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화국 영웅 정성옥은 ‘페이스메이커’ 출신

“내가 흘린 눈물의 의미를 저도 잘 모르겠어요. 이 무대에 섰다는 게….” 피겨여왕 김연아 선수가 세계선수권대회 직후 밝힌 소감의 한 대목이다. 불현듯 ‘북한 선수들이라면…’이란 의문이 들었다. 답은 분명했다.


아마도 그들은 “장군님의 크나큰 믿음이 있었기에 이 자리에 설수 있었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국가를 대표하는 선수이지만 자신의 소감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한국과 한마디를 하더라도 국가가 승인한 말만 해야 하는 북한의 차이다.


북한에선 말과 행동을 할 때 반드시 ‘당과 수령’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한다. 개인이 거둔 성과도 ‘장군님(김정일)의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라며 ‘체제선전’에 이용된다. 만약 기자회견 등에서 김정일의 이름이 거론되지 않으면 그가 아무리 특출한 인재라고 하더라도 비판을 받게 되고, 결국 그의 인생은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다.


일례로 1999년 9월 29일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여자마라톤에서 금메달을 딴 정성옥이 ‘공화국영웅’ 칭호를 받고, 이후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이 된 것도 모두 말을 잘했기 때문이다.


탈북자 등에 따르면 정성옥은 당초 북한 내 여자마라톤 1인자였던 김창옥 선수를 위한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하는 보조 선수였다. 김창옥의 유니폼엔 북한 국기가 달려 있었지만 정성옥의 유니폼에 북한 국기가 달려있지 않았던 이유다. 그가 결승선 테이프를 제일 먼저 끊었을 당시 어느 나라 선수인지 알 수 없어 한동안 소개도 못했을 만큼 주목받지 못했다. 


‘깜짝 우승’으로 세계를 놀라게 한 정성옥 선수는 기자회견에서 “105리 구간을 오직 장군님만 그리면서 달렸다. 그러기에 오늘 1등이라는 영예도 지니게 된 것이다”라고 말하며, 김정일을 흡족하게 했다.


당시 북한은 “고난의 행군을 겪고 있는 인민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안겨주고 김정일 장군님을 찬양함으로서 주민들을 정치적으로 고무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며 ‘공화국 영웅칭호’와 금별메달, 국기훈장 1급, 인민체육인 칭호를 수여했다. 북한 백과사전에도 등재됐다.


정성옥의 고향은 황해남도 해주였지만 김정일의 ‘배려’로 온 가족이 평양에서 살게 됐다. 북한 주민들은 당시 정성옥에 대해 “시기와 때를 잘 만난 여자다. 말 한마디를 잘해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평양 거주까지 하였으니 한 번에 복을 받은 여자다”라면서 부러워했다.


정성옥의 경우처럼 말 한마디에 영웅이 된 사람도 있지만 말을 잘 못해 영웅이 될 수 있었던 기회를 놓친 사람들도 있다.


북한군 사이에 널리 알려진 이야기다. 1980년대 중반 북한군 비행사로 군복무 하던 한 군인이 낙하 훈련에서 장비불량으로 낙하산이 펴지지 않아 800m 상공에서 자유낙하 했는데, 다행히 다리만 다쳤을 뿐 목숨이 무사하였던 일이 있었다.


북한군 훈련실태를 보고 받던 김일성이 이 사연을 알고 인민무력부 간부를 부대에 내려 보냈다. 당시 간부는 “그렇게 높은 상공에서 떨어졌는데 어떻게 살 수 있었는가? 대단한 체력이다”고 그를 치켜세웠다.


하지만 그 군인은 “천명이다. 하늘이 도왔다”라고만 짧게 답했다. 이 때문에 그는 비판을 받게 됐다. 겨우 목숨을 건지고도 비판을 받아야 했던 것은 “수령님의 주체 전법대로 평상시 훈련을 규정대로 하였기에 살 수 있었다”는 말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3대 세습 왕조를 건설하고 있는 북한에서 국제대회 1등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오직 김일성 일가(一家)의 위대성에 대해 선전하면 그들의 사명은 끝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