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편지] “손석춘은 북 주민의 고통 가슴으로 느껴봐라”

유엔총회 ‘북한인권을 위한 결의안’ 가결-찬성 84 반대 22

<한겨례> 비상임 논설위원이며, 중앙대 겸임교수를 맡고 있는 오마이뉴스의 손석춘기자는 지난 21일 오마이뉴스에「그들의 ‘인권론’ 진실한가」라는 칼럼을 통해 지난 18일 유엔총회에서 통과된 대북인권결의안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그는 칼럼을 통해 “대북인권결의안 통과는 미제국주의의 정치적 목적에 의한 폭력”이라 밝혔으며, “인권국가이길 포기했다는 한나라당의 주장은 차라리 연민을 느끼게 한다. 그들 스스로 대한민국의 인권을 유린한 자들 아닌가”라며 한나라당의 북한인권 촉구를 비난했다.

나는 이 글을 읽다가 답답한 마음을 금할 수 없어 두서없이 펜을 들었다. 남한의 좌파 식자층의 경박함에 혀를 내두를 수 밖에 없는 심정이었다. 그래서 나도 가슴에서 나오는 이야기를 여과없이 써보려고 한다.

손씨는 역사상 유례가 없는 압도적 찬성으로 통과된 대북인권결의안 채택이 미제국주의의 정치적 목적을 가진 불순한 행위라고 했다. 그는 북한주민들이 김정일의 살인정치하에서 죽건, 살건 상관없이 “미제국주의”만 미워하면 그만이라는 목적 외엔 다른 뜻이 없는 것 같다. 이런 사람이 기자라는 외피를 쓰고 민주화와 인권을 운운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

이번 결의안은 EU(유럽연합)가 제출했다. 그렇다면 EU도 미제국주의 음모에 놀아나는 꼭두각시란 말인지 묻고 싶다. EU 국가들 중 일부가 이라크 전 참전을 거부할 때는 머리끝까지 치켜세우다가 이제는 앞잡이라니, 틀린 이야기라도 일관성이 있어야 할 것이 아닌가?

어려움에 처한 상황에서 나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은 친구이건, 이웃이건 고맙기 마련이다. 평소 소원해도 도움을 주고 받으면 사이는 좋아지게 돼있다. 선진국이 인권문제를 제기하면 북 주민이 반기지 않을 것이라는 뚱딴지 같은 소리를 손석춘씨는 하고 있다.

잘사는 친구가 도와주면 속이 매스껍고, 못사는 친구가 도와주면 진정성이 느껴진다는 말인가? 눈만 뜨면 이래서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안된다며 인권 선진국 달성을 외치던 사람들이, 이제는 서방 세계의 북인권 개선 요구를 속이 뒤집어질 이야기라고 매도하고 나선다.

그가 북한의 진실을 제대로 알기나 하고 그와 같을 글을 썼는지 묻고 싶다. 북한의 인권 참상을 직접 겪어본 사람으로서 도저히 수용하기 어려운 글이다. 북한에게 우리 수준의 인권 보장을 하라고 한 적이 없다. 대신, 불법적으로 때리고, 굶기고, 가두고, 학대하고, 죽이지 말라는 것이다.

북한 주민들의 고통 가슴으로 느껴봤나?

북한은 온 사회가 거대한 감옥이자, 김정일의 왕국이다. 이 은둔의 왕국에서 인권유린은 어떤 외부의 손길도 미치지 못한다.

북한에서 태어났다는 죄 아닌 죄로 많은 사람들이 굶고, 병들고, 맞아 죽고 있다는 말이다. 하루에도 죽어 나가는 사람이 수십명이 넘는다. 자연재해나 우발적 사고도 아닌, 김정일의 총과 폭력에 의해 죽어가는 것이다. 손씨는 정치범 수용소에서 하루에 몇 사람이 죽어가며, 그 사람들의 희생을 막기 위해 어떻게 해야할 지를 생각해보았는가?

단 한 번이라도 그들을 위해 잠자리를 뒤척해보았다면, 나는 손씨를 이렇게까지 타박하고 싶지 않다. 짐작컨데 그는 북한 인권을 활자로만 읽을 뿐 북한 주민들의 고통을 가슴으로 느껴보지 않았을 것이다.

거대한 감옥에서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는데 인간존중의 정의와 사랑의 감정을 가진 세계인이 편안히 앉아 있으란 말인가. 당신은 옆집의 사람이 당장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어떤 도움의 손길을 뻗치지 않고 철지난 주권론과 전쟁위기론 타령만 할것인가.

북한의 인권이 열악하다는 것은 한마디로 열거하기 어려울 만치 심각하다. 북한의 2천 3백만 인민들의 인권을 개선하기 위한 운동에 진보든 보수든, 제국주의든 관계없이, 생명을 사랑하는 모두가 함께해야 한다.

6.25전쟁 이후 한반도 역사에 지금처럼 7천명 이상의 탈북자들이 생기고, 수만의 재중탈북자들이 삶을 찾아 유랑한 적이 있었는가. 또 그들은 한결 같이 북한사회의 인권개선을 국제사회에 촉구하고 있다.

나는 탈북자로써 북한주민들이 죽어가는 상황을 지켜만 보자는 당신의 견해를 역사에 기록해 둘 것이다.

김익주 (가명, 탈북자, 2001년 입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