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량미 징수에 불만 품은 농민들, 보위부서 ‘비판서’ 쓴 사연은?

평안남도 지역의 한 농촌마을. /사진=데일리NK 내부 정보원 제공

북한 군부대가 농촌에서 전례 없이 엄격하게 군량미 집중수매사업을 벌여 농민들이 불만을 표출하고 있는 가운데, 이 과정에서 최근 농민들이 보위부에 불려가 비판서를 쓰는 일까지 벌어진 것으로 전해졌다.

평안남도 소식통은 1일 데일리NK에 “평안남도 평원군 대정리에서 몇몇 농민들이 당 위원회와 보위부에 끌려가 비판서를 쓰고 책벌을 받았다”며 “농민들이 군부대 군량미 조달을 담당한 농장 작업반 통계원의 행실을 지적하고 나선 것이 원인이 됐다”고 전했다.

소식통에 따르면 30대 중반의 여성 농장 통계원은 군량미를 확보하려 현지에 나온 호위국 여단 양곡 참모를 자신의 집에 숙소 잡게 해 이득을 취하는가 하면, 자신의 소속이 농장인지 호위국인지 분간이 안 될 정도로 군량미 징수에 열의를 보였다.

그러나 이는 그렇지 않아도 올해 작황이 나빠 겨울나기에 필요한 식량을 충분히 거둘 수 있을지 걱정하는 농민들의 심기를 거슬리게 하는 행동이었다.

군부대가 군량미 징수 차원에서 농장의 수확물을 확보해갈수록 떨어지는 몫이 줄어들 수밖에 없는 농민들은 자신들과 같은 농장 소속임에도 군부대의 형편을 더 생각하는 통계원이 아니꼬웠던 것이다.

이에 농민들은 어떤 기회에 이 통계원에 ‘치안대처럼 놀지(굴지) 말라’고 소리를 지르며 욕설을 내뱉었는데, 이것이 문제가 되면서 결국 농민들이 당 위원회와 보위부에까지 불려가게 됐다는 게 소식통의 설명이다.

‘치안대’는 6·25전쟁 당시 한국군과 연합군을 도와 인민군에 저항한 민간 조직으로, 한국군과 연합군이 북한 지역을 일시적으로 점령했을 때에는 각지에서 행정관리와 질서 및 치안 유지 역할을 맡기도 했다.

북한 당국은 전후에 이 조직에 가담했던 이들과 그 가족들을 색출해 처형하거나 정치범수용소에 보내고 고향에서도 추방하는 등의 조처를 했으며, 이들의 후손은 여전히 북한에서 정치적·사회적인 차별을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렇듯 북한에서 ‘치안대’는 적대계층의 대명사로 통하기 때문에 이 같은 말을 들은 주민 누구나 이를 심각한 정치적 모욕으로 받아들인다고 한다.

소식통은 “결국 통계원은 이 사안에 대해 당 위원회에 신소했고, 이후에 이(치안대) 발언을 한 농민들이 죄다 불려갔다”면서 “그중 몇 명은 여전히 보위부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앞서 본보는 농촌 현지에서 가을철 군량미 징수사업을 벌이고 있는 군부대가 예년보다 더 많은 인원을 동원해 탈곡장과 창고 등을 감시하면서 식량을 확보해가려고 부산을 떨어 농민들이 불만이 상당하다는 소식통의 전언을 보도한 바 있다.

특히 농장 관리들과 군부대 양식 참모 사이에 조성된 신경전이 다툼으로까지 번져 군인들이 실탄을 발포하는 일까지 벌어지면서, 농민들 사이에 ‘열심히 농사를 지어 군인들 배고픔을 모르게 해주었는데 그 총을 인민에게 돌린다’며 군을 비판하는 분위기가 조성된 것으로 전해졌다. (▶관련기사 보기:군량미 확보 ‘총력’…北농촌에 농민보다 군인이 더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