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은둔 20일’…또 이목집중 노리나

미사일 발사후 20일이 지나도록 김정일의 공개활동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 7월 5일 미사일 발사 전 김정일은 하루 건너 한번꼴로 군부대를 방문했었다.

미사일 발사 직전인 3일 노동신문에 김정일의 러시아 모이세예프 국립아카데미 민속무용단 공연관람과 4일 새로 건설된 대성타이어 공장 현지지도 소식이 공개된 후 일체 외부활동이 드러나지 않고 있다.

지난 10일 북중우호조약 체결 45돌을 맞아 김정일이 중국 우방궈(吳邦國) 전인대 상무위원장과 원자바오(溫家寶) 총리에게 축전을 보냈다는 소식 외에는 북한 선전매체들의 보도도 없다.

더욱이 7월 8일 김일성 사망 12주년 때 금수산기념궁전 참배 소식도 전해지지 않았다. 김정일의 신변에 이상이 없는 이상, 참배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또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이 북중우호조약 체결 45돌 행사때 양형섭 최고인민회의 부위원장을 만난 데 비해 김정일이 후이량위(回良玉) 부총리를 만나지 않은 것도 상호성의 견지에서 볼 때 이례적이다.

김정일의 ‘장기 칩거’에 여러 가지로 추측이 나오고 있다.

98년 대포동 1호 발사전 ‘은둔 1개월’, 이번엔 발사후 20일

첫째 ‘병 치료설’이다.

북한출신 소식통은 “금수산기념궁전까지 불참한 것을 보면 병 치료 가능성이 있다”며 “김정일은 이전에도 심장병을 앓아 치료를 받곤 했는데, 이번에도 그럴 가능성이 있지 않겠느냐”고 관측했다.

둘째, 미사일 발사 이후 사태의 추이를 관망하고 있다는 관측이다. 2003년 미국이 이라크전을 벌였을 때도 김정일은 48일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중요한 사태가 발생하면 ‘잠적’하는 것이 관례 비슷하다. 이번에도 미사일 사태로 전세계의 관심을 집중서켜놓은 뒤 ‘잠적’해서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셋째, 이번 대포동 2호 ‘실험실패’에 따른 대책에 부심하고 있다는 관측이다. 대포동 2호는 ‘의도된 실패’ 가능성도 있지만, 실패한 것은 ‘현실’이다.

98년 대포동 1호 발사 때의 상황과 이번 상황이 좀 다르다. 98년에는 대포동 1호’ 발사 후 4일 뒤에 북한선전매체들이 ‘광명성 1호’의 성공적인 발사를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또 김정일은 최고인민회의 제10기 1차 회의(9월 5일)를 소집하고, 자신의 체제를 정식으로 출범시켰다. 이어 정권수립 50주년 기념행사(9월 9일)에도 참가하는 등 의욕적인 활동을 벌였다.

당시에 김정일은 미사일 발사 1개월 전부터 공개석상에 나타나지 않다가 미사일 발사 뒤에 왕성한 활동을 펼쳤다면, 이번에는 발사 전에 공개활동을 자주 벌이고 발사 뒤에는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그의 ‘잠적’이 미사일 발사 실패에 따른 낙담일 수 있다는 관측이다.

미, 일의 강력한 압박…신변위협 느낄 수도

넷째, 안보리 결의안에 충격 받았을 가능성이다. 특히 ‘믿었던’ 중국과 러시아가 찬성한 데 따른 심리적 충격이 컸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다섯째, 국제사회의 대북 강경론이 거세짐에 따라 신변에 위협을 느끼고 경호상의 이유로 활동을 자제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미사일 발사 직후 미국은 ‘북한의 도발’로 규정짓고, 부시 대통령이 “외교적 해법 외 다른 옵션도 갖고 있다”고 밝혀 여기에 신변위협을 느끼고 김정일이 은둔중이라는 것이다.

김정일의 은둔은 이미 몇 차례 있어왔다. 그때마다 병치료설 등이 나돌았으나 활동을 재개했다. 따라서 이번에도 김정일은 미사일 발사 후 은둔하는 것이 또다시 이목을 집중시킨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계산된 행동이라는 것이다.

한영진 기자(평양출신, 2002년 입국)hyj@dailyn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