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지호, 김진홍 등 뉴라이트 그룹과 황장엽 선생이 빨갱이로 공격받더니만 이제는 한나라당도 ‘친북좌파당’으로 공격받고 있다.
공격의 최전선에는 김용갑 의원이 있다. 김용갑 의원은 3월 27일 성명서를 발표하고 한나라당이 ‘친북좌파정책’을 추진하려 한다며 이를 막자고 호소하고 있다.
과연 한나라당은 친북좌파 정당으로 변질되고 있는가? 무엇이 김용갑 의원으로 하여금 한나라당 내에 친북좌파들이 준동하고 있다고 흥분하게 만들었는가?
김 의원은 자신의 성명서에서 세 가지 근거를 들고 있다.
“한나라당이 하루 아침에 열린우리당이나 좌파세력보다 더 김정일을 존중하고 햇볕정책을 지지하며 전시작전통제권 조기환수를 인정하는 등 친북정책으로 돌아서겠다는 것이다.”(김용갑 성명서에서 인용)
즉 그 세 가지는 1) 더 김정일을 존중하고 2) 햇볕정책을 지지하며 3) 전시작전통제권 조기환수를 인정한다는 것이다. 이 내용 말고는 김 의원의 성명서에서 한나라당이 친북좌파당화 되고 있다는 구체적 근거를 찾기 어렵다.
정치적 선동에는 특징이 있다. 구체적인 정책이나 내용을 가지고 대화와 논쟁을 이끌어 가기 보다는 국민들이 가지고 있는 이미지를 이용하여 싸움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위 세 가지 근거를 보자. “전시작전통제권 조기 환수 인정” 말고는 구체적 내용이 없다. “김정일을 더 존중한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지, “햇볕정책을 지지한다”는 것이 어떤 맥락에서 나온 것인지 아무런 설명이 없다. 아무튼 김 의원이 제시하고 있는 논거를 하나씩 살펴 보자.
전작권 이양은 부시도 찬성, 김의원은 反부시 투쟁의 선봉장이 될 용의가 있는가?
사실 개인적으로도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전시작전권 환수에 무조건 반대하는 것도 옳은 전략은 아니다. 왜냐하면 미국이 자국 군대의 전략적 유연성을 위해 전시작전권 환수에 적극적으로 동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미국도 한국이 준비할 시간을 최대한 배려하여 여러 안 중에 가장 시간을 늦춘 2012년으로 전작권 이양 시기를 양보하였다. 이제 전시작전권 환수 문제는 돌이킬 수 없는 현실이 되어 버린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전작권 환수 합의를 인정한 사실만으로 친북좌파라고 몰아붙인다면 이는 전작권 환수를 동의해준 부시 미국 대통령과 미 국방부도 친북 좌파로 변질되었다고 비난해야 마땅하다.
사실 전작권을 한국이 독자 행사한다고 하여 반드시 한-미 동맹이 약화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억지이다. 미국-영국 동맹을 보면 된다. 영국은 전작권을 미국에게 이양하지 않았지만 영미 동맹은 여전히 튼튼하다.
오히려 한나라당은 전작권 이양 현실을 냉정히 인정하면서도 국방의 현대화와 더 강한 한-미 동맹의 미래 대안을 고민할 때다. 실현될 가능성도 없는 미국과의 전작권 재협상 같은 탁상공론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란 이야기다.
한편 김용갑 의원이 한나라당의 신대북 정책 초안이 “김정일을 더 존중하고 햇볕정책을 지지한다”고 분개한 내용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단정하기 어렵다. 하지만 3월 23일 문화일보 1면 톱에 실린 ‘한나라 대북정책 전환’ 기사의 내용이 사실과 가깝다고 가정한다면 다음과 같은 내용을 보고 김용갑 의원이 흥분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헌법 영토 조항 변경없는 북한 실체 인정 △남북간 상호대표부 설치 △전시작전통제권 전환합의 실체 인정 △6자회담 틀 속 북한인권 문제 논의와 확장된 인권 개념 적용 △검증을 전제로 한 대북 인도적 지원과 개성공단 적극지원 등 경제협력 대폭 확대 △핵불능화 조치 전제로 평화체제 구축 논의와 남북정상회담 찬성 △한미 연합방위 체제의 공동 방위체제 전환 인정과 한미동맹 공고화 △동서독 통일방식 반대(1체제1국가 2 지역정부의 중국-홍콩 방식 선호) 등의 주제에 대한 초안을 작성한 것으로 알려졌다.”(문화일보 3월 23일자 인용)
이중 “한나라당이 열린우리당이나 좌파 세력보다 김정일을 더 존중하고 햇볕정책을 지지한다”고 오해를 살만한 내용이 무엇일까? 굳이 연관을 짓자면 북한의 정치적 실체 인정, 남북정상회담 찬성, 동서독 통일 방식 반대 등이 있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내용을 친북좌파 정책이라고 몰아붙이는 것은 한마디로 넌센스다. 하나씩 살펴 보자.
