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남재중 선생님, 편안히 잠드소서”

남 선생님!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바로 2주 전에도 건강한 모습으로 맥주 한 잔 하시면서 북한 민주화에 대한 강한 신념을 보이시던 선생님이 이렇게 갑자기 돌아가시다니요.

“이제 김정일 정권도 몇 년 안 남았어” 하시던 분이 이렇게 갑자기 돌아가시다니요.

99년 겨울이었죠. 남 선생님을 처음 뵙던 게. 그때 남 선생님을 만난 덕분에 저는 중국-북한 국경지대에서 많은 탈북자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남 선생님은 이미 역사에 대한 혜안을 가지시고 탈북자 문제의 중요성을 아주 잘 아시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이미 탈북자들을 지원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들을 찾아놓은 상태이셨구요.

남 선생님의 그런 노력 덕분에 저는 많은 탈북자들을 만나면서 북한의 현실을 바로 볼 수 있었습니다. 북한의 현실을 알게 될수록 북한 민주화에 대한 제 신념은 더욱 강해져 갔습니다.

북한인권법 통과 기뻐하시던 모습 눈에 선합니다

사실 남 선생님은 북한 민주화 운동의 선구자 중의 선구자이셨죠.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 때 의사로서의 편안한 삶도 포기하고 미국에서 한국으로 한국에서 중국으로 북한 민주화를 위한 일이라면 어떤 곳이라도 달려가셨습니다.

미국에서 북한 인권, 민주화 문제에 대해 경종을 울린 99년 2월 10일 <워싱턴 포스트> 탈북자 문제 톱 기사도 남 선생님의 작품이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 이후로 5년만에 미국 의회에서는 북한인권법을 통과시켰습니다.

이 법이 통과된 뒤 좋아하시던 남 선생님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북한인권법이 통과된 과정을 잘 아는 사람들은 그 뒤에 남 선생님의 노력이 얼마나 컸던가를 잘 알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북한 인권, 민주화 문제에 가장 소극적인 한국 사회의 현실을 바꾸기 위해 마음을 많이 쓰셨죠.

저와 만나는 날마다 “이제 한국이 문제야. 한국만 바꾸면 돼. 미국도 일본도 유럽도 모두 북한 인권 문제를 걱정하는데 한국은 너무 무관심해. 이제 한국을 바꾸기 위해 집중해야 돼” 하시면서 한국의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무관심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항상 고민하셨습니다.

우리 젊은이들에게는 한국의 부조리한 현실을 바꾸기 위해 더 힘을 내야한다고 누차 당부하셨구요.

선생님 뜻 이어받아 북한 민주화 끝까지 가렵니다

남 선생님의 실제 업적과 노고에 비해서 남 선생님의 이름은 세상에 많이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남 선생님은 자신의 이름을 앞에 내세우는 것보다는 뒤에서 실제로 일이 되게 하는 데 진력을 다하셨습니다.

남 선생님은 자신의 명예보다는 실제 탈북자들을 돕고 북한 인권, 민주화 운동이 실질적인 전진을 할 수 있도록 밑거름이 되어주셨습니다. 그 때문에 남 선생님은 더더욱 저희 젊은이들의 사표가 되는 것입니다.

존경하는 남 선생님!

저희들도 남 선생님이 개척하신 그 길을 이어가겠습니다. 북한 민주화와 북한 인민의 자유, 해방의 길을 끝까지 힘차게 달려가겠습니다. 그리하여 선생님이 하늘에서나마 환하게 웃으면서 한반도를 내려다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부디 편안히 잠드십시오.

2005년 6월 8일

김수영/ 在美 국제경제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