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의 ‘저돌적 연설’ 배후 논리는?

▲ 21일 연설 도중 설명을 위해 주머니에 손을 넣은 노 대통령 ⓒ연합뉴스

노무현 대통령이 21일 민주평통자문회의에서 군원로들로부터 동맹국, 언론, 자신과 함께 정치적 위상을 같이 했던 전 총리와 전 장관들은 물론 대한민국과 국민에 이르기까지 그 특유의 조악한 언어를 난사하여 전방위적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언론이 이번 대통령의 발언에 대하여 자문을 구하는 전문가들 중의 상당수가 정신과 의사들이라는 점을 보면 “혹시 대통령이 정말 제 정신인가?”라는 경멸성 농담이 이제는 개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이 되어가는 듯하다.

예를 들어 “모든 것이 노무현 하는 것 반대하면 다 정의라는 것 아니겠습니까? 흔들어라 이거지요, 흔들어라. 난데없이 굴러 들어온 놈. 예, 그렇게 됐습니다”라는 부분은 열등의식과 독선 사이를 오고가는 심리적 공황상태에 노대통령이 있다고 분석하기에 딱 어울리는 표현이다.

대통령의 수준 낮은 저질 언사들은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이번 연설의 문제점을 노무현식 표현에서만 찾는 것은 사태의 핵심을 놓치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신의 대북정책이 올바른 전제와 기초위에 놓여 완전히 정당함에도 불구하고 보수세력과 기득권들이 부당하게 그를 비판하고 “흔들어댄다”는 것이 이 연설의 주요부분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그가 자신의 억울함을 일종의 ‘논증’의 형식으로 제시하였다는 점이다. 논증이란 전제들과 결론으로 이루어진 것으로서 그 타당성은 표현의 저질성 여부와 무관하게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노무현 연설 무엇이 틀렸나?

노대통령의 ‘참여정권의 대북정책 정당성 논증’의 핵심을 불필요한 부분을 제거하고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1. 참여정권의 대북정책의 목표는 ‘평화’와 ‘신뢰’이다.
2. 참여정권의 대북정책의 원칙은 ‘상호주의’가 아니라, 목표달성에 유익성 여부가 판단기준인 ‘실용주의’다.
3. 안보의 목적은 전쟁의 승리보다는 전쟁예방을 통한 평화지향(유지)에 있다.
4. 김정일이 나름대로의 판단력이 있다면, 즉 자살을 마음먹지 않는다면 전쟁을 일으키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한국군의 국방력은 북한의 전쟁도발을 억제할 수 있을 만큼 압도적 우위에 있기 때문이다.
5. 평화지향적 안보는 북한과의 전쟁이나 대결보다는 대화를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6. 북한과의 대화의 전제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인 상대방의 존재를 인정해야 하고, 나아가서 존중해야 하며, 상대방의 의견이 옳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인정해야 하고, 내가 틀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인정해야 함”에 있다.

노대통령이 볼 때 위의 전제 6개는 모두 당연한 것이다. 예를 들어 김정일이 망할 줄 알면서도 전쟁을 도발할 정도는 아니라는 점에서 “멀쩡하다”거나 “판단력이 있다”라고 평했을 때 이를 “박살내는” 대한민국의 수준이 한심하다는 것이다. 또한 국방비만 보아도 남한의 국방력이 월등한데도 전작권 인수나 한미연합사 해체를 반대하는 군원로들에게 “그 많은 돈을 우리 군인들이 다 떡 사 먹었느냐, 옛날의 국방장관들 나와서 떠드는데 그 사람들 직무유기한 것 아니에요. 그 많은 돈을 쓰고도 북한보다 약하다면 직무유기 한 거지요?”라고 분통을 터뜨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대북지원을 “일방주의적 퍼주기”라고 비판하는 데에 대해서는 목표달성을 위한 실용주의적 관점을 경직된 상호주의와 혼동하는 데에서, 김정일 정권과의 대화지상주의를 반대하는 비판에 대해서는 평화를 위한 안보적 차원의 전략임을 모르는 데에서, 인간성에 대한 범죄를 “현재 진행형으로” 자행하고 있는 김정일 정권에 대한 참여정부의 대북 저자세에 대해서는 “민주주의의 원리에 속하는 상대방 존중의 정신”에서 온 것이라고 노대통령은 주장할 것이다.

