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조선말대사전, 中 동북공정 반박

“고구려..최대 령역은 조선반도의 중부 이북과 료하 상류 류역의 동쪽, 송화강 류역, 흑룡강 하류 류역의 남쪽을 포괄하여 동서로 6,000리, 남북으로 4,000리였다.”(2007년 증보판 ‘조선말대사전’)

북한이 15년 만에 증보한 ‘조선말대사전'(전 3권)을 통해 중국의 고조선.고구려.발해사 왜곡에 맞섰다.

사전은 먼저 ‘고구려’에 대한 설명에서 1992년판에 최대 영역을 “동서로 6,000리, 남북으로 수 천 리였다”고 설명했던 것을, 증보판에서는 “동서로 6,000리, 남북으로 4,000리였다”고 못박고 고구려사 관련 어휘를 대거 새로 실었다.

특히 ‘고구려-한 전쟁’, ‘고구려-위 전쟁’, ‘고구려-연 전쟁’, ‘고구려-수 전쟁’, ‘고구려-당 전쟁’ 등 고구려가 중국 대륙의 외세에 대항해 싸우면서 강력한 국력을 과시한 역사를 집중 소개했다.

북한은 지난 3월 일반 주민을 대상으로 발행한 대중역사서 ‘고구려이야기(사회과학출판사)’를 통해 “최근 어떤 학자들의 논조에…고구려는 중국의 ‘속국’, ‘중국 소수민족의 지방정권’이었다는 괴이한 결론을 도출하고 있다”고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해 강력 반박했었다.

증보판 ‘조선말대사전’은 ‘고구려-수 전쟁’을 “6세기 말~7세기 초 고구려의 군대와 인민들이 수나라의 침공을 쳐물리친 반침략 조국방위 전쟁”으로 정의하고 “고구려 군대와 인민들은 4차에 걸치는 대규모의 침공을 물리치고 커다란 승리를 이룩함으로써 국토를 지켜내고 나라의 위력을 대외적으로 널리 시위하였다”고 강조했다.

또 ‘고구려-당 전쟁’에 대해선 “당나라의 침략에 반대하여 싸운 반침략 방위전쟁. 4차례에 걸치는 전쟁에서 고구려의 애국적인 군대와 인민들은 나라를 지켜내기 위하여 용감히 싸웠다”고 설명하고 그러나 “국왕을 비롯한 통치배들의 무능력과 반역자의 투항행위로 668년 9월에 평양성은 함락됐다”고 덧붙였다.

사전은 특히 ‘고구려국’에 대해 1번 뜻으론 원래의 고구려를 설명하고, 2번 뜻으로 670년대 전반 지금의 황해남도 신원군 장수산성 일대인 한성에 들어선 ‘고구려국’이라고 설명한 뒤 “고구려 멸망 이후 인민들은 반침략 투쟁을 계속하여 당나라의 통치기구인 안동도호부를 료동지방으로 쫓아버리고 사야도(인천 부근 소야도)에 가 있던 고구려왕의 서자 안승을 데려다가 그를 왕으로 하는 고구려국의 재건을 선포하였다”고 부연하기도 했다.

이 밖에 사전에 새로 실린 고구려 관련 용어는 ‘고구려다리’, ‘고구려말’, ‘고구려무덤벽화’, ‘고구려벽화무덤’, ‘고구려석각천문도’ 등이며 발해에 대해서도 ‘발해-당 전쟁’을 비롯해 ‘발해자기’, ‘발해장’, ‘발해5경’ 등을 새로 소개했다.

사전은 또 고조선에 대해서도 ‘고조선-연 전쟁’과 ‘고조선-한 전쟁’ 등을 실어 외세의 침공에 대항한 역사를 부각시켰다.

2007년판 ‘조선말대사전’은 임진왜란 때 함경도 의병의 전승을 기념한 전공비이지만 일제시대에 약탈됐다가 남북 공동의 반환운동 끝에 일본으로부터 돌려받은 ‘북관대첩비(北關大捷碑)’에 대해 “일제가 1906년에 일본으로 빼여갔는데 2006년에 되찾았다”고 소개했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