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2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 1주년을 기점으로 한국과 미국이 비핵화 대화의 불씨 살리기에 나서고 있다.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결렬 이후 경색 국면이 이어지는 가운데, 한국과 미국이 오슬로 선언, 친서 전달 사실 공개 등을 통해 북한에 ‘시그널’을 보내면서 지지부진하던 비핵화 협상에 급반전이 이뤄질지 주목되고 있다.
지난 11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으로부터 친서를 받았다는 사실이 공개된 후 북미대화 재개에 청신호가 켜진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른바 ‘친서 외교’의 재가동으로 꽉 막힌 정국에 돌파구가 마련될 수 있다는 기대감도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무엇보다 이번 친서를 계기로 미국과 북한이 다시금 서로에 대한 신뢰를 확인하고 대화 의지를 표명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 가운데 내년 재선을 노리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도 자신의 대북 외교성과를 부각하기 위해 대화의 동력을 이어가려할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실제 미국에서는 3차 북미정상회담 가능성을 열어두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에 이어 “북한과의 실무협상을 이어가고 싶고 준비돼있다”는 국무부 입장이 나오는 등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들이려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고유환 동국대 교수는 북미대화 재개 가능성에 대해 “열려있다”며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 사이에 친서도 있고, 또 서로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그런 표현들도 있는데다 시기적으로도 내년에 미국 대선이라는 여러 국내 정치적 일정을 고려하면 하반기부터 다시 한 번 모멘텀을 찾아 대화를 시도해볼 수 있는 시기”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북한이든 미국이든 톱다운 방식으로 지도자가 나섰기 때문에 성과를 내지 못하면 리더십 위기가 올 수 있다”면서 “계산법이 서로 달라 냉각기가 있었지만 다시 시작해봐야 할 시점”이라고 부연했다.
이런 상황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12일(현지시간) 노르웨이 오슬로 대학에서 열린 포럼 기조연설에서 평화 메시지를 발신했다. 특히 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6월 말에 방한하게 돼 있는데 가능하다면 그 이전에 김정은 위원장을 만나는 게 바람직하다. 그러나 그 역시 김정은 위원장의 선택에 달렸다”며 북측의 결단을 에둘러 촉구하기도 했다.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이후 소강상태를 지속하고 있는 남북관계에서도 당장 변화가 나타날만한 커다란 징후는 없지만, 최근 이희호 여사 별세에 대한 김 위원장의 조문과 조화를 전달하기 위해 나온 김여정 당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이 남북협력을 계속해 나가길 바란다는 취지의 말을 한 것으로 전해지면서 북측의 태세전환 가능성도 엿보인다.
이와 관련해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는 뉴욕에서 열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15개 이사국들과의 비공개 회동에서 김 위원장의 친서와 조문·조화 전달을 언급하며 ‘긍정적 시그널로 본다’는 취지의 언급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비핵화 협상 교착국면에서 모처럼 대화 재개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지만, 한편에서는 북한이 미국의 태도 변화를 강하게 요구하고 있는 상황에서 다시 협상에 나설지 섣불리 예단하기 어렵다는 견해도 나온다. 실제 미국과의 대화 시한을 연말까지로 못 박은 북한은 여전히 ‘새 계산법을 들고 나오라’며 미국을 압박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은 한 치의 물러섬 없이 ‘빅딜’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존 볼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앞서 한 행사에 참석해 3차 북미정상회담에 대한 전망과 관련, “전적으로 가능하며 정말로 김정은이 열쇠를 쥐고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대화의 문은 언제든 열려있다는 점을 드러내면서도 김 위원장의 결단을 압박한 셈이다.
비핵화 정의와 방식에 대한 양측의 이견을 조율하는 것이 관건이지만 간극은 여전히 좁혀지지 않고 있어, 당장 대화가 재개될 가능성은 낮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소 안보통일센터장은 “북한도 대화를 이어가겠다는 의지가 있어 보이는 점에서는 일단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면서도 “아직 전향적인 메시지를 내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입장 변화는 없어 보이고, 친서 등이 오갔으나 결국 대화 재개에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