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재처리’ 압박…美, 호응하지 않을 것

북한이 ‘살라미 전술’과 ‘벼랑끝 전술’을 총동원, 북핵 비핵화를 원점으로 되돌리며 ‘몸값 불리기’에 나섰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25일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폐연료봉들을 재처리하는 작업이 시작됐다”고 밝혔다. 장거리 로켓발사에 따른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의장성명’ 발표 후 국제사회의 ‘제재’ 움직임에 따른 반발이다.

그동안 북한의 국제사회의 로켓발사 대응조치에 따라 반발강도를 높여왔다. 지난 5일 로켓발사 직전 “로켓발사를 유엔에 상정만 해도 6자회담은 파탄날 것”이라고 경고한 이후 14일 ‘의장성명’에 반발해 ▲6자회담 거부 ▲핵시설 재가동 ▲폐연료봉 재처리의사를 밝히더니 곧바로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미측 감시요원을 추방했다.

이번 ‘폐연료봉 재처리’ 조치도 유엔 안보리 제재위원회가 의장성명 후속조치로 북한의 기업 3곳을 제재 대상 기업으로 지정한 직후 밝혔다. ‘폐연료봉 재처리’는 원자로에서 연소된 연료봉에서 핵무기 제조용 플루토늄을 추출하는 과정이다.

따라서 북한이 실제 플루토늄을 추가 추출하고 원자로를 재가동해 ‘2차 핵실험’까지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 외교가의 관측이다. 북한의 대외선전매체 조선신보도 24일 “핵보유국으로서 지위를 더욱더 확고한 것으로 다져 나갈 것”이라며 핵실험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 같은 북한의 전술은 충분히 예상됐던 수순으로 93년과 2006년의 ‘재판’이다. 지난 93년 북한의 핵확산방지구상(NPT) 탈퇴 이후 한반도 전쟁위기까지 치달았지만 결국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방북, 94년 ‘제네바 협정’을 이끌어냈다.

2006년에도 대포동 2호 발사 뒤 핵실험까지 강행하며 극단적인 위기상황으로 몰고 가 결국 조지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 전환을 얻어냈다. 조선신보가 25일 “한발의 인공위성 발사로 조선은 외교의 주도권을 쥐었다”고 자평한 것도 이 같은 경험치에서 비롯된 것으로 해석된다.

‘핵보유국’ 주장을 바탕으로 미국을 압박해 ‘경제재건’의 밑천이 될 ‘물질적 보상’을 노리고 있는 북한은 그들의 로켓 발사가 ‘핵물질-운반수단-탄두’로 상징되는 대량살상무기 능력 과시의 완결판이라고 자평하며 향후 대미 협상에서 주도권을 유지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셈이다.

◆美 ‘제재’하면서 北 ‘위협’ 지켜볼 것=일단 미국은 이와 같은 북한의 외교 전술에 ‘또 당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터프하고 직접적인 외교’를 하겠다고 공언했던 미국은 북한과 대화의 여지를 남기면서도 로켓발사와 같은 ‘잘못된 행동’에는 국제사회를 통한 ‘제재’ 의사를 분명히 하고 있다.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은 25일 북한과 비핵화 대화 재개를 기대하면서도 “유엔이 단호한 행동을 보여줘 매우 기쁘다”며 “미국은 6자회담 참가국들과 함께 북한이 자신들이 맡은 의무로 되돌아오도록 계속 압박할 것”이라고 밝혔다.

매건 맷슨 국무부 부대변인도 “미국은 모든 핵무기와 핵프로그램을 포기하고 조기에 핵무기확산금지조약(NPT)과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북한이 되돌아오도록 한 2005년 9·19 공동성명의 완전한 이행을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북핵 전문가들은 북한이 의도하는 대로 미국이 끌려가지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때문에 당분간 북한의 ‘위협’이 계속되고, 미국의 ‘제재’도 이어지는 평행선이 유지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전성훈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미국은 당분간 국제사회를 통한 ‘제재’에 집중할 것이고 북한도 ‘할 테면 하라는 식’으로 압박을 지속할 것”이라며 “미북대화의 여건이 조성될 때까지 북핵문제는 긴 터널을 지나게 돼 해결이 요원하다”고 내다봤다.

