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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서 왔습니다

운명을 봐주는 역술가로 한국에서 제2의 삶 시작

[탈북자 정착스토리 ⑯] 北에 두고 온 딸에 부끄럽지 않은 엄마 되자고 결심
하주원 기자  |  2017-11-13 10:21

국내 정착 탈북민 3만 명 시대. 이들은 한국에 제대로 정착하기 위해 각자의 분야에서 고군분투를 하고 있다. ‘먼저 온 통일’이라는 사명감에 따른 이들의 노력은 향후 통일 한반도에서 큰 자산이 될 것이라는 기대가 많다.

다만 이 과정에서 남북 문화 이질화로 인해 여러 갈등과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에 데일리NK와 국민통일방송은 취업, 창업, 학교진학 과정에서의 성공 사례와 실패한 경험이 있더라도 교훈을 줄 수 있는 사례를 발굴, 한국 및 해외 독자들에게 탈북민의 삶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자 한다.

“한국에 참 잘왔다.”

신민아(평양 출신, 47)씨는 2014년 한국에 입국해 어느덧 한국 정착 3년을 넘어가고 있다. 신 씨는 현재 사람들의 운명을 풀이하고 상담도 해주는 역술가로 활약 중이다. 역술학은 각 사람마다 자신의 운명을 어떻게 가지고 태어났는지를 태어난 달, 시, 날짜 등을 통해 분석하고 상담하면서 운명을 풀어가는 일이라면서 자신의 적성에 꼭 맞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녀의 탈북 과정 역시 남들처럼 순탄치만은 않았다. 군관이었던 남편과 연애결혼한 신 씨는 아이를 낳은 뒤 기업소 경리일을 그만두게 됐다. 이후 나진선봉 특구가 개방되면서 시장에서 그릇을 팔기도 했다. 그러다 2012년 중국으로 탈북해 1년 반 정도 생활하다가 혼자 한국으로 오게 됐다고 한다. 남은 가족들은 다 평양에서 살고 있다. 언니가 딸과 함께 중국에 간지 13년 정도 됐는데 보안소에서 자꾸만 언니의 행방을 물어오고, 감시 당하는 게 견딜 수 없어 중국으로 가게 됐다. 
 
중국으로 함께 간 친구의 친척 도움으로 한 달 간 식당일을 했다. 그런데 원래 주기로 했던 월급은 3000위안이었는데, 그 절반 정도인 1500위안만 받게 됐다. 사장에게 항의를 했지만, 그냥 주는 대로 받으라며 공안에 신고하겠다고 오히려 신 씨를 협박했다. 그 일로 친구와 싸우게 됐고 돈벌이가 안 되는 상황에서 돈이 필요했던 친구는 신 씨를 인신매매로 팔아넘겼다. 직업을 연결해준다면서 버스를 타고 갔는데 그게 팔려가는 것인 줄도 몰랐다고 한다. 그렇게 한족남자에게 팔려서 생활하게 됐는데, 다행히 착한 사람을 만나게 됐다. 하지만 무국적자인 남편은 자신을 지킬 수 없는 상태라 한국으로 갈 수 밖에 없었다.
 
일 한만큼 돈 벌 수 있다는 기쁨 느껴
 
한국에 와서 가장 기뻤던 일 중 하나는 집을 배정받았을 때였다. 하나원 교육을 받을 때 총무를 했었는데, 총무에게는 우선으로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져 서울에 배정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총무와 부총무를 뽑을 때도 민주주의 방식으로 뽑았다. 잠을 못 잘 정도로 기뻤다는 그는 하루 빨리 일하고 싶었다고 했다.
 
하나센터에서 보름동안 교육을 받고 바로 들어간 직장은 경기도 광주에서 닭고기를 납품하는 회사였다. 약 한 달간 종일 서서 일했는데 돈버는 게 쉽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게 한 달 가까이 종일 서서 닭고기를 20~25g 씩 용량에 맞춰 써는 일을 해야 했다. 닭고기가 상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추운 냉방실에서 차가운 물을 뿌려가면서 일을 하는데, 장갑이나 옷을 잘 갖춰 입어도 춥고 힘들었다. 손발이 시릴 뿐 아니라 하루종일 칼질을 하다보니 팔목, 발목 성한 데가 없었다. 탈북 이후 한국에 오면서 몸이 많이 상했던 탓이었다. 결국 첫 직장을 한 달만에 그만둬야 했다.
 
신 씨는 겨우 한 달 뿐이었지만 일한 대가를 그대로 받을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고 보람차다고 말했다. 처음으로 번 돈을 북한으로 보낸 이야기가 나오자 목소리가 절로 높아졌다. “정말 내가 노력만하면, 열심히만 하면 얼마든지 잘 살 수 있겠구나 하는 심신이 생기고 좋았다. 힘들었지만 만약 혼자산다면 내가 벌어 1년 식량을 해결할 수 있겠다”라면서 당시 기억을 떠올렸다. 돈을 받는 것도 모자라 북한에서는 없던 통장도 만들었다고 했다. 통장에 돈을 마음대로 넣고 뺄 수 있는 것 자체도 신기했다면서, 이제는 돈을 많이 벌어 북에 있는 가족들을 다 데려올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하루하루 일하면서 집안에 가구며 세탁기, TV 등을 하나씩 채워가는 기쁨도 컸다.  

적성에 맞는 일을 찾을 때까지 공부할 수 있는 한국
 
그러나 몸이 허약했던 신 씨가 육체적인 노동을 계속 하기는 어려웠다. 결국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 학원을 다녔다. 어렵게 느껴졌던 컴퓨터 학원, 취미에 맞았던 요리학원, 나이 들어도 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해서 시작한 요양보호사 학원 등 다양한 일을 배워나갔다. 그 중에서 적성에 맞는 일을 찾았다. 바로 역술학 상담가였다. “손님들과 상담을 할 때 너무 재밌었다. 사주로 운명을 봐줄 때나 배우자, 취직, 재물 등 이야기를 할 때 즐거움을 느끼며 내 적성에 맞는 일을 찾은 느낌이었다”고 활짝 웃었다.
 
그러나 역술가라는 직업을 택한 이후에 생각지 못한 어려움에 부딪히게 됐다. 사실 처음에는 남북한 간 말이 같아서 잘 통할 줄 알았는데 일을 할수록 의사소통의 어려움을 크게 느꼈다. 같은 얘기를 여러 번 반복해서 설명해야 할 때마다 언어의 벽을 느꼈다. 일상 대화에서 외래어를 많을 사용하는 것도 어려움 중 하나였고 짜증스러운 마음도 생겼다. 그러나 경험이 쌓이다보니 그것도 극복해 낼 수 있었다. 

신 씨는 의사가 직업인 남편과 올해 결혼을 해 함께 살고 있다. 몸이 허약한 편이라 아플 때 도움을 많이 받았다. 탈북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어 남편과도 통하는 게 많다며 행복한 웃음을 지었다. 그는 마지막으로 통일이 된다면 북한에 있는 아이를 만나게 될 텐데, 그 때를 위해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자신의 탈북으로 가족들도 많은 어려움을 겪었는데 나중에 만났을 때 떳떳해지기 위해서라도 내 힘으로 집도 사고 물려줄 수 있는 재산을 가진 엄마가 되고 싶다는 것이다.

북한에 두고 온 두 딸들에게 항상 미안한 마음을 안고 살고 있다는 그는 앞으로 아이들과 함께 살아갈 날을 기약하며 어떤 어려움도 극복해 내리라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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