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김원홍 국가보위상이 해임됐다. 통일부는 지난달 중순 김원홍이 당 조직지도부의 조사를 받고 별 넷인 대장에서 별 하나인 소장으로 강등된 뒤 해임됐다고 밝혔다. 보위성 부상 등 다수간부들은 처형까지 당했다고 한다.
김원홍과 보위성이 철퇴를 맞고 있는 이유로 통일부는 “표면적으로는 보위성이 조사과정에서 자행한 고문 등 인권유린과 함께 월권과 부정부패 등이 원인”인 것 같다고 밝혔다. 통일부 당국자는 이와 관련해 “김정은이 김원홍을 토사구팽한 것은 공포통치와 주민 생활고가 가중돼 주민 불만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김원홍에게 책임을 전가함으로써 주민을 달래고 애민 이미지를 강화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보위성, 무소불위의 권력 휘두른 듯
이상의 내용을 쉽게 설명하면 이렇다. 국가보위성은 간첩이나 체제에 위해가 되는 사람들을 잡아내 김정은 체제를 보위하는 임무를 맡고 있는데, 김정은 집권 이후 각종 숙청을 주도하면서 막강한 권력을 갖게 됐다. 김정은의 고모부 장성택을 숙청시키는 실무작업까지 담당했으니 그 위세는 하늘을 찔렀을 것이다. 북한 고위간부들까지 잡아들이는 판이니 일반 북한 주민들은 눈에 보이지도 않는 존재였을 것이고, 마음에 안 들면 조사를 핑계로 데려다가 폭행과 고문 등 갖가지 인권유린 행위를 저지른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이 그동안 공포통치를 펼쳐왔다고 할 때 실질적으로 공포통치를 담당한 실무기관이 보위성이었던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돈을 찔러주는 사람들은 조사에서 빼주면서 뒷돈을 두둑이 챙겼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부패한 후진국일수록 권력에 돈이 따라가는 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 김정은이 김원홍과 보위성을 처벌하겠다고 한다. 보위성 입장에서는 억울한 일일 것이다. 그동안 공포통치의 실무 작업을 담당한 것은 김정은의 지시에 의한 것인데, 이제 와서 언제 그랬냐는 듯이 김정은이 발을 빼는 형국이기 때문이다. 물론 보위성이 그동안 각종 위세 떨치면서 이리저리 해먹은 것은 많지만, 김정은이 몰라서 방치하고 있었느냐는 볼멘소리가 나올 법도 하다.
권력기관 비대해지면 ‘비수’될 수도
이번 보위성 손보기의 핵심은 보위성 힘빼기에 있다. 그동안 보위성의 권력이 너무 커진 만큼 보위성의 힘을 빼는 것이 필요하다고 김정은이 판단했을 것이다. 자신이 부리는 권력기관이지만 너무 힘이 커지면 언제 자신의 목을 찌르는 비수가 될지 모른다. 독재자들은 일반 국민들에 의해 무너지기보다는 주변의 측근들에 의해 거세되는 경우가 많다.
여기서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공사가 얘기했던 “태양의 가까이에 가면 타죽고 멀리 가면 얼어죽는다”는 말이 다시 한 번 머리에 떠오르게 된다. 어차피 북한애서는 어느 누구도 장기판의 ‘졸(卒)’일 수밖에 없다. 최고지도자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납작 엎드리는 것이 보신의 상책이다.
토사구팽 시스템에는 한계
통일부는 이번 사건에 대해 “공포통치를 뒷받침해왔던 김원홍을 해임함으로써 간부층의 동요가 심화되고 주민들에 대한 통제력도 약화되는 등 체제의 불안정성이 가중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필자가 보기에 단기적으로는 김정은 체제가 더욱 안정화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잘나간다던 김원홍도 죽기 일보 직전인데 어느 누가 모난 돌이 되려고 하겠는가. 간부들은 더욱 공포에 짓눌려 납작 엎드리려 할 것이다.
궁극적으로 김정은에게 해가 될 지점은 이런 토사구팽 시스템이 갖는 본질적인 한계이다. 누군가는 김정은의 신임을 받아 권력의 핵심으로 부상할 수밖에 없는데, 이렇게 핵심으로 부상하면 그 사람은 언젠가는 숙청의 대상이 된다. 그런 사람들이 대개는 김정은에 의해 숙청의 피해자가 되겠지만,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는 상황에서 돌발변수가 생길 가능성은 상존하게 된다. 측근들의 권력투쟁을 유도해가며 권력을 유지해가는 방법은 본질적으로 불안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