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정세 관심갖는 北 고위층 “中·러 합쳐도 美에 안 돼”

최고인민회의 14기 2차
지난 8월 29일 평양 만수대의사당에서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2차 회의가 진행됐다. 사진은 기사와 무관 /사진=노동신문 캡처

북한 고위층이 노동신문에 실린 해외 소식을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국제정세를 정확하게 보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는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이들은 미국에 대해 ‘중국과 러시아가 힘을 합쳐도 이기지 못할 만큼 강력한 국가’로 인식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평양 소식통은 26일 데일리NK에 “노동신문이 조선(북한)이 좋아하는 것만 신문에 내놓는데 평양 사람들(간부층, 무역일꾼)은 그것을 믿지 않고 자체적으로 연구를 한다”며 “간부 중 친한 사람들끼리 모여 노동신문에 실린 외국 소식에 관해 토론하는 사람도 있다”고 전했다.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통상 6면에 한국 정치나 세계 소식과 관련한 기사들을 게재하고 있는데, 북한 고위층들은 여기에 실린 기사의 내용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비판적으로 보면서 객관적으로 정세를 분석하려 한다는 것이다.

소식통은 “간부들은 노동신문 기사가 의도하는 바와 숨겨진 의미가 무엇인지 찾아내기 위해 노력한다”며 “예를 들어 이란과 미국이 관계가 좋지 않다는 기사가 나오면 기본적으로 이란을 편드는 기사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어 그는 “간부들은 이란이 미국에 대해 강경한 메시지를 내거나 그런 태도를 보였다는 내용의 기사가 이란을 돋보이게 하고 미국을 부정적으로 보이게 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여긴다”면서 “신문이 제 아무리 이란의 강력한 모습을 소개하더라도 상대가 세계 최강국인 미국인만큼 간부들은 둘 사이에 별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북한 간부들은 국제적으로 달러가 통용되는 것을 보면서 미국이 전 세계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판단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소식통은 “달러가 세계 경제를 좌우한다는 건 높은 사람들은 잘 안다”며 “당에서는 달러가 모순이라고 외치지만, (간부들은) 달러가 유로화보다 세다는 것까지 잘 알고 있다”고 전했다. 북한 당국은 달러를 의도적으로 폄훼하고 원화 사용을 강조하고 있지만, 간부들은 여전히 달러를 높게 평가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와 관련 노동신문은 지난달 무역 분야에서 달러가 배척되고 있으며 자체 화폐를 사용하는 것이 세계적 추세라며 북한 화폐 사용을 권장하는 기사를 보도한 바 있다.(▶관련기사 : 북한돈 신뢰도 지속 떨어지는데…北매체 “달러 배척 세계적 추세”)

아울러 소식통은 “간부들이나 배운 사람들은 그 누구도 미국을 때리지 못한다는 것을 다 알고 있다”며 “특히 그들은 중국과 러시아가 힘을 합쳐도 미국을 이기지 못한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다만 국제정세에 대한 일반 주민들의 인식은 간부층의 인식과는 많은 차이를 보인다는 것이 소식통의 설명이다.

소식통은 “일반 백성들은 국제정세보다 당장 먹을 것을 걱정하고 고민하고 있다”면서 “평양의 일반 주민들도 정세를 모르니 당이 시키는 대로 따라가면서 미국을 욕하고, 만만하게 보고, 미국에 미사일을 날리자는 말을 자주 한다”고 말했다. 국제정세에 무관심한 일반 주민들은 당국의 선전을 무분별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한편, 북한 간부들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정상외교에 대해 대체적으로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소식통은 “트럼프와 원수님(김 위원장)이 싱가포르에서 서로 자기주장을 분명히 했다는 이야기가 간부들 사이에 돌았다”며 “위험을 무릅쓰고 멀리까지 간 젊은 원수님이 사람들을 당당하게 만나는 모습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6월 첫 북미정상회담을 위해 싱가포르를 방문해 리셴룽 총리 등과 회담하고 저녁에는 초대형 식물원 가든바이더베이와 대표적 상징물인 마리나베이샌즈 호텔 전망대 등 주요 관광지를 둘러보는 깜짝 행보를 보였다. 당시 북한 매체들은 김 위원장의 일거수일투족을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보도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