있게 진행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관광 및 합작사업 분야의 적임자를 양강도 당위원장으로 배치한 것은 대북제재로 인한 경제적 위기 속에서 돌파구를 마련하는 차원의 사전 준비 작업으로 풀이된다.
특히 올 초 개성시 당위원장에 임명된 리태일을 두 달도 채 되지 않아 양강도로 보낸 배경에는 장기화하는 개성공단 폐쇄와 남북관계 경색 국면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남북 합작사업인 개성공단이 당장 재개되기 어렵다는 인식 아래 리태일과 같은 유능한 인물을 개성시에 남겨둘 필요가 없다는 최고지도자의 결단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소식통은 “위에서는 현재 개성공단은 언제든 누가해도 기초와 체계가 세워져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고 본 것”이라고 말했다. 개성공단 운영방식 등은 각종 문서나 보고서를 통해 충분히 파악할 수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오더라도 크게 문제될 게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는 이야기다.
한편, 통일부 당국자는 이번 확대회의에서 이뤄진 당위원장 인사와 관련해 “인물들의 면면을 보면 삼지연 건설이라든지 이런 부분에서 유공이 있는 사람들이 발탁된 측면이 있다”며 “김정은 위원장의 성과 중시 인사 스타일, 신상필벌 경향이 아닌가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말 당 전원회의 이후 북한 매체에 실린 인사 보도에 의하면 김영환은 당 중앙위원회 후보위원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위원으로 선출됐으며, 리태일은 당 중앙위원회 후보위원으로 보선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