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LL 목숨걸고 지킨 켈로부대 단체사진 최초 공개

1950년 6·25전쟁 당시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사수한 켈로부대(Korean Liaison Office, KLO)원들 중 일부 생존자들이 정전협정(1953년 7월 27일) 3개월 뒤인 10월 25일 단체로 찍은 사진이 최초로 공개됐다.


사진을 공개한 최성룡 납북자가족모임 대표는 정전협정 이후 미군 소속이었던 켈로부대가 우리 국방부 소속으로 이관되면서 인천 용유도에서 찍은 것이라고 밝혔다. 사진은 미군 장병이 찍은 것으로 사진 속 인물 중 생존자는 10여 명 안팎이라고 최 대표는 설명했다. 


켈로부대는1949년 38선 이북 출신으로 조직된 ‘미국 극동사령부 주한연락처’의 영문 머리글자를 따 창설된 부대로 해당부대는 1951년 8240부대로 확대 개편됐다.


켈로부대는 평안북도 정주군의 청년과 학생들이 중심으로 북한 지역에 파견되는 유격작전부대와 첩보부대 등으로 나눠 활동했다. 이들은 서해안에 있는 대화도를 비롯해 그 인근에 있는 소화도, 탄도, 가도, 가차도 등을 차례로 점령했으며 이 과정에서 552명의 꽃다운 청춘들이 전사했다.


평북 정주군의 청년과 학생들이 중심이 된 켈로부대는 정전협정 체결이 임박할 무렵인 1953년 7월 서해안 인근의 점령했던 섬들을 포기하고 남하하라는 지시를 받고 고향 땅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최 대표는 데일리NK에 “점령했던 땅을 다시 되돌려줘야 했고, 부대원 대부분의 고향이 평북인데 고향 땅에도 못 가게 되면서 얼마나 서러움이 컸었겠냐”면서 “그런데 최근 NLL에 대한 정치권의 논쟁이 불거지면서 서해안 인근 섬을 목숨으로 지켰던 생존자들이 이를 보고 더 분노를 느끼고 있다”며 사진을 공개하게 된 사연을 설명했다.


그는 이어 “NLL은 어떠한 경우에도 정치적인 흥정의 대상이 될 수 없는 사안”이라며 “고향 하늘을 바라보며 절규했을 사진 속 켈로부대원들과 552명 전사의 영혼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 대표의 부친인 최원모 씨 역시 평안북도 정주 출신으로 전쟁 당시 켈로부대 소속 ‘북진호’의 함장으로 해상에서 적(敵)선을 섬멸하고 중공군 포로와 식량 등 물자를 노획하는 전공(戰功)을 세웠다.


최 씨는 1967년 6월 연평도 인근에서 조업 중 북한 무장선에 의해 납북돼 1970년 북한에서 인민재판에 회부, 처형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부는 지난 7월 켈로부대 납북자 출신 최 씨에게 처음으로 화랑무공훈장이 수여한 바 있다.


한편 ‘켈로 8240 유격백마부대전우회’는 켈로부대원들이 단체로 찍은 10월 25일을 552명 전사자를 추모하는 위령제를 매년 진행하고 있다.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 이후 인천 용유도에서 찍은 켈로부대원 단체사진. /사진=납북자가족모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