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포커스] 김경희 재등장과 김정은 체제 취약성의 상관관계

지난 25일 삼지연극장에서 열린 설 명절 기념공연에서 김경희가 2013년 12월 장성택 처형 6년여 만에 처음으로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사진=연합

김정은의 고모인 김경희가 남편 장성택이 처형된 지 6년여 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지난 25일 김정은의 설 명절 기념 공연 관람 당시 김경희가 동석한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이 같은 사실은 김정은이 여전히 체제 장악을 미완성의 숙제로 남겨 놓고 있음을 보여준다.

김경희의 재등장과 관련하여 일각에서는 김정은이 드디어 홀로서기를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김경희와의 껄끄러운 관계에도 불구하고 그를 다시 공식 무대에 등장시킨 것은 김정은이 확고한 권력 장악 현실에 자신감을 가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김정은이 백두혈통의 결속과 가족화합을 과시하면서 노동당 7차 5기 전원회의에서 공식화한 ‘정면돌파전’에 대내적 지지를 끌어내기 위함이라는 주장도 등장했다.

이런 분석들은 일면 타당성을 지닌다. 북한에선 현재 김정은이 제시한 ‘정면돌파전’ 관철을 위한 군중대회가 열리면서 대내 결속에 열을 올리고 있는 모습이다. 현 상황에서 김경희라는 백두혈통의 상징적 인물을 등장시킨다면 김정은의 독재 권력을 더욱 공고하게 하고 반미 구도를 선명히 하면서 주민들에게 내핍을 강제하며 ‘정면돌파’를 위한 명분을 얻게 될 것이다.

그러나 다른 각도에서 볼 때 김경희의 재등장은 김정은의 체제 장악이 여전히 미흡한 수준이라는 점을 방증한다. 첫째, 김경희가 재등장한 시점이 의문스럽다. 김정은이 진정 북한 체제를 완전히 장악하고 있으며 그 같은 자신감을 과시하려 했다면, 2017년 11월 말 핵 무력 완성을 선언한 직후가 더 적절한 시기였다고 생각된다. 당시 북한 당국은 전략적 지위를 운운하며 미국과 전쟁 일보 직전까지 가는 대치 국면이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백두혈통의 아이콘과 같은 김경희를 내세웠어야 김정은의 위대성이 배가되고 체제결속 효과도 극대화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현 상황은 미국과의 비핵화 협상도 여의치 않을 뿐 아니라 대내적으로도 주민들의 불평불만이 점증하고 있는 시점이다. 수세적인 상황에서 김경희라는 상징적 존재를 소환했다는 건 그만큼 상황이 녹록지 않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김정은이 실제로 권력 장악의 완성과 홀로서기의 자신감을 과시하려 했다면 굳이 김경희를 재등장시킬 이유는 없었다고 생각된다. 김경희의 권위를 빌어야 할 만큼 김정은에겐 상황이 좋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둘째, 김경희의 재등장은 북한 당국이 강경 보수화로 가는 신호라고 할 수 있다. 앞서 북한 당국은 리선권을 신임 외무상으로 기용한 바 있다. 리선권은 통일전선부장이던 김영철의 심복으로 강경파 인사로 분류된다. 이 와중에 수구 강경파로 알려진 김경희를 재등장시킨 것은 대내적으로 반사회주의, 비사회주의와의 투쟁을 강화하겠다는 김정은의 의지를 간접적으로 시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물론 노동당 내에서 어떠한 공식 직책도 갖지 않고 있는 김경희가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경희’라는 인물이 지닌 상징성을 감안할 때 전원회의에서 밝힌 김정은의 사회통제 의지를 읽을 수 있다. 이 역시 김정은 자신의 권력 관철 능력이 확고하다면 굳이 김경희의 상징성을 동원할 필요가 없는 것이라는 점에서 그의 취약한 권력 기반을 말해주는 것이다.

이처럼 김정은이 백두혈통의 위대성과 그것을 통한 대내결속, 정면돌파전 등을 부쩍 강조하고 있는 이유는 그만큼 대내외적인 상황이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음을 시사한다. 국제사회의 제재가 풀리기를 고대하는 북한 주민들을 상대로 북한 당국이 대미 적개심을 고조시키고 내핍을 통한 위기 돌파를 선전, 선동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그 같은 임계점을 최대한 늘리기 위해 북한 당국이 동원하는 선전, 선동이 약발을 다할 때 북한 사회는 엄청난 변화의 물결에 휩싸일 수 있다. 한국 정부는 발생할 수 있는 모든 가변적 상황을 종합 검토하며 북한 돌발 상황 가능성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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