미 핵우산 빼면 한국군으로 억지력 있나?

얼핏 보면 평범해 보이는 노대통령의 대북정책의 전제들을 ‘노무현식으로’ 정당하다고 판단할 때 “한국의 보수세력과 기득권 세력들”의 비판 모두를 “굴러들어온 놈 흔들기”라고 단정하는 것은 손바닥 뒤집기보다 쉬운 일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점은 노대통령의 자기 확신이다. 참여정권의 대북정책에 대한 비판이란 예외 없이 모두 부당한 정치적 모략이자 굴러들어온 대통령 왕따 시키기에 불과함으로 자신의 정당한 대북정책 역시 바꿀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노대통령이 그 정당성을 극단적으로 하소연하는 그의 대북정책 문제점은 무엇일까?

우선 어느 정권의 대북정책이든 남북의 군사적 대치 하에서는 전쟁억지(예방)를 통한 평화유지에 우선권을 두리라는 점은 명백하다. 노정권도 예외가 아니며, 심지어 한국군의 국방력이 북한을 압도하여 김정일이 “완전히 돌지 않는 한” 전쟁을 할 이유가 없고, 따라서 평화유지라는 안보의 최우선 목표는 ‘이미’ 달성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노대통령은 평화를 위해서는 북한과의 대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미 확보된 평화를 위해서 다시 평화를 위한 남북 간의 대화의 필요성은 어디에 있을까?

김대중 정권 이래 “신뢰를 통한 평화체제 구축” “북한의 개혁개방유도”라는 것이 그 표준적인 대답들이었다. 그러나 불법송금 5억불을 포함하여 100억불을 상회하는 대북지원을 동반한 수많은 남북대화는 신뢰를 통한 평화체제 구축은커녕 북한의 핵보유라는 결과를, 북한의 개혁개방 대신에 선군정치 강화만을 낳았다. 여기에 ‘우리민족끼리’라는 폐쇄적 민족주의와 동전의 양면을 이루는 노무현식 대미자주노선은 전시작전권 인수와 한미연합사해체로 귀결됨으로써, 객관적으로 보아 지난 9년간의 유화적 남북대화는 평화나 신뢰구축에 전혀 기여를 하지 못하고 차라리 한미동맹에 기초한 전쟁억지력 약화를 초래하였다.

즉 확고한 전쟁억지력에 기반하여 남북대화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평화추구를 빙자한 유화적 남북대화가 북한의 핵보유라는 안보파탄으로 귀결되자 거꾸로 한국군의 독자적 전쟁억지력과 “김정일 제정신론”을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그리고 전작권 인수와 한미연합사해체가 야기하는 한미동맹 약화를 호도하기 위하여 군원로들의 직무유기론과 함께 동맹의 중요성 강조를 “미국 뒤에 숨어서 형님 백만 믿겠다”는 대미의존론으로 비하하기 위하여서도 ‘한국군만의 독자적 전쟁억지력’을 강조하는 것이다.

‘한국군만’의 압도적 군사우위가 사실이 아님은 군통수권자인 노대통령 자신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한반도 유사시의 주요작전개념은 북한의 전쟁 도발시 압도적 초반공세를 지연, 방어하다 미군의 대규모 증원부대가 도착한 후에 반격을 시도함에 있다. 그러나 모든 군사전문가들은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한 지금 이러한 재래식 작전개념은 더 이상 유효하지 못함을 강조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국민이 태평한 것은 -노대통령의 주장처럼- 김정일의 전쟁도발이 북한의 궤멸로 이어질 것이라는 확신에 있다. 그러나 이런 확신의 배경은 한미동맹에 근거한 핵우산의 존재에 있는 것이지 한국군만의 전쟁억지력에 있지 않음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다. 나아가 노무현대통령이 집요하게 추구하는 한미연합사의 해체는 필연적으로 한미군사동맹약화로 이어지고, 핵을 보유한 북한이 미국서부를 사정권으로 갖는 탄도미사일을 보유할 경우 북한의 핵위협이나 핵공격에 미국이 핵우산을 제공할 것이라는, 지금까지는 당연시 되었던 공리(公理)가 점차 그 실효성이 의문시되는 가설(假說)의 수준으로 바뀌고 있다.