김의원은 북한을 유엔에서 축출하자고 주장하고 싶은가?
“헌법 영토 조항 변경없는 북한 실체 인정” 문제는 찬반 입장에 대해 싸울 필요도 없이 엄연한 현실이다. 북한은 이미 유엔 가입국이며 한국은 이에 반대하지 않았다. 한나라당의 전신인 민자당, 민정당도 이에 반대하지 않았다. 영토 조항을 변경하는 것은 반대할 수는 있지만 이미 국제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북한의 실체를 어떻게 부정하겠다는 말인가?
김용갑 의원은 유엔에서 북한을 축출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은 것일까? 아니면 중국이 대만과 수교하는 나라는 인정하지 않겠다는 입장처럼 이제부터 한국은 북한과 수교를 맺는 모든 국가와 단교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은가? 그럼 만약 미국이 북한과 수교할 때 쯤이면 한국은 미국과 단교하겠다고 선언해야 하는가?
남북 정상회담 문제도 그렇다. 정상회담은 좌파만이 추진한 정책이 아니다. 김용갑 의원이 청와대 민정 비서관일 때 대통령으로 모신 전두환 전 대통령도 정상회담을 추진했었다. 또 한나라당의 전신인 민자당 시절 김영삼 대통령도 정상회담 직전까지 갔었다. 즉 정상회담 문제는 좌파만의 독점물이 아닌 것이다.
여건이 조성되면 정상회담은 좌, 우 가릴 것 없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다. 심지어 부시 미국 대통령도 2006년 11월 28일 베트남 하노이 한미 정상회담에서 “북한의 핵폐기 후 한반도 평화체제 이행 방안의 하나로 ‘나와 노무현 대통령,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종전협정에 사인을 할 수 있다’는 취지로 말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는 부시가 김정일과 정상 회담을 하겠다는 의사 표시인 것이다. 이쯤 되면 김용갑 의원 시각에서는 부시도 친북좌파가 되어야 할 것이다.
‘북진통일’의 미몽에서 깨어나야
독일식 통일 반대 입장도 마찬가지다. 독일식 흡수통일을 조기에 한반도에서 추진하는 것은 남,북 모두에게 재앙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가령 북한이 남한에 흡수통일되어 남한 국민에게 적용되는 최저 임금제가 북한 주민들에게도 적용된다고 하자. 현재 남한 1시간당 최저 임금이 2007년 기준 3,480원이다. 그런데 현재 북한의 평균 임금은 미국 달러로 2$, 즉 한화로 2,000원이 안된다. 1시간당 2,000원이 아니라. 한달 월급이 2,000원이다.
시간급으로 환산하면 1시간당 10원 정도 된다. 이런 북한 주민들에게 시간 당 최저 임금 3,480원이 법적으로 강제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지겠는가? 3만4천% 인플레를 유발할 수 있는 것이다.
한국 경제는 아노미 상태가 될 것이다. 때문에 상식적으로 본다면 독일식 흡수통일은 북한 주민의 최저임금 수준이 한국의 최저임금 기준치에 접근하는 정도는 되어야 가능하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북한경제가 그 정도로 발전하려면 북한이 초고속 성장을 하더라도 수십년은 걸린다.
때문에 바람직한 통일방안을 생각한다면 완전한 체제통일 전에 과도적 단계로 중국식의 1국가 2지역정부 통일방안을 충분히 고려해 볼 수 있는 것이다. 즉 남한 주도의 연방제인 것이다. 북한 주도가 아니라는 말이다.
김정일 정권이 민주 정권으로 교체되어 친남한 정책을 추진할 경우 북한이 경제건설에 집중할 수 있도록 북한의 외교, 안보는 한국이 맡아줄 수 있을 것이다. 즉 외교, 국방을 담당하는 통일 연방정부는 한국이 주도하고 북한의 치안, 경제 건설 등 내치를 담당할 북한의 지역정부는 인정하는 것이다. 화폐와 경제제도는 홍콩이 중국과 달리 독자적으로 유지하는 것처럼 말이다.
어쨌든 이런 건설적 견해는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민주 정당이라면 충분히 당 내에서 논의해 볼 수 있는 것들이다. 민주 정당에서 자기와 다른 견해는 무조건 배격하고 빨간 딱지를 붙이는 김 의원 같은 분 때문에 국민들이 한나라당을 수구 정당이라고 의심하는 것이 아닌가?
시대는 이미 한참 바뀌었는데 이승만 당시 북진통일식의 관념을 여전히 고수하면서 자기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은 모두 친북이요, 좌파요 하고 몰아 부친다면 한나라당을 넘어 조만간 대한민국 국민 대다수가 김용갑 의원 눈에는 친북좌파로 보일지 모른다. 또 미국, 일본 등 우리의 우방들까지 친북좌파로 몰아부치게 되는 우를 범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