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의 정통성 시비, 아직 끝나지 않았다

김정은의 권력기반이 여전히 불안하다는 점을 단적으로 말해주는 사건이 터졌다. 해외를 떠돌던 김정남이 결국 북한 공작원으로 추정되는 여인들에게 살해된 것이다. 김정남의 살해는 김정은의 지시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이번 사건은 사실상 김정은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판단된다.

김정남 피살 보도가 나온 지 불과 하루밖에 지나지 않은 2월 15일 현재까지 보도된 내용을 취합해볼 때 이번 사건은 김정은의 지시 혹은 김정은에게 과잉 충성하는 세력에 의해 저질러진 측면이 짙다. 그러나 김정은에게 과잉 충성하는 세력이 자행한 살인이라 할지라도 김정은의 의도에 반하여 이뤄질 수 없는 사건이기에 김정남 피살은 사실상 김정은이 의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김정은은 집권 5년간 공포통치로 일관해 왔지만 해외에서 유랑생활을 하다시피 지내고 있던 자신의 친형을 끝내 살해할 정도로 자신의 권력에 대한 불안감을 여전히 떨쳐내지 못하고 있다. 사실 김정은은 5년 전부터 김정남 암살을 시도해왔다고 한다. 이에 김정남은 지난 2012년 4월 ‘저와 제 가족을 살려달라,’ ‘응징명령을 취소 해달라’는 서신을 김정은에게 발송했지만, 권력의 비정한 생리 앞에는 혈육에 기댄 인지상정도 소용이 없었다. 국제사회가 북한 붕괴론을 공론화하는 상황에서 김정은은 ‘눈엣 가시’같은 존재였던 김정남을 제거함으로써 북한에 ‘대안없는 상황’을 마련해 놓았다. 김정남은 개혁개방에 상대적으로 우호적인 성향을 지녔었고 중국 정부로부터 보호를 받으며 북한 붕괴 시 김정은의 대안세력으로 거론돼왔다. 심지어 김정남은 북한망명정부가 수립될 시 간부로 임명될 거라는 소문까지 나도는 상황이었다. 이런 김정남이었기에 언젠가는 비극적 상황을 맞을 수 있을 거라는 불길한 예감도 전혀 없지는 않았다. 이렇게 볼 때 북한망명정부를 수립하려는 탈북 인사들의 움직임과 관련하여 김정일의 이복동생인 김평일 체코 주재 북한 대사도 안전하다고 볼 수 없다.

좀 더 나아가서 생각해 볼 때 지난 2013년 12월 12일의 장성택 처형사건과 최근 국가보위상 김원홍의 해임도 김정은의 권력불안감이 반영된 사건이었다고 할 수 있다. 김정남 살해사건까지 합해서 이 세 사건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김정은이 김정남을 고리로 한 현재적, 잠재적 경쟁자들을 모두 제거했다는 점이다. 김정남의 생모인 성혜림이 1974년에 모스크바로 쫓기듯 떠난 후 어린 김정남을 키운 건 장성택-김경희 부부다. 이들 부부는 사실상 김정남의 후견인이었던 것이다. 김정은은 지도자 자리에 오른 후 이들 부부를 먼저 몰아냈다. 장성택은 잔인하게 처형해 버렸고, 김경희는 노동당 정치국 위원, 당 비서국 비서, 당 경공업부 부장 등 장성택 처형 이전에 보유했던 여러 직책을 박탈당했다.

김정은은 이처럼 자신의 유일지배체제에 조금이라도 위협 가능성이 있는 인물은 그가 가신이든 혈육이든 관계없이 가차 없이 정리해 버리는 냉혹함으로 지난 5년을 일관했다. 그러나 그는 이번에 친형인 김정남을 살해함으로써 커다란 모순을 범했다. ‘백두혈통’의 신성함을 스스로 뒤집은 것이다. 물론 김정은의 기준에선 김정남이 백두혈통이 아닌 곁가지에 불과할지 모르나, 김정남이 김정일의 장남이며 따지자면 진짜배기 백두혈통이라는 걸 북한 당국자들은 모두 알고 있을 것이다. 북한 당국에서 중요시하는 ‘피의 순수성’ 차원에서 볼 때 이번 김정남 살해 사건은 김정은의 ‘짝퉁 백두혈통’ 콤플렉스가 빚어낸 또 다른 비극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김정은은 자신의 권력이 정통성이 없는 불법 세습에 의한 것이었다는 걸 스스로 고백하고 말았다. 뒤집어 생각할 때 김정은이 북한 정권의 정통성을 유지하고 있다면 장성택 처형이나 김경희 축출, 김정남 살해와 같은 무리수를 두지 않고서도 떳떳하게 자신의 집권을 인민들에게 정당화할 수 있었을 것이다. 첫 단추를 잘못 끼운 탓에 북한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바람 잘 날 없는 사건이 터지고 있다. 그것을 바로잡을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다시 단추를 모두 풀어헤치고 처음부터 제대로 채우는 것이다. 인민의 손으로 현명하고 유능한 사람을 북한의 지도자로 뽑는 것, 그것이 민주주의요 인민공화국의 요체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