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법개폐, 포퓰리즘 안된다.

▲ 22일 저녁 광화문에서 열렸던 국가보안법 폐지촉구 집회에 참가한 농성단 (사진:박형민 기자)

국회 취재를 위해 여의도역에서 국회로 향하다 보면 수 십개의 시위 천막이 집결한 거대한 ‘집천촌’을 만나게 된다. 국회를 기준으로 왼편에는 국가보안법 폐지 반대측, 오른편에는 폐지를 주장하는 측이 천막농성을 진행하고 있다.

일견 보기에 폐지측과 반대측이 도로를 기준으로 양편에 균형을 잡고 있는 듯 보이지만 그 규모와 활동성 면에서는 이미 국가보안법 폐지측이 확실한 우위를 점하고 있다. 국가보안법폐지 농성단은 수 십개가 넘는 대형 천막을 지어놓고 시민사회단체 이름이 붙은 조직들이 죄다 몰려와 진을 치고 있는 상태이다. 여기에 <국가보안법 끝장 단식단> 1천여명은 벌써 단식 18일째를 맞이하고 있고, 광화문 촛불시위, 국회 앞 거리시위에 이어 오늘은 국회 기습진입까지 시도했다.

이에 앞서 <국가보안법폐지 국민연대>는 국회의원들과 함께 국회 본청 실내계단에서 공동기자회견을 열고 “국보법 연내 폐지를 관철해 해방과 분단 60주년이 되는 2005년을 국보법 없는 첫해로 만들겠다”며 결의를 다지기도 했다. 이와 반면, 국가보안법 폐지 반대 농성단은 눈에 띄는 활동도, 농성단의 절박함도, 국회의원들과 긴밀하게 공동보조를 맞추는 모습도 보이지 않고 있다. 여의도 국회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대결은 우리 사회 진보와 보수가 보이는 역동성과 힘의 차이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국회라고 해서 거리와 별반 다름이 없다. 여야 지도부 합의로 열린우리당이 한번 참아주긴했지만 이번 합의가 국가보안법 여야 합의처리까지 이끌어낼지는 미지수다. 잠시 ‘태풍의 눈’으로 잠겨 있을 뿐이다. ‘여야 지도부 4인합의’는 국회 파행으로 인한 동반추락을 막고 정부예산과 파병동의안이라는 현안문제를 처리하기 위해 취해진 긴급조치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여권 강경파들은 이러한 지도부의 입장조차 받아 들일 수 없다며 국가보안법 폐지 연내처리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렇듯 우리사회 국가보안법 폐지 논란은 사실 개혁으로 치장한 좌파진영이 주도하고 있다. 국민여론을 등에 업고 보수진영이 일부 개정안을 가지고 이런 흐름에 반기를 들어보지만 이들의 ‘총진군’ 앞에 버티기 전술 외에는 별 다른 수단이 없어 보인다. 열린우리당을 필두로 좌파진영이 국가보안법 연내폐지를 향해 맹렬하게 돌진하는 데는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국가보안법 폐지가 적절하다’는 노대통령의 발언이 나오자마자 여야 합의안 마련이 필요하다는 정치권의 기류가 갑자기 극한대치 양상으로 바뀌었다. 노대통령이 자신의 친위대에게 ‘토론과 절충’보다는 ‘결사전’으로 임하라는 어명을 내린 것이다.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하는 속내야 어찌됐든 폐지론의 주된 요지는 “체제 대결이 끝난상태에서 국가보안법을 고집할 필요가 없고 화해와 협력으로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현실을 지독히 착각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체제대결이 끝났다고 안보위기가 개선된 것은 결코 아니다. 또한 우리 한국사회는 아쉽게도 북한을 주도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이 없다. 우리가 국가보안법을 폐지하고 경제협력에 적극 나선다고 해서 북한이 우리 뜻대로 변해주기를 기대하는 것은 매우 순진한 발상에 불과하다. 이는 김정일의 생존방식과 북한 수령독재체제 시스템의 문제이지 우리가 개입해서 변화시킬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럴 힘이 우리에게 있었다면 북핵문제 하나 우리 뜻대로 가져가지 못하겠는가.

국가보안법은 현재 불고지죄, 고무찬양죄 등 체제안보에 직결되지 않은 처벌규정으로 ‘시대착오적 악법’이라는 오명을 듣고 있다. 이러한 부분은 고칠 필요가 있다. 그렇다고 해서 열린우리당이 내놓은 개정안으로는 불충분하다. 열린우리당이 내놓은 형법보완안은 북한이 남한 내부의 내란이나 폭동을 목표하고 있는 단체인지 해석여부가 불분명해, 북과 연계된 간첩이나 친북활동에 대한 처벌 여부에 혼선을 가져온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안보형사법일수록 행위에 대한 처벌 여부가 분명하고 재 해석의 여지가 없어야 한다.

현재 남북은 서로 다른 체제와 이념을 가지고 군사적 대치상태에 있다. 한편으로는 교류와 협력의 대상이지만 한편으로는 가장 치명적인 안보위협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러한 양면적인 특수관계를 규정하기 위해서는 교류와 협력에 관한 구체적인 법률, 안보위협을 방지할 수 있는 특별법이 필요할 수 밖에 없다.

대한민국을 지키는 법률만큼은 포퓰리즘으로 좌지우지 되서는 안된다. 국가보안법 개폐 논란의 본질은 어디까지나 처벌규정을 어디까지 두느냐의 문제다. 따라서 기본권을 침해하는 요소는 삭제하되 국가안보에 위해되는 요소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법률적 처벌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국가안보는 정쟁의 대상이 아니다. 국가보안법 폐지를 마치 보수세력을 이 땅에서 갈아치우기 위한 판갈이용으로 삼아서는 안된다. 포퓰리즘으로 국가안보가 좌지우지 될 경우 차후 우리는 국가안보를 위해서 호미가 아니라 가래가 필요한 상황이 올 수 있다.

신주현 기자 shin@dailyn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