그리고 북한의 핵보유로 전쟁억지력이 약화될 경우 김정일의 전쟁 도발은 그만큼 이성적 판단으로 간주될 것이며, 역시 그만큼 전쟁도발의 객관적, 주관적 가능성이 높아짐은 명백하다.

“은밀한 재정의의 오류”

다른 한편 노대통령의 전쟁억지력 확보 호언은 열우당과 친북좌파들의 기존입장을 정면으로 부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견 흥미롭다.

지금까지 보수우파에서 북한인권에 대한 비판이나 검증을 통한 대북지원 등을 주장할 경우, 친북좌파들은 “전쟁하자는 것이냐?”며 협박하기가 일쑤였다. 그리고 이 전쟁위험의 이유는 김정일을 자극하면 어떻게 나올지 모른다는 것이다. 그러나 노무현의 전쟁억지력 확보론으로 인해 앞으로 친북좌파는 “김정일정권비판=전쟁위험” 그리고 “우파집권=전쟁위험” 등의 주장을 하기 위하여는 우선 노무현식 “김정일 제정신론”을 극복하거나 비판해야 하는 부담이 생긴 것이다.

북한의 핵보유 이후 객관적으로 현저히 약화된 한국군만의 전쟁억지력, 친북좌파의 “김정일자극=전쟁위험론”이라는 전가(傳家)의 보도(寶刀)를 포기하면서까지 추구하는, 실정(失政)의 호도를 넘어서는 또 다른 이유가 있을까? 분명히 있을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노대통령은 남북대화의 파탄적 결과를 실정으로 인정하지 않고, 차라리 정당하다고 주장하면서 “달라질 것은 달라져야 하기 때문에 터질 때는 터지더라도 다르게 할 건 다르게 하겠다, 그게 단임 정신 아니겠느냐?”고 하면서 사생결단의 의지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노대통령의 대북정책 전제들의 다른 측면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것은 북한과의 대화의 ‘전제’에 “민주주의의 원리에 속하는 상대방 존재의 인정과 존중” 등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이때 주의해야 할 점은 상대방 존재의 인정이나 존중은 ‘대화의 결과가 아니라 전제’로 간주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즉 대화를 하는 순간 한국은 김정일정권의 존재를 인정해야 할뿐더러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상대방 존재의 인정이나 존중이 민주주의의 기본원리에 속한다”는 노대통령의 주장은 민주주의 사회 내에서 정상적인 구성원들 간의 대화에는 반드시 속하는 것이며, “상대방의 의견이 옳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과 내가 틀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인정해야 된다”는 주장 역시 일방적 대화가 아니라면 당연히 받아들여야 할 민주적 대화의 전제에 속한다.

그러나 남북대화가 민주사회의 구성원들 간의 대화라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물론 국가 간의, 특히 오랜 적대관계가 청산이 되지 않은 남북 간의 대화에서도 상대방 존재의 인정이란 필수적이다. 그러나 이때 “존재의 인정”이란 김정일정권을 법적, 도덕적으로 인정한다는 것이 아니라 물리적으로 인정한다는 것이다. 대화이건 협상이건 물리적으로 상대방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북한인민 300만을 굶겨 죽이면서 막대한 자금이 소요되는 핵무기를 개발하는 김정일을 법적, 도덕적으로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이 북한과의 대화의 전제라고 말하는 것은 결코 상식적으로 이해될 수가 없다. 특히 핵실험과 인권문제로 유엔이라는 국제사회의 결의에 의해 제재를 받고 있는 정권에 대해서는 더 말할 필요가 없다.

