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南 배제 미북군사회담’ 왜 나왔나?

▲ 북한 판문점대표부 대표 리찬복 상장

북한 판문점대표부 대표(리찬복 상장)는 13일 한반도 평화와 안전보장 문제 논의를 위해 유엔대표가 참가하는 가운데 미·북 군사회담을 열자고 제의했다.

대표는 이날 발표한 담화에서 “정전협정 제60항을 포함한 조선반도의 평화와 안전보장과 관련한 문제들을 토의하기 위해 쌍방이 합의하는 임의의 장소에서 아무 때나 유엔 대표도 같이 참가하는 조·미 군부 사이의 회담을 진행할 것”을 제의했다.

정전협정 제60항은 “쌍방이 한 급 높은 정치회의를 소집하고 모든 외국군대의 철수 및 한국문제의 평화적 해결문제들을 협의할 것을 건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에서 ‘쌍방’은 당시 유엔군을 대표한 미군과 북한군을 말한다.

북한의 이 같은 주장은 9·19 공동성명과 2·13 합의에 명기된 ‘한반도평화체제’ 문제를 미북 양자 중심으로 논의하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아울러 내주 18일 베이징에서 북핵 6자회담이 열릴 예정인 가운데 북한이 미북 군사회담을 제의한 배경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북한은 과거 수차례 미북 군사회담을 열자고 미국에 제의했지만 미국은 한국과의 관계문제를 고려해 쌍방간의 군사회담을 거부해 왔다.

담화는 특히 “미국이 매를 드는 격으로 떠들고 있는 우리의 핵문제란, 본질에 있어서 미국의 핵문제”라며 “우리 인민은 미국의 끊임없는 핵위협 속에서 살고 있으며, 남조선으로부터의 미국의 핵무기 철수와 조선반도의 비핵화를 시종일관 주장해 왔다”고 말해, 향후 미북 군사회담을 통해 ‘핵군축 협상’을 제의하면서 先미군철수 등 한미군사동맹 파기를 촉구하려는 의도를 보였다.

이어 “미국이 우리에 대한 선제타격 준비로서 남조선에서 연례행사처럼 벌이고 있는 대규모 전쟁연습과 방대한 무력증강 책동을 중지”를 거론하며 한미 군사합동 훈련의 중단을 요구했다.

또 “우리 군대와 인민은 자기의 존엄과 자주권, 생존권을 지키기 위하여 부득불 미국의 핵공격과 선제타격에 대비한 응당한 수준의 대응타격 수단을 더욱 완비해 나가는 데 총력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되는 경우 2·13합의 이행이나 6자회담이 하늘로 날아나게 될 것이라는 것은 불을 보듯 명백하다”고 강변했다.

담화는 “조선반도에 오늘과 같은 복잡하고 엄중한 사태가 조성되고 해소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미국의 집요한 대조선 적대시 정책과 함께 이를 적극 비호.동조하고 있는 유엔안전보장 이사회의 비굴한 처사와도 관련된다”며 유엔안보리에서 중국과 러시아의 역할 제고를 겨냥했다.

담화는 이와 함께 “조선인민군측은 미국과 유엔이 다 같이 조선정전협정의 조인일방으로서 조선반도에서 새로운 평화보장체계가 수립될 때까지 정전협정에 의해 지닌 의무에 충실할 것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이번 판문점 대표부의 담화에 대해 유호열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의 미북 군사회담 제의는 자신들이 이미 핵무기를 보유했으니 이를 기반으로 해서 미국과 평화협정을 체결하겠다는 것”이라며 “6자회담 틀이든지 밖이든지 신경 쓰지 않겠다”는 의도라고 분석했다.

유 교수는 또 “북핵 폐기는 6자회담 틀 내에서 다루기 힘들어졌다”며 “6자회담에서는 경제을 지원 받는 대신 평화협정 등은 군사회담에서 다루면서 핵군축이나 주한미군 철수 문제 등을 미국과 양자회담을 통해 해결하려는 전략”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그는 “미국은 모든 것을 6자회담 내에서 하려 했지만 의도대로 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핵 2·13 합의 초기조치 이행이 본격화 되는 국면에서 북한 군부가 6자회담에서의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전략의 일환으로 제시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고 교수는 “미국의 압력에 굴복해 비핵화 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북한 내부적으로 리더십의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군사적인 긴장완화 조치를 병행하면서 미국과의 적대관계를 해소하고 비핵화를 실현하기 위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또 “군사회담을 통해 ‘종전선언’ 등을 끌어낼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책연구소의 한 연구위원은 북한의 의도를 “남한을 배제하고 미국과 양자 평화협정 체결 또는 새롭게 중국을 유엔안보리 대표로 상정하고 미-중-북간 평화협정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 같다”며 “이같은 구도는 이미 92년, 2000년에도 써먹은 것으로, 남한이 이 논의구조에 들어오려면 경제지원 등 더 많은 양보를 해라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담화를 ▲한미 이간 ▲先 미군철수 노린 북미 핵군축 협상 ▲향후 6자회담에서 HEU, 경수로 제공 문제와 관련, 2·13 합의가 질척거릴 경우 그 책임을 미국에 전가하려는 사전 포석 작업의 일환으로 분석하면서, “현재 북한은 이미 핵무기를 보유했기 때문에 한반도 평화체제에서 한국을 배제하고 주도권을 잡아가겠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이번 판문점 담화처럼 북한의 의도대로 되기는 어렵다”면서도 “만약 미국이 북핵문제 해결에만 급급한 나머지 과거와 달리 한국을 배제하고 북한과 담판을 지으려 할 경우, 한미동맹에 중대한 파국이 올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북한의 이런 제의에 대해 이재정 통일부 장관은 “왜 우리를 빼고 요청했는지 좀 더 진의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이런 요구가 6자 틀에서 논의하는 한반도 평화논의와 어떤 연관이 있는지 깊이있는 검토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남북한 군사회담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 진행상황을 예의 주시하겠다”며 “한반도 군사적 긴장완화와 평화체제 문제는 남북 간 대화를 중심으로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