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북한식당에서 그녀가 사라졌다







▲캄보디아 프놈펜의 한 북한식당 종업원들이 공연을 펼치고 있다./사진=박정연 재 캄보디아 한인회 사무국장 제공

앙코르와트로 유명한 동남아 국가 캄보디아에는 모두 5개의 북한식당이 있다. 수도인 프놈펜 시내에 3곳, 앙코르와트로 유명한 유명관광지 씨엠립에 2곳이 있다. 모두 북한 노동당 산하 외화벌이 부서에서 별도로 운영하는 국영식당이다. 이들 식당들은 북한이 무기수출 다음으로 해외에서 달러를 벌어들이는 주요한 수단이기도 하다.


얼마 전 해질 무렵 프놈펜 시내에 있는 한 북한식당을 찾았다. 화사한 분홍빛 한복차림에 인공기가 그려진 플라스틱 명찰을 단 젊고 단아한 여성들이 문앞에서 ‘반갑습니다. 어서 오십시오’라며 북한 억양으로 손님들을 반긴다. 20대 초반의 앳된 미모와 재능을 갖춘 접대여성들이다. 조금 이른 저녁시간대라서 간간히 테이블에 앉은 손님들이 보인다. 그나마 대부분 현지인들과 중국손님들이다. 10명 정도의 젊고 예쁜 여성들이 눈이 들어온다. 자리를 안내하는 이들 접대여성들은 대부분 평양출신이다. 출신성분과 당성을 인정받은 선택받은 계층만이 평양에 살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춤과 노래 등 재능도 겸비한 이들 여성들은 북한에서는 일등신부감인 셈이다. 매일 저녁 7-8시 무렵이면 어김없이 이들 여성들의 춤과 노래가 어울어진 공연이 시작된다. 전통부채춤부터 ‘찔레꽃 필 무렵’ 같은 우리네 노래와 최근에 유행한 남한노래까지 숙달된 솜씨로 척척 불러 재낀다. 오랜 연습 탓인지 기교는 매우 훌륭하지만 왠지 정형화된 틀에 갇힌 느낌을 받게 된다.


이곳에 근무하는 여성들은 북한에서는 나름 선택받은 존재들이다. 또한 해외여행이 자유로운 남한과 달리 외국에서 근무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북한에선 일종의 특권이기 때문이다. 선발 조건 역시 상당히 까다롭다고 한다. 우선 예술계 중학교나 전문대학을 졸업한 출신성분이 좋고 사상검증도 마친 20대 초반의 젊은 여성이어야 한다. 뽑혔다고 해서 곧바로 해외로 파견근무를 나가는 것도 아니다. 파견되는 나라가 대부분이 자본주의 체제 국가들이기 때문에, 최소한 1년간 북한에서 사상교육 등 정신무장교육과정을 거쳐야 한다.


또한, 그녀들의 해외근무기간은 3년으로 못박혀 있다. 일종의 ‘의무복무기간’인 셈이다. 따라서 중도에 포기하고 돌아가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 3년이란 긴 시간을 북에 남은 가족과 떨어져 살아야 하지만, 그나마 세상밖으로 나갈 수 있는 거의 평생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기회이기에 평양의 젊은 여성들 사이에선 상당히 선망하는 직업이라고 한다. 단, 의무 근무기간이 만료되면 연장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해외근무를 다시 신청할 경우 다시 1년간 평양에서 사상교육을 받아야 하며, 처음 갔던 나라는 다시 갈 수 없다고 전한다.









▲북한식당에서 종업원들이 춤과 노래 등 공연을 펼치고 있다./사진=박정연 재 캄보디아 한인회 사무국장 제공

우리 테이블을 담당하는 북한여성에게 ‘의무근무기간’이 끝나 북한에 돌아가면 무엇을 할 생각이냐고 질문에, 좋은 남자 만나서 시집갈 것이라는 대답이 망설임 없이 나왔다. 요즘 비슷한 또래의 남한 여성들한테는 듣기 힘든 답변이다. 오래 전 다른 여성에게도 했던 동일한 질문에 같은 대답을 들은 기억이 났다. 북한에서는 여성의 결혼연령이 남한에 비해 상당히 이른 편이다. 대부분 3년간 근무기간을 마치면 될 24~5세의 나이에 좋은 배우자를 만나 결혼하는 게 일반적 수순이라고 한다.


