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료 시신 수습하고 유골 보관까지”…러시아 北 노동자의 비애

코로나 국경봉쇄 장기화에 따른 新조치...北 당국 "노무자 사망 날짜는 물론 사인도 남기지 말라"

러시아 우수리스크에 건설되고 있는 빌딩의 모습. 당시 이곳에서 많은 북한 주민들이 건설 노동자로 일하고 있었다. 2019년 6월 촬영. / 사진=데일리NK

러시아에 파견된 북한 노동자들이 사망한 동료의 유골을 작업반이나 숙소에 보관하면서 이동할 때마다 이를 챙기고 다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경봉쇄 장기화로 귀국이 막히자 동료의 유골 보관까지 노동자들의 몫이 되고 있다.

12일 데일리NK 러시아 대북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 당국은 최근 러시아 파견 중 상해 또는 질병 등의 이유로 사망한 노동자들의 시신 수습과 유골 보관 방법에 대한 새로운 지시를 하달했다.

현지에서 사망자 화장 처리를 한 후 유골함을 귀국하는 인원이 생길 때까지 각 작업 소대가 보관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유골함이나 관련 문서에 사망 시각, 사인(死因) 등을 기록하지 말라는 지시도 포함됐다.

이에 대해 소식통은 “차후 유골을 반입하게 될 때 그 시점에 가까운 날짜로 사망 시각을 유골함에 박으라는 게 국가 방침”이라고 말했다.

북한 당국은 지난 4일 토요 정치학습 시간을 통해 노동자들의 체류 연장 및 이들의 통제를 강화하라는 포치(지시)를 하달했는데, 사망자 처리와 관련된 지시는 정치학습 시간을 통해 하달된 포치와 별개의 지시로 노동자들에게 전달된 것으로 알려진다. (관련기사 바로가기: 잔악한 北 통제 방식… “해외 노동자 탈북 시도시 다시는 못 걷게”)

사실 국경봉쇄 전에는 노동자가 해외에서 사망할 경우 현지에서 화장 처리를 하고, 고향에 있는 가족에게 사망 통보한 뒤 본국으로 복귀하는 인원이 유골을 가지고 귀국하도록 조치했다.

하지만 국경봉쇄 뒤 일부 파견자가 코로나 의심 증상으로 사망하자 현지에서 자체적으로 화장하고 유골도 현지에서 처리하도록 했다.

다만 코로나 의심 증상으로 사망한 경우가 아니라면 화장 처리 후 유골을 보관해 왔는데, 기본적으로 유가족을 위해 사망 시각을 유골함에 기록해 왔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북한 당국은 최근 조치를 통해 유가족이 사망자의 사인과 정확한 사망 시각까지 알 수 없게 한 것이다.

현재 파견자들의 귀국이 제한되고 있고, 이들의 해외 체류가 장기화되면서 유골을 즉시 전달할 수 없기 때문에 당국이 유가족의 반발을 고려해 이 같은 조치를 내린 것으로 풀이된다.

이런 가운데, 러시아 파견 노동자들은 작업 소대원 중 사망자가 발생할 경우 동료들이 1인당 10달러가량을 각출해 화장 시신 비용을 마련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사망자의 모든 처리 비용을 동료 노동자들이 자력갱생으로 마련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게다가 유골을 전문 보관소에 맡기면 계속 돈이 나가기 때문에 이런 비용을 아끼기 위해 노동자들은 동료의 유골함을 직접 보관하고 있다. 작업반 또는 숙소에 두고 작업 현장을 옮길 때마다 직접 가지고 다닌다는 것이다.

소식통은 “사망한 동지의 유골을 옆에 두고 생활한다는 것도 괴로운 일이지만 유가족에게 사망 날짜도 가르쳐 주지 않는다는 것은 너무한 처사가 아니냐”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