노무현대통령은 민주적 사회에서의 대화라는 맥락을 교묘하게 남북대화로 옮겨 놓음으로써 김정일 정권에 대한 정당한 의심과 비판을 무력화시키고 있다. 민주사회에서라면 김정일정권과 같은 조폭집단을 존중해야 할 대화의 상대방으로 택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화의 결과가 아니라 전제로서 김정일정권에 대한 존중을 요구한다면 북한은 신뢰구축을 위하여 현실적으로 해야 할 어떤 의무도 없다. 노무현정권이 대북정책의 원칙을 상호주의가 아니라 실용주의로 내세우는 속셈도 실은 북한이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남한의 대북지원에 어떠한 의미 있는 보답도 하지 않았고 또 않으리라는 점을 노정권 스스로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노대통령이 상호주의를 “니가 한 대 때리면 나도 한 대 때리고, 이게 상호주의 아니겠어?”라고 풀이한 것은 논리학에서 말하는 이른바 “은밀한 재정의의 오류”에 속하는 것이지만, 무엇보다도 그 악의적 저질성으로 인해 일말의 설득력도 없다.

김정일의 도발 가능성 객관적 증가

다른 한편 노무현식 실용주의는 대북정책의 장기적 목표달성을 위한 유익함을 의미하며, 무엇이 유익한지는 오로지 노무현 정권이 알아서 “장기적으로” 판단한다는 점에서 노무현식 실용주의란 “참견하지 말라!”는 주장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실제로 김대중정권부터 노무현정권에 이르기까지 납북자, 이산가족 문제에서 북한이 현실적으로 어떤 의미 있는 행동을 하였는가?

그렇다면 노대통령이 주장하듯 북한의 주장이 옳고 대한민국의 주장이 틀릴 수 있는 영역은 도대체 무엇일까? 대화를 함에 있어서 소소한 기술적 측면을 제외한다면, 북한의 연방제 통일주장, 북한정권의 정당성, 반미자주노선, 북핵개발의 정당성 이외에 무엇을 상상할 수 있을까?

실제로 이미 김대중-김정일의 615선언에 의해 연방제통일론은 한국내 친북좌파의 공식적 통일관이 되었고, 노대통령은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김부자 세습정권의 정당성을 간접적으로 강화시켜 왔다. 또한 이번 연설에 주요부분을 이루고 있는 대미자주론은 반미자주노선의 심리적 전단계이며, 또 노대통령은 북한의 핵개발이 미국의 전쟁위협과 압력에 대항하기 위한 자위수단이라는 점을 인정하여 왔다. 민주주의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봉건세습 파시스트집단인 김정일정권과의 대화에 민주주의 원리를 뒤집어씌우고 그 밑에서 실은 남북 정권이 음험한 입맞추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노정권은 ‘평화’와 ‘신뢰’라는, 그 자체로는 아름다운 개념을 겉으로 내세우면서 속으로는 북한의 핵보유와 한미동맹 약화를 통해 김정일의 전쟁도발의 가능성을 객관적으로 증가시키고, 나아가 이런 상황을 “민주주의 원리에 속하는 상대방 존재의 인정과 존중”이라는 형식논리로 정당화시키고 있다. 그리고 이런 과정에서 노대통령은 저돌적이라고 할 만큼 대한민국, 국민, 동맹국, 군원로 등을 일관되게 모욕하면서 역으로 스스로가 정치적 피해자인양 내세우고 있는 것이다.

분명한 점은 김정일정권의 적화통일노선과 함께 국군의 통수권자로서 노무현 대통령 스스로가 그의 잘못된 자기 확신으로 인해 대한민국 제1의 안보 위협요소가 되었다. 또한 김대중식 대북유화주의를 계승하는 열우당과 같은 좌파의 대북정책이 노무현정권의 그것과 동일하다는 점에서, 이제 지난 9년간의 대북정책은 완전히 검증가능하게 다시 고개를 들지 못하도록 확실히 폐기되어야 할 것이다. 새로운 대북정책 없이는 북한인권의 실질적 개선이나 북핵문제의 해결도 무망함은 물론 한국의 안보가 그 뿌리로부터 위협받기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한 해가 며칠 남지 않은 지금, 북한의 핵보유와 대선국면으로 그리고 불안한 경제전망으로 힘들기 짝이 없는 새해가 되리라는 점은 명백하다. 해서 “썩고 있는 것”은 군복무중의 젊은이가 아니라 노무현정권 하의 국민의 가슴이지만, 대한민국 국민 모두는 새로운 출발의 희망을 간직해야 할 것이다.

특히 김정일의 폭정에 시달리다 탈북한 동포들, 그리고 북한인민들에게 새해는 자유와 해방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한 해가 되기를 간절히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