한 가지 더 놀라운 사실은 이곳 북한 식당의 접대여성들은 하나같이 매우 폐쇄적인 공동생활을 한다는 점이다. 필자는 8년 넘게 이 나라에 살았지만, 이곳 북한여성들이 혼자 다니는 모습을 결코 본 적이 없다. 남한사람과의 접촉을 막고 서로를 감시하는 시스템이 일상 생활화되어 있다. 더욱이 믿기 힘들겠지만, 캄보디아에서 생활한 지 3년 가까이 된 씨엠립 식당의 북한여성들 중엔 맘만 먹으면 툭툭이(삼륜오토바이택시)를 타고 20분이면 가 볼 수 있는 지척의 앙코르와트도 보지 못한 이가 많다는 사실이다. 얼마나 폐쇄적으로 사는 지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한 달에 한 번 있는 휴일에도 네다섯명 이상이 시내에서도 항상 무리지어 다니며, 그나마 재래시장에서 물건을 고르는 모습이 간혹 눈에 띌 뿐, 현지 카페나 도심가에서 식사를 하는 모습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따라서 길가에서 우연히 만났을 지라도 이들 여성들과 차를 마시거나 솔직한 대화를 나누기란 상상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자본주의 국가 손님들이 들고 다니는 최신 스마트폰도 이미 익숙해져버린 그녀들이지만, 스마트폰 기능을 제대로 알거나 갖고 있는 북한여성들은 없다. 철저히 외부세계와 단절된 생활을 하는 그녀들에겐 별 소용없는 고가의 무용지물 일뿐이다. 같이 온 일행 중 누군가 함께 찍은 사진을 보내주겠다며 이메일 주소를 물으니, 그런 건 없다는 답이 바로 나왔다. 얼굴이 비슷하고 말만 통할 뿐 오늘날의 남북한간 경제수준의 현격한 차이가 결국 체제와 이념의 벽을 더욱 견고하게 만들었을 뿐 더러 정보화시대 동시대적 동질감마저 없애버리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한다.


믿기 어렵겠지만, 이 나라에서도 월 사용료 10달러 정도만 내면 유선케이블로 쉽게 볼 수 있는 현지 방송이나 뉴스, 심지어 스포츠중계 방송을 그녀들은 볼 수가 없다. 이에 대한 엄격한 통제가 따른다. 그나마, 이들에게도 세상과 소통하는 유일한 수단이 있는데, 모든 북한식당마다 옥상에 설치된 커다란 위성안테나가 바로 그것이다. 위성안테나를 통해 오직 북한방송만을 시청이 가능하다. 아마도 자본주의사회에서 살다 보면 자칫 흐려질 수 있는 당에 대한 충성심과 사상 재무장을 위함으로 추정된다. 워낙 폐쇄적인 집단공동생활을 하다 보니, 그들이 접촉하는 현지사람들이라고 해봐야 식당에서 허드렛일을 돕는 현지인 직원들뿐이다. 이러한 통제방식으로 인해 외국에서 살면서도 그 나라의 실정이나 소식을 거의 모른다. 북한이 그리도 의지하는 중국이 개방화노선을 선택, 공산주의 이념을 거의 포기한 상황에서 북한이 허물어지기 직전의 자신들의 체제유지를 위해 얼마나 고심하고 불안해하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이다.


하지만, 사상적으로 무장이 된 북한 여성들이 입으로는 그리도 비판하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조금씩 젖어들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이들 북한 식당에는 하나같이 별도로 마련된 룸이 있는데, 자주 오는 단골손님들을 배려하기 위한 공간으로 일종의 자본주의식 마케팅전략이 적당히 가미된 공간이다. 룸을 찾는 대부분의 손님들은 주로 팁을 많이 주는 단골 VIP고객들로, 미리 예약을 하면 정해진 영업시간과 상관없이 심지어는 새벽2-3시까지도 비밀 영업을 한다. 일단 룸으로 안내되면 두 명의 여성이 들어오는데, 한 여성은 통기타나 바이올린 같은 현악기를 연주하고 다른 여성은 손님들에게 술을 따르고 농담도 섞어가며 말동무를 해준다.