동(同) 연구원 박영호 선임연구위원도 “최근 북한의 행동에 상당한 불쾌감을 가지고 있는 미국은 북한이 공세를 강화하더라도 당분간 지켜볼 것”이라며 “대화는 열려있겠지만 양쪽이‘시간을 끌면 손해’라는 시각을 갖기 전까지는 긴장국면이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일각에서는 ‘비법월경’ ‘적대행위’ 혐의로 재판에 회부된 미국 여기자들의 대한 해법에 따라 북핵문제도 탄력을 받을 수 있다는 관측을 내놓고 있지만, 미국이 과거부터 ‘인도적’인 문제를 ‘안보’와 결부시키지 않는 전통이 있기 때문에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윤덕민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는 “북한은 지금까지 핵보유국으로 인정받고 덤으로 경제재건도 꿈꿨지만 갈수록 체제의 정체와 위기만 초래되고 있다”며 “(여기자들 문제로)극적인 반전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지만 그동안은 북핵협상 공방을 되풀이하게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박 선임연구위원도 “북한은 미국 여기자들에 대한 정식 재판절차 후 협상에 활용하려고 할 것”이라며 “미국도 인도적 문제인 여기자들 사안을 해결하기 위해 대화는 하겠지만 북핵 등 안보사안과 연계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南北, 당분간 경색 불가피 미북대화 선행돼야 개선될 듯=북한의 잇따른 북핵 위협에 따라 남북관계도 악영향이 예상된다. 21일 북한은 ‘개성접촉’을 통해 일방적으로 전달한 통지문에서 특혜조치를 재협상하려는 배경으로 안보리 의장성명을 꼽았다.

통지문은 “남한 정부가 장거리 로켓발사를 악의에 차서 걸고 들다 못해 국제적인 제재 놀음에 앞장섰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도 이날 유엔 안보리의 의장성명 채택에는 남측의 ‘불순한 책동’이 연관돼 있다고 강조했다.

북한이 일시적인 대화를 제의하면서 일각에선 남북관계의 전환점이 생기는 것 아니냐는 기대감도 제기됐지만 결국 최근 로켓발사에 따른 우리의 대응에 대한 북한의 불만이었음이 확인된 셈이다.

때문에 남북관계 역시 이명박 정부가 과거 햇볕정권 수준으로 대북정책을 전환하지 않을 경우 경색국면의 해빙이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국제사회를 통한 한반도 비핵화를 중요시하고 있는 우리 정부가 미북대화나 6자회담이 진행되지 않는 상황에서 무리하게 남북관계 전환을 시도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한 국책 연구기관의 연구위원은 “최근 북한의 태도는 ‘속이 타는 것은 자신들’이라는 것을 우회적으로 내비치고 있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북한이 위협강도를 높이는 것은 결국 자신들의 외교적 한계를 스스로 인정하는 셈이라는 설명이다.

박 연구위원은 “미북간 협상이 시작되고 6자회담이 다시금 전개돼야 남북간에도 대화를 할 수 있는 모멘텀이 생길 것”이라며 “북한의 위협은 ‘(북핵관련 상황이)자기 뜻대로 안된다’는 위기의식에서 비롯됐기 때문에 우리가 안달할 필요가 없다”고 당부했다.

◆中·러, 중재도 쉽지 않을 듯=당분간 중국 러시아의 중재역할도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

중국과 러시아가 안보리 차원의 대북제재에 대해 반대 입장을 보였지만, 결국 의장성명은 신속하게 찬성했다. 이에 북한은 의장성명에 대해 “미국을 추종하는 자들의 대북 선전포고”라며 중·러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특히 23~24일 평양을 방문한 세르게의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예전과 달리 김정일을 만나지 못했다. 라브로프 장관은 드미트리 메드베대프 대통령의 친서를 휴대하고 있었다.

박의춘 북한 외무상이 25일 베이징에 도착, 양제츠 중국 외교부장과의 양국 외교장관 회담도 예상됐지만 이 역시 성사되지 않았다.

중국과 러시아가 ‘의장성명’ 직후 ‘자신들의 의지는 아니다’고 북한 달래기에 나섰지만 이미 ‘감정이 상한’ 북한의 마음을 단시일 내 돌리지는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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