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김정은으로선 중국이나, 최소한 베트남이 부러울 법 하다. 정치적으로는 사회주의 독재를 건실히 유지하면서 경제적으로도 제법 꽤 발전하고 있으니 말이다.
더구나 알짜배기 기업들은 전부 국영이니 정치자금 조달도 식은죽 먹기. 이의를 다는 민초들은 가볍게 제압할 수 있으니 우리끼리 천년만년 해먹기 딱 좋은 구조다.
애초에 북한이 ‘한반도의 완전한 적화’라는 목표 대신 독자적인 독재 유지의 길을 걸었다면 중국이나 베트남과 유사해졌을까? 그렇게 하기엔 과거 남한을 압도하던 할아버지 시절, 남한이란 한줌의 밥을 냉담히 포기할 것을 기대하기란 ‘난망’했다.
이제 미국과의 담판으로 독재체제도 인정받고 경제건설도 ‘자기 식’대로 해보려는 데 막상 용단을 내리기가 간단치 않은 것이다. 정치적 결단은 현실의 구조가 아니라 역사적 맥락에 관한 통찰이 있어야 가능한 일.
젊은 김정은의 지식과 경험과 지혜가 과연 과거로부터 이어져 내려오던 ‘경로의존’의 궤도를 벗어나 새로운 제도로 나아가는 ‘결정적 전환점(Critical juncture)’을 찍을 수 있을까?
적어도 지금 그것을 한번 해보려는 ‘시늉’은 하고 있다. 때마침 문재인이라는 최상의 ‘길동무’를 얻은 건 ‘천운’이다. 지난 반세기 대남 통일전술이라는 주술적 열매치고는 최상품이다. 그치는 뭐든 김이 하자는 건 힘을 다해 도울 것임은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번에 잠시 ‘사달’이 난 것도 과거의 습벽 때문이다. 치고 빠지며 상대를 조급하게 만드는 익숙한 ‘초식’이 트럼프라는 국제정치학 교과서에는 전혀 나오지 않는 ‘기인’을 만나 단번에 무너졌다.
체제보장. 철권 독재를 세계 최강 미국으로부터 인정받고 자신의 ‘천년왕국’을 보장받는다니 꿈만 같은 얘기다. 그것만 달성된다면 ‘핵’은 진짜 없어도 되지 않을까?
김정은의 협상 마지노선은 자신의 독재체제를 공고히 인정받는 것이다. 그것만 ‘제도화’된다면 핵 투자의 ROI(투자대비 수익율)는 최소한 Even(‘똔똔’)이다. 더불어 따라오는 막대한 경제지원은 기분 좋은 ‘싸이닝 보너스(Signing Bonus)’.
그 제도화의 길에 적극 협력해줄 ‘문재인과 그의 친구들’도 있으니 지금 아니고선 영영 기회가 없을 지도 모른다. 김정은으로서는 이래나 저래나 잃을 게 없는 게임을 하고 있다.
문제는 단 하나. 통제 불가능한 제도 밖의 불확실성이 꺼지지 않은 불씨처럼 남아 있다는 것이다. 정작 본질적 문제는 미국이 아니라 북한의 체제 자체에 내재됐다는 불안감.
기존 경로를 벗어나는 순간, 그것이 자신의 독재를 깨는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잠재력을 통제만 할 수 있다면 바랄 게 없다.
다시 생각해봐도 지금 이 타이밍에 한없이 자신을 품어주는 남한의 친구를 만난 건 행운의 여신이 날 향해 미소 짓는다는 믿음을 주기에 충분하다.
그 불확실성은 남한이 오롯이 흡수해 줄 테니까. 물론 그 비용은 남한의 몫으로 말이다. 그런데 남한의 구경꾼들에겐 과연 어떤 평화가 온다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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