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산맥 번역자 “전쟁영웅 오빠와 화해하고 싶다”






▲ 변정원 씨가 오빠 故변규영 육군중령의 초상화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김봉섭기자
지난 24일 6.25 전쟁 60주년을 맞아 미국과 프랑스 참전용사 및 가족 약 190명이 방한했다. 해외참전용사만을 초청하는 자리에 검은머리의 한국인 여성 한 명이 눈에 띄었다. 무슨 사연일까.


그녀는 다름이 아닌 조정래 씨의 대하소설 ‘태백산맥’을 프랑스어로 번역하고 프랑스어진흥협회(APFA)가 수여하는 ‘레모도르(Les Mots d’Or:황금언어) 2008’ 상을 수상한 변정원 씨였다. 변 씨는 ‘아리랑’도 변역한 바 있다. 


현재 프랑스에 거주하고 있는 변 씨는 한국보훈처에서 해외참전용사 방한 초청을 받은 프랑스 참전협회의 추천을 받아 방한하게 됐다. 그는 평소 참전협회를 돕는 활동에 참여해 왔다. 특히 그의 오빠 故변규영 육군중령은 6.25 전쟁에서 금성을지무공훈장을 받은 전쟁영웅이다. 전쟁기념관에 그의 초상화도 걸려있다.


故변규영 육군 중령의 활약상을 짚어보자. 변규영 육군 중령은 6.25전쟁 당시 육군 제6사단 19연대 1대대 1중대 3소대에서 소대장으로 근무했다.


1950년 9월 4일 제6사단은 경상북도 신녕 북방에서 북한군의 남침을 저지하던 상황. 적 전차를 격파하고자 특공대를 편성한 19연대는 당시 제3소대장 이였던 변규영(당시 소위)을 특공대장으로 인민군의 전차 8대를 파괴하는 임무를 맡겼다.


변 소위는 제1중대에서 5명의 병사를 특공대로 선발하여 3.5인치 로켓포 1문과 아울러 각자에게 수류탄 2발, 폭약 2발, 소총 1정으로 무장시키고 죽을 각오로 잠복에 나섰다.


화수동 깊숙이 은폐하고 있던 적의 전차 8대가 행동을 개시하자, 변 소위는 15m 앞에서 접근하는 적 전차들에 로켓포를 발사해 선두에 있는 전차를 폭파시켰으며 후미에 있는 전차 2대를 파괴하고 3번째 전차는 직접 올라가 뚜껑을 열고 수류탄을 던져 폭파시키는 한편 인민군 소위 1명을 포함해 5명을 생포했다.


이런 전공으로 변규영 소위는 1계급 특진과 50만 환의 상금, 그리고 금성을지무공훈장을 수여받았다.


용감하고 대범한 작전으로 군의 사기를 올려 작전임무를 완수한 변규영 육군중령은 무공훈장을 받고 전쟁영웅으로 불리고 있지만 변 씨의 기억 속에는 전쟁악몽 속에서 살고 있는 상이군인(傷痍軍人)이었을 뿐이다. (故변규영 씨는 전쟁 중 인민군에 의해 오른쪽 다리를 다쳤다.)  


1950년도에 출생 해 전쟁의 많은 것을 기억하진 못 하지만 철이 들면서 변 씨가 인식한 오빠는 늘 전쟁의 악몽으로 식은땀에 흠뻑 젖어 비명을 지르고 있는 모습이다. 그는 당시의 오빠는 전쟁 후유증으로 인한 정신장애를 안고 있었다고  말했다.


당시 어린 변 씨는 “‘우리 오빠 왜 저래, 이상해’라며 눈을 흘기기 일쑤였다”며 “전쟁에 대한 이야기는 알고 싶지도 않고 듣고 싶지도 않았다. 가슴이 아파서 오빠도 보기 싫었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변 씨는 한국을 찾은 이유에 대해 “오빠와 화해하고 싶었다”고 솔직한 심정을 드러냈다.


그는 프랑스에서 30여년을 살았지만 프랑스에 와서야 전쟁에 대해, 오빠에 대해 알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오빠를 이해하기 위해 책을 번역하기 시작했다는 것.


그가 번역한 ‘태백산맥’은 오빠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줬다고 한다. 오빠에 대한 미안한 마음과 고마움 마음으로 한국을 찾은 변 씨는 전쟁기념관에 걸려있는 오빠의 초상화를 본 소감을 물어보자 “오빠가 너무 자랑스럽고 뿌듯하다”며 함박웃음을 지어보였다.


전쟁이 가족에게 남긴 상처가 60년이 지나서야 아문 모양이다. 동생은 오빠를 그리며 환하게 웃다가도 손수건으로 연신 눈물을 훔쳤다.  


마지막으로 변 씨는 전쟁이 없는 한반도, 상생할 수 있는 한반도가 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변 씨가 남북간 상생을 말한 그 때 북한은 남북관계 전면차단을 선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