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급 접촉제안의 노림수와 南北의 ‘수 싸움’

정부가 19일 남북 고위급 접촉을 갖자고 제안했지만 북한은 결국 아무런 답변을 주지 않았다. 북한은 14일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성명과 17일 김대중 전(前) 대통령 서거 5주기 조화 전달 등을 통해 자신들도 남북관계를 개선할 의지가 있음을 밝히긴 했지만 그 뿐이었다. 오히려 북한은 17일 방북한 박지원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등에게 한미군사훈련에 대한 불만을 표시했다. 북한이 18일부터 시작된 한미연합 을지훈련에 강력히 반발하고 있는 만큼, 훈련이 끝날 때까지 회담의 동력을 찾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고위급 접촉 제안에 숨어있는 노림수는?


정부가 최근 계속돼 온 ‘북한의 남북관계 개선 공세’에 대해 고위급 접촉을 제안한 것은 적절한 것이었다. 북한의 평화 공세에 수세적으로 대응하는 모습에서 벗어나 적극적으로 북측을 만나 할 말은 하겠다는 태도를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위급 접촉 날짜를 을지훈련 중인 19일로 제안한 것은 정부가 회담 개최 말고도 다른 노림수를 가진 것 아니냐는 관측을 불러일으키게 했다.


북한은 예전부터 한미연합훈련은 ‘북침전쟁 연습’이라며 강하게 반발해왔다. 북한의 주장이 옳은 것은 아니지만, 북한이 강력히 반발해왔던 훈련이 진행되는 와중에 북한이 회담장에 나오기 어려울 것이라는 것은 충분히 추측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도 정부는 을지훈련 기간에 회담을 제안했다. “추석 계기 이산가족 상봉과 교황 방한 일정 등을 감안했고, 북한이 다른 날짜를 제시하면 협의가 가능하다”는 것이 통일부 당국자의 설명이었다. 그러나 북한의 반발이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이 같은 수를 둔 것은 ‘전략적 오류’가 아닌 나름의 ‘전술적 판단’에 기반한 것이라고 봐야 할 듯하다.


북한은 최근 들어 남북관계 개선 의지를 강조하며 평화공세를 펼쳐왔다. 이런 북한이 을지훈련을 이유로 회담 제의를 거부하면, 그동안의 평화공세가 허구라는 것이 드러나게 된다. 반대로 북한이 회담을 받아들이게 되면, 북한은 그동안 비난해왔던 을지훈련에 대한 반발을 강하게 하기 어렵다. 다시 말해, 정부로서는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손해될 게 없고, 북한으로서는 어떤 선택을 하든지 부담을 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식의 수 싸움은 북한에게 또 다른 수 싸움을 하도록 만들었다. 한국의 회담 제의를 거부하기는 어려우나 받아들이기도 힘든 상황에서, 구체적 답변은 미룬 채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 전환만을 우회적으로 압박하게 만든 것이다. 박지원 의원 일행을 만난 북한의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이 6·15 선언을 강조하면서 “왜 한미군사훈련을 하면서 고위급 접촉을 제안했느냐”고 한 말이 북한의 불편한 심기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마치, 남북이 누구의 수가 앞서느냐를 놓고 머리싸움을 벌이고 있다고나 할까.


북한이 회담 자체를 거부하지는 않고 있는 상황으로 볼 때, 을지훈련이 끝난 9월 초쯤에는 남북 간 접촉 가능성이 있어보인다. 인천 아시안게임 참가를 결정하고 응원단까지 보내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이 한국과 얘기할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남북이 서로 수 싸움을 벌이는 형국이 9월 초에도 계속된다면 남북접촉의 결과가 순탄치 않을 수도 있다.


지금보다 남북관계 진전시키려면


류길재 통일부 장관은 고위급 접촉 제안과 관련해 “남북 간에 당면한 여러 현안을 포괄적으로 협의해나가자는 취지”라고 밝혔다. 지금보다는 남북관계를 진전시킬 필요가 있다는 취지로 들린다. 정말 그렇다면, 북한이 선뜻 수용하기 어려운 날짜를 택해 회담을 제안하는 ‘수 싸움’에 매달릴 필요는 없다.


핵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남북관계의 획기적 진전은 있을 수 없지만, 남북관계의 일정 수준 관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면 그러한 지점까지 가는 데 있어서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찾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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