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고교생 크로싱 감상문 <가작2>

이름: 전선우
학교: 서울 세화여자고등학교 3학년 5반

12월 4일 목요일.

논술이 남은 친구들을 제외한 나머지 3학년 학생들 단체로 씨너스 단성사에서 <크로싱>이라는 영화를 관람했다. 이 영화는 처음 나왔을 때 너무 보고 싶은데 고3 티낸다고 플래너에 적어놓곤 6개월동안 참아왔던 영화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를 본다고 했을 때 수능이 끝난 후의 진정한 보상을 준다는 느낌도 있었고 그만큼 기대도 더욱 컸다.

영화가 시작되자 마자 보이는 낡고 허름하고 추워보이는 집.

그 집엔 아버지 용수와 어머니 용화 그리고 아들 준이가 살고 있었다. 아버지는 당에서도 인정해주는 성실한 노동당원이었고 탄광촌에서 탄광일을 하며 살지만 준이네 집은 집의 모양새, 빈 쌀독, 식구들의 허름한 옷, 준이의 찢어진 운동화를 보면 알다시피 우리입장에서는 놀라지 않을 수 없는 지독한 가난에서 헤어나올 수가 없다. 그 어려운 상황에 아내는 둘째아이를 임신한 상태에서 폐결핵 까지 걸려 몸상태가 좋지 않은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그곳에선 약 한알도 구할 수 없는 처지가 되자 용수는 식구들의 나은 형편과 아내의 폐결핵 약을 위해 목숨을 걸고 압록강을 건너 중국에 건너간다.

용수가 떠나가기 직전 아들과 마지막으로 한 돌멩이축구와 포옹이 얼마나 안쓰럽던지 그 부분에서는 제발 용수가 하루빨리 돌아와서 가족들이 잘 살기만을 바라는 마음으로 그런 행복한 스토리 전개를 기대했었다.

중국으로 넘어가기에 성공한 용수는 매일같이 가족들을 생각하며 벌목일을 하여 돈을 벌었지만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경찰에 쫒겨 모든 돈을 잃게 된다. 그러던 어느날 인터뷰에 응하면 돈을 주겠다는 말에 혹하여 바로 인터뷰에 응하지만 그것은 가족과 더 만나기 힘든 길이었다. 그 사이 북에서는 결국 아내가 세상을 떠나고 혼자남은 아들은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무작정 떠난다. 그 후 좋은 결말을 기대했던 것이 실현이 되는 듯 용수는 아들의 행방을 알게 되어 둘은 전화통화를 할 수 있게 되었고 다음날이면 만난다는 기대감에 잠도 이루지 못하지만 이게 얼마나 잔인한 하늘의 장난인지 이 부자는 영영 만날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린다.

112분동안 이 영화에서 단 한순간도 눈을 뗄 수가 없었고, 수십번씩 소름이 끼쳤다.

한 장면 한 장면 볼때마다 ‘아 저게 실제 상황이라면 얼마나… 얼마나… 정말로 얼마나 고통스럽고 힘들고 보고싶을까’ 그런 마음뿐이었고 이 영화 스토리만이 잔인한 것일뿐이라고 스스로 마음을 달랬었지만.. 아니나 다를까! 세상에! 영화가 끝난 후 실제로 탈북을 해서 지금 이곳에서 살고 있다는 오빠가 자신이 겪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는데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그대로 북한에서 강을 건너 중국 사람에게 돈을 쥐어주고 그곳에서 지내다가 남쪽으로 건너와 살게 되었다고 한다. 실제로 ‘준이 같은 환경에서 그런 상황을 겪고 사는 아이들은 상상할 수도 없이 많으며 남한으로 오게 되는 과정은 영화에서 그려진 것보다 훨씬 더 어렵고 굉장히 힘든 상황이다’라는 말을 생생히 전해 들은 순간 나는 입이 벙져있고 몸이 얼얼해지면서 경악을 금치 못하였다. 거기다가 더 충격을 받은건 그 오빠가 목숨을 걸고 살기위해 단지 살기위해 그 결심을 하게 된 것이 지금의 내 나이 열 아홉세라는 것.

용화가 아내가 죽은 날 술을 마시면서 답답한 마음에 소리친 말이 있다. 왜 예수는 잘사는 남쪽나라에만 있는거냐고.
정말 그랬다. 내가 믿고 있던 예수님의 존재는 모든 생명을 차별없이 사랑하는 분이신데 왜 잘 사는 나라에만 존재 하시는 것인지.. 마냥 답답했다. 내가 그들에게 예수님의 머리털 하나라도 되어 줄수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며 장래희망까지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영화를 보고 제일 먼저 떠오르는 장면은 많기도 하지만 마지막에 준이가 몽골사막에서 싸늘히 식어가면서 꿈을 꾸는 부분이 생각난다. 누구나 풍요롭게 살고 노래할 수 있고 맛있는 음식을 나누어먹을 수 있고 새 축구볼과 축구화로 친구들과 내내 뛰어놀 수 있는 평화로운 세상을 그리는 열한 살 아이. 그 황량한 몽골 사막 한가운데서 얼마나 외로운 사투를 벌일까 하는 생각에 너무나도 마음이 무거웠다.

나의 친할아버지의 고향도 북쪽 내금강면 이시다. 그래서 할머니께 얘기를 많이 듣고 북쪽에 대해 그리고 어린이들의 생활이 많이 어렵다는 것은 어렸을 때부터 많이 듣고 자라긴 했지만 정말 그 정도일 줄을 왜 이제야 심각하게 알았는지, 왜 진작에 더 많은 도움을 주지 못했는지 내 자신에게 화도 많이 나고 2008년 우리나라도, 우리나라를 제외한 여러 많은 국가들도 어느정도 예전보다는 많이 발전 했을 거라고 생각해왔는데 그런 말도 안되는 잔인한 일들이 지금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와중에도, 내가 학교에 가고 내가 편히 잠을 자고 밥을 먹고 있는 와중에도 계속 반복되고 있다는 것에 그리고 당장 내가 그 현실을 한번에 잘라 내줄 수도 없다는 것에 눈물만 날 뿐이었다. 많은 생각들이 스쳐지나가고 어떻게 하면 그 아이들과 가족을 잃은 많은 가족들의 고통이 조금이라도 줄어들까 생각하게 되고 불평만 했던 내 자신도 한번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탈북자, 새터민, 통일… 내가 한없이 가볍게 생각해왔던 생각들이 부끄러워지면서 다시 생각하게 되었던 내 생각 자체를 뜯어고쳐주었던 영화 <크로싱>.

영화가 끝난 후 집에 돌아와 나는 내 미니홈피에 탈북자분들의 안타까운 이야기와 통일에 대한 내용, 북한어린이들의 힘든 상황을 되도록 많은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스크랩을 많이 해놓았다. 그러면서 내가 그 아이들에게 아주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고 내가 죽기 직전까지 그 아이들에게 0관심을 주기로 다짐했다.

지금도 나는 수천만명의 준이를 기억하며 내가 이런 내용의 글을 쓰지 않는 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바라는 마음뿐이고 그 아이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이 오게 해달라고 남쪽에 있는 예수님께 기도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