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민주화 이후 시민사회의 발전방향을 찾다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금지법)이 시행된 지난달 28일 이후, 대한민국의 사회문화가 바뀌고 있다는 소식을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바라보는 필자는 그동안 쌓였던 체증이 오랜만에 내려가는 시원함을 느꼈다. 그런 게 가능하겠느냐던 갸우뚱하던 중국 친구들은 신기하고 놀란 모습이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부러움과 함께 역시 한국이 자기들과는 뭔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는 표정이 역력하다.

시진핑의 부패척결 성공은 관례를 깬 엄중한 사법집행

부정부패에 대한 반발과 이를 타파하기 위한 중국 공산당의 노력은 이미 90여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1921년 7월 31일, 중국 전역 50여 명의 공산당원을 대표하여 참가한 13명은 저장성(浙江省)의 자싱(嘉兴) 난후(南湖)의 유람선에서 첫 공산당 강령을 통과시켰다. 국민당의 부정부패와 자본가계급을 타파하고 무산계급 통치를 주장한 중국공산당은 바로 이 공산당 제1차 전국대표대회를 통해 정식으로 출범한 것이다.

1923년, 안웬루(安源路) 광산노동자회관의 류샤오치(刘少奇) 주임(主任)은 내부의 심각한 부정부패 문제를 조사하여 ‘소비합작사 사무공약(消费合作社办事公约)’을 제정했다. 이것은 중국 공산당 부정부패 척결의 첫 문서가 되었고, 그 이후로 중국은 지금의 시진핑 체제까지 약 93년간의 부정부패에 대한 싸움을 끊임없이 진행하고 있는 셈이다.

중국의 부정부패와의 전쟁은 이미 알려진 대로 지난 2013년 시진핑이 국가주석으로 취임한 이후 급격한 변화를 보였다. 소위 고위 관료를 뜻하는 ‘호랑이’와 하급 관료를 뜻하는 ‘파리’를 동시에 때려잡아야 한다는 슬로건이 아직도 유효하고, 지금도 엄중하게 진행 중이다. 시진핑 주석에 대한 중국 인민들의 열렬한 지지는 ‘고위층에는 관대’했던 관례를 깨고 기준에 따라 엄격하게 부정부패에 대한 사법 집행을 진행했다는 점에 있다.

김영란법, 대한민국 시민사회의 새로운 희망이 되다

인맥과 배경이 아니라 실력으로 경쟁하고, 관습과 관례가 아니라 투명한 사회로 향하는 첫 출발이 될 김영란법 시행은 대한민국 사회의 새로운 사회운동이 되어야 한다. 오랜 병폐로 지목되었던 연줄 문화의 종결이 될 수 있어야 하고, ‘민주화 운동’ 이후에 방향을 잃었던 시민사회의 새로운 동력이 되어야 한다.

‘부패청산화 운동’ 혹은 ‘김영란법 운동’으로도 명명될 수 있는 이 법의 강력한 실현은 대한민국 사회가 민주화 이후 방향을 잃고 갈팡질팡하던 과도기를 종결시킬 수 있다. 선거철마다 만연했던 지역주의도 어느 정도 정화된 지금, 집단이기주의와 기득권 타파를 위한 시발점으로 김영란법의 적극적인 참여가 혼란과 위기에 빠진 대한민국을 다시 일으키고 결집하게 할 것으로 생각된다.

학연, 지연, 혈연의 배경과 인맥, 그리고 금전으로 모든 일을 쉽게 처리해 왔던 부정청탁 제일주의 문화는 이번 기회에 뿌리 뽑아야 한다. 배경과 인맥과 돈이 없는 힘없는 사람들도 이제는 공정하게 실력과 노력으로 경쟁할 수 있는 사회로 갈 수 있는 서막이 올랐다.

법치주의와 준법사회 문화로 공정한 경쟁과 투명한 사회가 보장될 수 있는가의 여부는 모두의 참여도에 달려있다. 대한민국 사회가 한 단계 성숙하고 투명하며, 청렴해 지는 것은 국가의 경쟁력과 품격을 높일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새로운 도전에 대한 희망과 믿음을 주게 될 것이다.

이는 또한 통일 준비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하다. 즉 현재 우리 사회의 남남갈등과 과도기를 종식시키고 새로운 평등사회의 건설을 실천하는 것은 미래 통일한국 시대에 예상되는 남북 갈등을 예방하거나 최소화 시킬 수 있는 경험을 축적한다는 의미에서도 김영란법의 엄중한 실행은 중요하다.

“이렇게까지 쎄게 할 수 있는 거야?”

부러움에 가득한 중국 친구의 질문이다. 오랜만에 중국 친구들 앞에서 어깨를 펴며, 별거 아니라는 듯이 낮은 목소리로 너스레를 떨었다.

“중국도 하고 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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