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제1차 북미정상회담 1주년을 맞은 12일(현지시간) 한반도 평화 체제 구축 방향을 담은 ‘오슬로 구상’을 발표했다. 문 대통령이 밝힌 한반도 평화 구상의 핵심은 ‘서로에 대한 이해와 신뢰를 통한 완전한 평화’다. “남과 북은 함께 살아야 할 ‘생명공동체’”라고 밝힌 문 대통령의 평화 구상이 교착 상태에 놓인 비핵화 대화에 돌파구가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노르웨이를 국빈방문 중인 문 대통령은 이날 오슬로 대학교 법대 대강당에서 진행된 오슬로 포럼 기조연설에서 “지금 필요한 것은 새로운 비전이나 선언이 아니라 서로에 대한 이해와 신뢰”라며 “이를 바탕으로 대화의 의지를 더욱 확고히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문 대통령은 “2차 북미정상회담 이후 대화가 교착상태를 보이고 있지만 그것은 서로를 깊이 이해하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라며 “지난 70년간 적대해왔던 마음을 녹여내는 과정”이라고 덧붙였다. 비핵화를 위한 대화가 교착상태에 놓인 것을 인정하면서도 단지 시간이 걸릴 뿐 대화의 끈이 이어지고 있음을 강조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또 ‘평화’를 53번이나 언급하며 ‘소극적 평화’ 보다 ‘적극적 평화’가 필요함을 역설했다. 문 대통령은 “사람이 오가지 못하는 접경지역에서도 산불이 일어나고 병충해와 가축전염병이 발생한다”며 “보이지 않는 바다 위의 경계는 어민들의 조업권을 위협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국민에게 이익이 되는 ‘국민을 위한 평화’를 이루기 위해선 “접경지역의 피해부터 해결돼야 한다”고 말했다.
접경지역에서의 교류와 협력이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실질적 이익이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또 한반도 평화를 거시적 시각에서 정치·안보적 의미로만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일상 생활의 단위로까지 확대하겠다는 의지로도 분석된다.
일각에서는 문 대통령의 이 같은 평화 메시지가 비핵화 대화가 교착 상태에 빠진 현상황에서 북미 대화를 견인할 수 있는 나름의 촉매제가 될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데일리NK에 “톱다운 방식을 통한 문제 해결 방식을 남, 북, 미 세 정상이 동의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언제든 만남이 가능하다”며 “실질적 평화를 강조한 문 대통령의 오슬로 구상이 북미 대화 재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반면 오슬로 구상이 구체적인 방안이나 방향을 담지 못한 원론적 언급에 불과하다는 비판적 분석도 제기된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현재 북한과 구체적인 논의가 오가는 것이 아니고 우리 정부의 입장만 설명하다보니 평이한 내용의 연설이 됐다”며 “구체적인 내용이 없기 때문에 구상이라고 하기엔 미흡하다”고 평가했다. 다만 신 센터장은 “노르웨이 자체가 노벨평화상을 시상하는 평화를 상징하는 장소인데 이 곳에서 우리나라에 대한 평화 이미지를 발신했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고 했다.
다만 신 센터장은 “문 대통령의 연설이 북미 대화를 견인할 수 있느냐는 다른 문제”라며 “구체적인 관련 메시지가 없었기 때문에 북미 대화를 이끌 수 있는 장치도 없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한편 문 대통령은 오슬포 포럼 기조연설 이후 기자들과의 일문일답에서 “김정은 위원장과 언제든 만날 준비가 돼 있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 이전에 가능하다면 만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4월 15일 방미 당시 4차 남북정상회담을 공개적으로 제안한 데 이어 재차 남북정상회담 의지를 밝힌 것이다.
이어 문 대통령은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은 보다 조기에 만나는 것이 바람직하다”면서 “대화하지 않는 기간이 길어지게 되면 대화의 열정이 식을 수도 있으니 조속한 만남을 촉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이 보름여 일 남은 상황에서 한미 정상회담 전에 남북 정상회담이 진행되기는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신 센터장은 “사실상 가능성이 없는 얘기”라고 단언했다.
실제로 김연철 통일부 장관은 지난 12일 더불어민주당 소속 외교통일위원회 의원들의 비공개 당정협의에서 “정부로서는 (남북 정상회담을 위해) 계속 노력하고 있지만 가시적인 진행이 없다”며 “북측의 반응이 없어 이달 중 남북정상회담이 열리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 대통령이 주무 부처인 통일부 장관의 언급을 하자 북한과의 물밑 작업없이 대통령의 희망사항을 담은 얘기가 아니냐는 평가도 나온다.
신 센터장은 “비핵화를 위한 협의나 선언은 이미 돼 있는 상황”이라며 “이행이 안 되는 것이 문제인데 이런 상황에선 대화에 연연하지 말고, 실질적 비핵화를 위한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전략과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