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 ‘국제기준’ 발언, IAEA ‘긴급사찰’까지 포함

미국과 북한의 핵검증체계 구축에 대한 입장차로 북핵문제가 답보상태에 놓인 가운데 미국이 ‘국제기준에 맞는 검증’을 강조하고 나서 미북협상의 전망에 대한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는 15일(현지시간) 뉴욕 주(駐)유엔 미국대표부에서 북핵신고 검증체계 구축을 협의하는 한미간 회동을 가진 뒤 기자회견에서 “북핵검증은 국제기준에 맞게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힐 차관보는 “북한이라고 해서 다르게 할 생각은 없다. 북한은 시간을 좀 더 필요로 하고, 우리는 기다릴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그는 검증체계 구축이 대북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의 전제조건임을 거듭 강조했다.

현재 북한은 지난달 베이징 6자 수석대표회의에서 미국으로부터 검증 이행계획서 초안을 받았지만 한 달이 지나도록 이에 대한 구체적인 답변을 내놓지 않는 등 미온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이를 두고 지난달 말까지 미국과 북한은 대화를 가져왔지만 ‘핵신고 검증체계’에 대한 합의점을 찾지 못한 채, 미 행정부의 테러지원국 해제 가능 시점을 맞이하고도 일주일 이상 답보상태에 머무르고 있다.

이런 가운데 미국이 ‘국제적 기준’에 맞는 검증을 강조하고 나선 것이다. 이는 IAEA의 사찰거부로 인한 ‘1차 북핵위기’의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미국의 의지로 해석된다. 하지만 북한이 이를 받아들일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미지수다.

실제 북한은 1993년 1월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핵안전조치협정’에 서명하고 핵시설에 대한 최초 보고서를 제출했으나, 이 보고서에서 북한은 영변 지역 내에 있는 2개의 시설을 신고하지 않았고 이에 대한 IAEA의 특별사찰 요구를 거부했다. 이어 북한은 결국 같은 해 3월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을 선언했고 이는 곧 1차 북핵위기의 원인이 됐다.

지난달 12일 종료된 북핵 6자회담에서는 북핵 검증체계 확립과 관련해 현장방문과 자료제공, 기술자 면담 등 3개 원칙에 합의했다. 또한 발표문에는 ‘필요할 때 국제원자력기구(IAEA) 자문단의 방북을 환영한다’는 입장도 담았다.

하지만 검증에 대한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합의가 되지 않아 추후 협상에 난항이 예상됐다. ‘필요할 때 IAEA 자문단의 방북을 환영한다’는 합의 사항에 대해서 IAEA의 검증 자체를 사실상 북한이 거절한 것으로 봐야 한다는 해석이 지배적이었다.

윤덕민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는 “북한이 신고한 내용을 검증하려면 플루토늄 핵프로그램 관련 시설에 모두 들어가 시료를 채취하는 등의 활동이 보장돼야한다”며 “북한이 이를 받아 들여야 검증협상이 마무리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윤 교수는 이어 “IAEA에 대한 사찰 거부에 이은 북한의 NPT탈퇴가 1차 북핵위기의 원인이 된 만큼 북한은 IAEA의 ‘핵안전협정’에 준하는 요구를 받아들여야 할 것”이라면서도 “미국 대선 등이 임박한 상황에서 북한은 서두를 생각이 별로 없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박영호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힐의 발언은)IAEA 회원국에 대한 일반적인 핵관련 시설 사찰을 북한이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미”라며 “북한이 스스로 보여주는 시설뿐 아니라 IAEA가 임의로 지정한 시설에 대한 ‘긴급사찰’ 등이 받아들여져야 한다는 것”고 말했다.

박 선임연구위원은 “북한이 요구대로 검증체계가 구축될 경우, 북한은 사전에 다 조치를 취해놓을 가능성이 있다”면서 “철저한 검증을 위해서는 ‘시료채취’ 등이 전제돼야 하는데, 이것이 바로 IAEA 등의 국제적 기준에 부합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