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비핵화 유효’ 발언 北核 해결에 긍정적 신호”

(조선일보 2005-06-24)
미국 부시 1기 행정부에서 4년간 동아시아·태평양 정책을 책임졌던 국무부의 제임스 켈리(Kelly) 전 동아태 담당 차관보는 23일, 퇴임 후 4개월여 만에 한국 신문으로는 처음으로 조선일보와 인터뷰를 가진 자리에서, 자신은 북한이 이미 핵무기를 갖고 있다고 믿는다고 밝혔다. 그는 그러면서도,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최근 한국의 정동영 통일부장관에게 ‘아직도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은 유효하며, 그것은 김일성 주석의 유훈(遺訓)’이라고 말한 대목에 대해 “사실이라면 핵문제 해결을 위해 대단히 긍정적인 반응”이라고 평가했다. 켈리 전 차관보는 세계평화포럼(이사장 김진현·金鎭炫) 등이 서울에서 주최한 DMZ관련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했다. 다음은 인터뷰 요지.

2002년 11월 도널드 그레그 전 주한대사와 돈 오버도퍼 기자가 평양을 방문해 ‘부시에게 보내는 김정일 친서’라는 것을 받아왔다는데, 그에 앞서 당신이 10월 평양을 방문했을 때는 그런 것이 없었나?

“당시 강석주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은 나와 만나 상당히 전투적이고 적대적인 주장들을 펼친 뒤에, 끝부분에서 미·북 고위층 사이의 직접 대화 필요성에 관해 언급했다. 그러나 당시 미국은 그것에 별 관심이 없었다. 왜냐하면 우리는 북한이 이미 그보다 3년 전인 클린턴 행정부 때부터 비밀리에 시작한 것으로 추정되는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에 대해 너무나 실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클린턴 행정부는 북한에 대한 ‘적대적인 말’ 같은 것도 하지 않았다. 그 충격 때문에 미국은 한국과 일본에 대해 대북(對北) 중유(重油) 지원을 중단하겠다고 설득하고 있었다. 나중에 오버도퍼가 전해준 메시지도 부시를 수신인으로 한 것은 아니었고, 내용도 종전과 다르지 않아서, 상황을 바꾸지 못했다.”

북한 핵문제가 풀리지 않는 근본적 이유는 무엇인가.

“북한이 안전보장과 경제혜택을 얻기 위해 핵을 포기하겠다는 전략적 선택을 아직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이 10년간 펴오는 선군(先軍)정책을 지속하는 한, 핵문제도 해결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북한이 먼저 핵을 완전히 포기한 연후에 대가를 논의하겠다는 입장이어서 문제가 풀리지 않는다는 반론이 미국 내에서도 있는데….

“미국 행정부의 입장은 북한이 핵 프로그램을 다 해체해야만 보상을 논의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우선 북한이 핵을 포기하겠다는 약속만 하면 곧이어 양측이 무엇을 서로 어떻게 해나갈지에 대한 구체적 단계와 방안을 협상해 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북한은 1994년 이후 최근까지 재처리한 플루토늄뿐만 아니라, 1994년 제네바 합의 이전에 추출했던 플루토늄 및 그것으로 만들었을 핵무기와 2002년에 밝혀진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까지, 모든 것을 포기하고 투명하게 검증받겠다고 해야 한다.”

북한이 실제 핵무기를 갖고 있다고 보나?

“그렇다고 본다. 사실 미국 행정부에서 북한 문제를 다루는 대부분의 관리들이 다 그렇게 생각한다.”

북한 김정일 위원장은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남북 공동선언(1992년)이 아직도 유효하며, 그것은 김일성 주석의 유훈이라고 말했다는데, 그 말은 북한 외무성의 지난 2월 ‘핵보유’ 선언과 어긋나지 않는가?

“이런 것이야말로 아주 정상적인(normal) 북한 행동 아닌가. 북한은 이런 식으로 혼란스럽게 하는 것이 스스로 약자(弱者) 입장에서 효율적으로 대처(playing a weak hand effectively)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이 평양을 방문하라는 도널드 그레그 전 주한대사 등의 주장에 대해 어떻게 보나?

“행정부가 검토하겠지만, 당장 내일이라도 북한이 6자회담에 복귀한다면 더 좋지 않겠는가. 미·북 직접 대화는 곧 한국 일본 중국 러시아 등 다른 나라들은 필요없다는 이야긴데, 남북이 합의한 한반도 비핵화 선언이 지켜지지 않는 것을 상기한다면, 무슨 근거로 미·북만의 합의를 또 권하겠는가. 미·북이 평양에서 만날 때 한국 정부, 중국 정부 관계자들이 함께한다면 뭐가 나쁜가.”

주한미군이 한반도 이외 지역에도 투입될 수 있다는 ‘유연성’ 개념이 한·미 사이에 현안이 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미래 관계는 결국 충돌로 갈 것인가?

“물론 협력과 상호 발전으로 나간다. 다만, 중국은 전 세계가 괄목할 정도로 성장하고 있고, 군(軍) 현대화도 병행될 것이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의 장기적 역할이 어떤 것일지는 말하기 어려우나, 한·미 동맹이 ‘반(反)중국 구조’로 비쳐서는 안 된다. 한국은 스스로 대륙국가냐, 해양국가냐, 둘 다냐를 생각하고 진로를 찾아 나가야 한다. 당장 미국과 중국 가운데서 선택을 하고 그 결정이 영원히 지속된다는 것이 아니라, 항상 주변 상황을 살피면서 무엇이 현실적 국익에 도움이 될지를 찾아야 한다. 모든 나라와 다 좋은 관계를 가질 수도 있고, 지금도 그렇게 잘 하고 있다. 지금의 한국은 과거와는 다르다. 엄청난 성취를 했다. 더 이상 ‘한국은 새우, 주변 나라들은 고래’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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