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연형묵 암살’ 유언비어 전국 확산”

최근 북한에는 총리를 지낸 연형묵 전 자강도 당 책임비서(2005년 10월 사망. 당시 국방위원회 부위원장)가 김정일에 의해 암살당해 죽었다는 유언비어가 번지고 있어 주목되고 있다.

북한 내부소식통은 27일 데일리NK와의 전화통화에서 “연형묵이 암살되었다는 유언비어가 급속히 번지면서 사람들이 ‘(연형묵처럼)바른 소리를 하는 사람들은 다 죽인다’며 김정일을 비난하고 있다”고 전했다. 또다른 소식통도 “요즘 그런 소문이 많이 돌고 있다”면서 “나라가 어지러우니 벼라별 유언비어가 다 돌고 있다”고 말했다.

이같은 유언비어는 최근 식량사정의 악화와 맞물려 일정 수준 체제불만 요소로 확산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 주목되고 있다.

소식통에 따르면 연형묵 전 비서가 김정일에 의해 암살되었다는 소문은 자강도에서 먼저 퍼지기 시작, 현재 시장을 중심으로 전국으로 확산되는 추세다. 또 연형묵 암살설은 김정일에 대한 불만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소문으로 떠도는 ‘연형묵 암살’ 배경에 대해서는 “(생전에) 연 책임비서가 바른 소리만 한 게 원인이 되어 김정일의 미움을 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언제, 누가, 어떤 방법으로 암살했다는 근거는 없이 유언비어로만 퍼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한다.

소식통에 따르면 “연형묵은 ‘고난의 행군’ 시기(90년대 중반 대아사 기간) 주민들이 굶어죽자 ‘2경제위원회(군수경제)가 가진 달러로 식량을 사서 배급을 풀자’고 김정일에게 제의했으나 승인받지 못했다는 소문이 많다”며 “자강도 당 책임비서로 있으면서 부모 없는 꽃제비 10명을 집에서 키웠다”고 전했다.

생전의 연형묵 전 책임비서는 북한주민들 사이에서 부정부패가 없고 검소한 생활을 하는 인물로 알려져 있다. 또 배짱이 있고 바른 소리, 쓴 소리를 잘해 주민들의 존경의 대상이었다. 그는 1988년부터 1992년까지 두 차례에 걸쳐 총리를 지내 ‘연형묵 책임비서’보다 ‘연형묵 총리’로 부르는 사람들이 아직 더 많다.

소식통은 “연형묵이 암살되었다는 유언비어가 퍼지면서 문성술, 서윤석, 김달현 등 오래전에 처형당한 사람들에 대한 소문까지 겹쳐 주민들이 ‘정직한 사람들은 다 죽인다’며 위(김정일 지칭)에 대한 불만을 쏟아내고 있다”면서 “사람들이 ‘나라가 망하려니 못하는 짓이 있냐?’면서 노골적인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고 전했다.

당 중앙위 본부당 책임비서였던 문성술은 98년 속칭 ‘심화조 사건’으로 안전부(현재 보안성) 조사를 받던 중 사망했고, 그의 가족들은 정치범 수용소에서 전원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평안남도 당 책임비서을 지낸 서윤석 역시 98년 ‘심화조 사건’으로 사망했다. 심화조 사건은 김일성 사망후 김정일이 ‘김일성 측근’으로 분류된 사람들을 숙청한 사건이다.

또 남한에서도 ‘개방파’로 알려진 김일성의 친척 김달현(전 2.8 비날로 연합기업소 지배인)은 2000년 12월 목을 매 자살, 사망에 의문을 남긴 것으로 알려진다.

연형묵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최측근으로 북한 국방공업을 이끌어온 실세로 알려져 있다. 함경북도 경원군에서 태어난 그는 만경대혁명학원 출신으로 체코의 프라하 공대를 유학한 이후 노동당, 정무원(현 내각), 국방위를 오가면서 북한 국방공업과 경제건설의 주역으로 활약했다.

항일빨치산 유자녀로 김일성 주석의 각별한 신임을 받았던 그는 30대인 1968년부터 당 중공업부 부부장과 부장, 노동당 비서를 역임했으며 1975년 정무원 부총리 겸 기계공업위원장와 제1부총리, 1988년 정무원 총리에 임명됐으며, 정치국 위원으로도 활동했다.

그러나 북한이 만성적인 경제난에 접어들면서 1992년 총리에서 해임돼 당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강등된 뒤 자강도 당 책임비서로 내려갔다. 그는 군수공장이 밀집한 자강도에서 중소형발전소 건설 등 새로운 정책을 추진, ’강계정신’이라는 신조어까지 유행시키며 1998년 최고인민회의 제10기 1차회의를 통해 국방위원으로 중앙무대에 복귀했다

북한의 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2005년 10월 22일 “연형묵 자강도 당 책임비서가 오랜 지병으로 사망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