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군의 병영생활, 어떤 모습일까

외부세계에 실체를 잘 드러내지 않고 있는 북한군의 병영은 어떤 모습일까.

비록 자세한 실정은 공개되지 않고 있지만 최근 북한군 출신자들이 탈북자 대열에 합류하면서 북한군의 생활상이 조금씩 알려지고 있다.

북한군 출신 탈북자 이정연(38)씨가 쓴 ’북한군에는 건빵이 없다?’(플래닛미디어刊)란 제목의 책은 북한군의 실상을 들여다볼 수 있는 길잡이 역할을 해준다.

저자 이씨는 비무장지대(DMZ) 경비와 정찰임무를 맡는 민경대대, 인민군 정찰국 산하 부대, 국가안전보위부 요원으로 근무하다가 1999년 한국으로 귀순했다.

이씨가 전한 북한군의 실상 중 눈에 띄는 것은 ’얼차려’가 없다는 점. 얼차려는 군의 기율을 바로잡으려고 상급자가 하급자에게 육체적 고통을 가하는 일종의 체벌이다.

북한군에서는 잘못하거나 군사 규율(규칙)을 위반한 군인은 경무부(헌병대) 같은 곳에 일시 잡아두거나 부대 내에 적당한 곳에 사각형 선을 그어놓고 그 선을 따라 ’정보행진’을 하는 것으로 끝낸다는 것. 정보행진은 북한군이 군사 퍼레이드를 할 때 걷는 걸음을 말한다. 북한군은 1960년대 영창제도를 공식 폐지했다고 한다.

출신지역을 빗댄 지역 차별적인 용어나 은어들도 통용되고 있다.

간부 및 부유층 자식들이 많은 평양출신은 ’노랭이’로 불린다. 얄미울 정도로 약빠른 사람을 일컫는 ’깍쟁이’와 같은 말이다. 황해도 출신은 성격이 느긋하고 동작이 느리다고 해서 ’뗑해도 출신’으로 통한다.

함경남도 출신들이 가장 투지가 넘치고 활동적이라고 한다. 그래서 ’함흥 얄개’(아주 사나움), ’홍원 참새’(말이 많음), ’덤베 북청’(아주 급한 성격), ’정평짜드러기’(거머리처럼 들러붙고 질김) 등으로 불린다는 것.

주로 군대에서 어수룩한 사람을 놀림조로 이르는 말인 고문관은 ’뗑한 새끼’ 및 ’뗑돌이’, 닭은 ’나비’, 담배 한 개비는 ’빠골 한 대’, 여러 방면에서 재주가 있는 사람은 ’팔방돌이’로 불린다.

왕따와 같은 말인 ’똥자루’도 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입대한 신병들은 남한 가요를 잘 부르는데 이 가운데 ’독도는 우리 땅’, ’아파트’, ’애모’, ’내 사랑 내 곁에’, ’사랑은 연필로 쓰세요’, ’사랑의 미로’, ’친구’, ’만남’ 등을 자주 들을 수 있다고 한다.

북한군에서도 크고 작은 사고가 자주 발생하는데 1991년 DMZ 인근에서 발생한 수류탄 투척 사건은 2005년 연천군 GP 총기난사와 매우 유사하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강원도 금강군 이포리에 있는 북한군 2사단 예하 보병연대에서 근무하던 입대 3년차 병사가 고참들의 구박에 반감을 품고 내무실에 수류탄을 던졌다. 이 사고로 내무실에서 잠을 자던 부대원 16명 가운데 7명이 즉사하고 3명은 호송 중에 숨졌다. 부상자들은 전원 불명예 전역을 했다고 한다.

DMZ를 출입할 수 있는 통문을 관리하는 임무를 맡고 있어 군기가 세기로 유명한 이 부대에서 이 같은 처참한 사고가 나자 상급부대 지휘관들까지 줄줄이 문책을 당했다.

이 부대는 3년 뒤 휴전선을 넘어온 미군 OH-58C 정찰용 헬기를 격추했던 부대라고 저자는 전했다. 당시 월북한 미군 헬기를 향해 이 부대 예하 고사총부대의 부소대장이 ’화승총’(휴대용 대공 단거리미사일)을 발사해 꼬리 부분을 맞췄고 헬기는 인민학교 돌담에 추락했다는 것.

헬기가 추락하자 한 명은 뛰어내렸지만 곧바로 숨을 거뒀고 나머지 한 명은 헬기에서 빠져나와 단검을 휘두르다가 제압당했다고 한다.

북한 조선중앙TV는 사건이 발생한 지 10여 년이 지난 2005년 5월 15일 당시 격추된 헬기 잔해 옆에서 양손을 들고 있는 조종사 보비 홀 준위의 사진을 방송했으며 이 장면은 남한에서도 볼 수 있었다.

병사들에게 주어지는 하루 쌀 배급량은 850g으로 일반 노동자의 700g보다는 많지만 육체적 고통이 따르는 탄광이나 광산노동자의 배급량 900g보다는 적다.

전역 후 좋은 직장에 취업이 보장되는 호위사령부와 전방부대, 특수부대, 공군, 해군 등에서 복무하려고 적지않은 뇌물을 건네는 풍조가 만연해 있다고 저자는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