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당국이 최근 진행된 국경지역 주민 대상 강연회에서 자료를 종이 인쇄물로 배포하지 않고 영상으로 보여준 것으로 전해졌다. 강연자료의 외부 유출 가능성을 차단하려는 움직임으로 해석된다.
양강도 소식통은 10일 데일리NK에 “지난달 중순 혜산시 마산동사무소에서 주민정치사업의 일환으로 국경연선 주민들에 대한 강연회가 열렸다”며 “특이한 점은 종이가 아닌 메모리(USB)에 담긴 영상을 보는 방식으로 진행된 것”이라고 전했다.
소식통에 따르면 강연자는 이날 강연에 앞서 ‘원수님(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사랑과 배려에 의하여 이제부터는 영상으로 강연을 진행할 것’이라고 선전·발표했다. 그러나 주민들 사이에서는 ‘자료가 (외부에) 넘어가고 있는데 아무리 통제해도 해결되지 않으니 당에서 조치를 취한 게 아니겠느냐’는 이야기가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움직임은 앞서 수도 평양에서도 포착됐다. 앞서 한 대북 소식통은 본보에 “평양에서는 이제 강연할 때 메모리로 제강을 받아와서 컴퓨터에 꽂아서 보여준다. 메모리를 관계자끼리 돌려가면서 주민 강연을 진행하고 있는 것”이라고 전한 바 있다.
북한 당국이 수도 평양 외 다른 지역에서 USB를 활용해 강연을 진행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진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를 두고서는 기술 발전에 발맞춘 자연스러운 시대적 흐름이라는 평가도 있지만, 한편에서는 종이로 된 내부 강연자료가 지속해서 외부에 유출되고 있는 상황을 막기 위한 의도라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 북한 당국은 강연자료 등 내부정보 유출을 차단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대외적으로 공개돼선 안 되는 내부 전략과 정책 방향이 고스란히 노출된다는 점, 강력한 주민 통제와 사상 교육의 증거로서 국제사회의 인권 지적에 빌미를 줄 수 있다는 점 등을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달 중순 혜산 주민들을 대상으로 진행된 ‘사회주의는 인민대중의 낙원이고 자본주의는 근로대중의 무덤이다’라는 제목의 강연회에서도 내부정보 유출에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는 내용이 강조된 것으로 전해졌다.
강연에서는 ‘주변에 적들의 검은 돈을 받아먹고 기생하는 반역자들이 많다’, ‘그가 옆집 사람일 수도 있고, 동무일 수도 있고 사촌형제일 수도 있으니 경각성을 높이지 않으면 언제 이용당할지 모른다’는 등의 언급과 함께 주민 신고체계를 확고히 해야 한다는 점이 특히 강조됐다는 전언이다.
소식통은 “강연자들은 외래자들이 다니는 걸 보고도 신고도 안 하고, 어떤 사람들은 내 일 아니면 상관 안 한다는 식으로 모른척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혁명적 경각성을 높여 신고체계를 확고히 세워나가야 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또한 북한은 이번 강연에서 자본주의와 비교해 사회주의 체제의 우월성을 거론하는 등 내부의 사상적 결집을 꾀하기도 했다.
소식통은 “강연자료에는 ‘자본주의는 겉으로는 잘 먹고 잘 살고 좋아 보이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남이야 죽든 살든 자기 하나만 생각하는 이기적 사상에 사람들이 병들어 썩어가고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면서 “강연자는 전국적으로 양강도에 비법(불법)월경자들이 제일 많다는 원수님의 심려의 말씀이 있었고, 이제는 중국 땅에만 가면 무조건 잡힌다고 설명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이어 강연자는 ‘우리식 사회주의는 서로가 하나로 뭉쳐 집단을 이루어 살며 모두가 서로 돕고 이끌며 아끼고 있다’, ‘인민이 바란다면 이 세상 끝까지 찾아가는 위대한 분들을 수령으로 모시고 사는 영광과 행복을 잊어서는 안 된다’며 체제를 선전하기도 했다고 소식통은 덧붙였다.
한편, 이번 강연에서는 주민들이 강연회나 학습회에 잘 모이지 않고 있는 상황에 대한 지적이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머리통이 썩고 개인 이기주의 사상이 꽉 들어찼기 때문’, ‘이런 현상은 다 적들을 도와주는 것’이라는 등의 비판이 제기됐다는 것.
이와 관련해 소식통은 “실제로 주민들이 모이지 않아 소집 포치 3번 만에 이번 강연회가 진행됐다”면서 주민 결집도가 점차 낮아지고 있는 최근의 분위기를 전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