하지만 북한사람들이 자본주의 속성을 이해하거나 완전히 동요하기 시작했다고 속단하기는 이르다. 출신성분은 물론이고 당에 대한 충성심과 철저한 사상검증을 받은 소위 엘리트 여성들이기 때문이다. 이들 북한 여성들은 과거 사회주의적 사고방식 탓인지, 개업초창기인 7-8년전 만해도 기본 서비스교육도 안되어 불친절할뿐더러 정치적으로 민감한 화제에 대해서는 일체 입을 열지 않거나, 불쾌한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곤 했었다. 하지만, 요즘은 가끔 남한손님들의 체제나 경제 사정 등을 소재로 슬쩍 떠보는 식의 다소 민감할 수도 있는 농담에도 전혀 당황치 않는다. 오히려 매우 능수능란한 말솜씨로 맞받아친다. 괜한 농담을 걸어 오히려 본전도 못찾고 겸연쩍게 웃고 마는 남한 손님들이 훨씬 더 많다.


자본주의 국가에서 온 부유한 사람들을 수시로 접하고, 비록 가난하지만 개인의 삶이 자유로운 캄보디아라는 나라에 살다보면, 손님들의 두툼한 돈지갑도 곁눈질하며 자연스레 돈의 위력도 실감할 터이고, 어쩌면 ‘자유’라는 단어로 대변되는 자본주의 체제를 동경하거나 호감을 가질 만도 싶은데 그녀들의 말과 행동에선 전혀 그런 모습이나 느낌을 찾아 볼 수 없다. 오히려 분위기가 무르익고 자주 들려 친숙해지면 북한의 주체사상과 공산체제에 대한 장점을 은연중에 과시하려는 표현도 서슴치 않아 놀랄 때가 더 많다.


하지만 지난해 이 식당에서 전혀 예상치 못했던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바로 이 식당에서 일하던 북한여성이 태국을 거쳐 남한으로 탈출한 것이다. 이러한 소문은 교민사회에 삽시간에 퍼졌고 결국 진실로 밝혀졌다. 필자 역시 몇 차례 이 식당에서 담소를 나눈 적이 있는 쾌활한 성격에 다른 북한접대여성들과 달리 남한손님들 앞에서도 이념적 발언을 서슴치 않아 기억에 남았던 여성이어서 더욱 충격이었다. 북한이라 불리는 철옹성같은 견고하고 거대한 벽이 금이 가며 조금씩 허물어져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건 내막을 짐짓 모르는 척, 다른 접대여성에게 그 여성의 안부를 물으니 이내 당황한 기색으로 자신은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그 여성이 누군지 전혀 모른다는 궁색한 대답만 한 채 황급히 자리를 떴다.


천안함 격침사건 발생 이래 최근 몇 년째 경색된 남북한 관계를 반영하듯 프놈펜에 소재한 이 북한 식당은 최근 들어 남한손님은 줄어든 대신, 중국인 관광객들이 상대적으로 늘었다. 같은 공산국가인 중국본토에서 온 관광객들의 눈에도 북한이라는 나라는 그 폐쇄성으로 말미암아 호기심의 대상인 듯 싶다.


오늘도 북한식당의 무대 조명은 환하게 켜져 있다. 중국손님들이 대부분이고 한국어도 알아들을 리 만무인데도, 고정 레파터리인 듯 무대에 선 여성이 한국말로 “반갑습니다~ 형제 여러분~”이라며 마이크를 잡고 목청을 높인다. 정겹고 아름답게 들려야 할 노래 소리가 이미 빛바랜 공산주의를 찬양하는 공허한 메아리로 바뀌어 귓가에 자꾸만 맴돌았다.


문득 얼마 전 남한으로 탈출한 그 식당 북한여성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녀가 그토록 대놓고 힐난하던 자본주의 국가 남한의 모습이 과연 그녀에게 어떻게 비춰지고 있을까? 바람처럼 사라진 그녀의 삶이 궁금해진다.









▲북한 식당에서 판매되고 있는 한 북한 인민작가의 작품/사진=박정연 재 캄보디아 한인회 사무국장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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