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에 ‘조선민족’과 ‘한국민족’ 분화 우려

남한 주민들의 통일에 대한 태도를 잘 보여주는 것은 통일비용 부담 의향이다. 2009년 3월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가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통일비용 부담 의향이 있다고 응답한 사람은 절반 이하인 49.4%에 불과하다. 바꿔 말해 남한 주민 절반 이상은 통일은 ‘우리의 소원’이라고 본능적으로 반복하지만 통일 과정에서 한 푼도 북한에 줄 수 없다고 응답하고 있다. 


같은 여론조사에서 통일비용 부담 의향이 있다는 응답자에게만 재정부담을 할 수 있는 액수를 물었다. 결과는 흥미롭다. 국민 10명 중 7명 정도(엄밀하게 말하면 69.8%)는 통일비용 부담 용의 금액으로 매년 20만원 미만을 생각하고 있다.


바꾸어 말해서 매월 1만7천 원이다. 물론 통일 비용에 대한 추정이 다양하지만 제일 낙관적인 추정을 표준으로 볼 경우에도 남한 국민이 부담할 금액은 이보다 10배 정도 높을 것 같다. 이러한 국민 의식을 고려하면 남과 북은 이제 같은 민족으로 보기 어려워지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앤더슨 교수를 비롯한 많은 학자들이 주장하는 민족은 ‘상상의 공동체’라는 이론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것이다. 공유한 경험이 없어지는 조건 하에 민족의식이 약화되는 것은 너무 당연하다. 그러나 남한 정치 생활의 흥미로운 역설은 북한에 대한 무관심이나 통일에 대한 우려를 솔직하게 표시할 수 있는 정치 세력이 없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현대 남한의 이념적 구조 때문이다. 외국인인 필자가 봐도 쉽게 드러나듯이 한국에서 서로 대립하는 사상 세력이 공유한 특징은 민족주의이다. 한국만큼 민족주의 영향이 깊은 나라들은 그리 많지 않다. 더군다나 통일에 대한 이념은 한국 민족주의에서 분리될 수 없는 핵심부분이다.


한국에서는 어떤 정치 단체라도 통일 원칙에 대해서는 비판하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에 대한 공포와 의심이 국민들의 마음속에서 널리 퍼져 있음에도 형식적으로 표시되지 못하고 정치 담론으로 포함되지 못한다. 냉소적으로 말하면 필자처럼 통일을 원하는 사람들은 이것을 참 좋은 소식으로 여길 수밖에 없다.


통일에 대한 우려는 남한 국민이 받은 민족주의 교육과 충돌한다. 그러나 최근에 이러한 정신적인 갈등을 극복하는 방법이 발견되었다. ‘통일을 원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보다 ‘점진적인 통일을 원한다’고 주장하는 방법이다.
 
점진적인 통일을 원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자신을 ‘반통일’ 세력으로 생각하지 않고 점진적인 (김정일 정권 붕괴에 이은) 통일을 추진하는 것은 경제적이며 합리주의적인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이 주장에 근거가 없지는 않지만 문제는 남북 현황을 보면 점진적인 통일의 가능성이 거의 없어 보인다는 점이다.


반대로, 점진 통일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북한 독재 체제가 남한의 경제 풍요를 위협하는 것으로 보기 때문에 북한 체제가 무너지지 않도록 대북 정책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실상 그들은 김정일 독재를 강화하는 정책을 펴자고 하는 사람들이다.


이러한 의견의 확산은 남한 국민들 가운데서 북한을 사실상 다른 민족으로 보는 경향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자국 이익을 최고 목적으로 보는 국제 관계에서 정치, 경제적인 이익을 얻기 위해 이웃 나라에서 민중을 탄압하고 학살하는 독재를 도와주는 것은 보통 일이다.


역설적으로 북한 체제를 무너지지 않도록 정책을 계획해야 한다고 하는 사람들 가운데서 쓸모 있는 독재를 도와주는 정책을 실시하는 미국을 이 이유로 시끄럽게 비판하는 ‘진보파’에 속한 지식인들이 많다. 그러나 이러한 대북정책은 북한이 같은 민족이 아니라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하는 경우에만 정당화 될 수 있다.


다행히 현재 북한이 다른 민족이라고 할 수 없는 조건 하에 남한 국민들의 점진적인 의식 변화는 정치에 대해 영향을 미칠 요인이 별로 없다. 그러나 ‘2개 민족론’이 공개적으로 주장할 수 없지만 이러한 의식은 남북한 미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설적인 시나리오가 없지 않다.


한국 여론이 통일을 위한 희생이 너무 크다고 판단한다면 통일을 이룰 수 있는 기회를 이용하지 않을 수도 있다. 예를 들면 북한에서 체제 붕괴 이후 혼란과 무정부 상태가 발생한다면 이북 지역에서 치안 회복을 위해 국군을 보내야 할 경우 남한 주민 대부분은 전사자들이 생길 가능성이 높으면 이 파병을 많이 반대할 것이다.


물론 남한의 결연하지 못하고 소극적인 태도 때문에 한반도 북방부에서 생긴 혼란을 자신에 대한 직접적인 위협으로 여기는 중국이 개입하고 북한에 대한 정치 통제를 실시할 가능성이 꽤 높아 질 것이다. 또는, 통일이 20~30여 년 동안 이루어지지 못할 경우에 이러한 의식 변화는 정치적인 사상과 담론의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통일의 필요성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생각이나 언론이 탄생하고, 통일을 인정한다고 선언하는 세력 대부분도 구체적인 내용이 없는 정치 상징으로 여기기 시작할 것이다. 또는, 그 동안 남북 격차는 보다 더 넓어 질 것이다. 결국 김정일, 김정은 독재체제가 무너진 다음에 통일에 대한 회의가 퍼지지 못한 북한 민중이 통일을 요구할 경우에도 잘 사는 남한 국민은 이 요구를 무시할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싶다.


남과 북에 사는 사람들의 장기적인 이익을 객관적으로 보면 이러한 의식 변화를 환영할 수 없다. 단기적으로 말하면 남북통일이 천문학적인 ‘통일비용’ 및 어려운 사회 갈등을 야기할 것은 수십 년 분단이 초래할 유감스러운 사실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말하면 통일은 남북 경쟁과 대립에 의해 초래된 비생산적인 자원 낭비를 감소하고 또 하나의 전쟁의 발발할 가능성을 없애 버리는 것이다. 통일은 북한 경제 복구 및 남북이 더 튼튼한 경제를 건설하기 위한 조건을 마련할 뿐만 아니라 외부 세력이 간섭 할 기회를 줄일 것이다.


한 나라가 될 남북은 불가피한 ‘통일쇼크’를 극복한 다음에 경제, 문화 개발을 더 잘 하고 자신의 이익을 더 잘 보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한반도에서 서로 다른 ‘조선민족’과 ‘한국민족’이 형성되고 있는 과정은 순수한 한국 민족주의자들뿐만 아니라 이 땅에서 수천 년 동안 살아온 사람들의 미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걱정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