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선거 벽보에 ‘리명박 지지한다’ 낙서 파문

북한 양강도 혜산시에서 지방인민회의 대의원 후보자 선전벽보를 훼손하는 사건이 연이어 발생해 보안당국이 수사에 나선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훼손된 선전벽보에는 ‘리명박을 지지한다’는 낙서 문구가 발견돼 양강도 혜산시 국가안전보위부는 이번 사건을 ‘간첩단 사건’으로 규정했다. 혜산시 보위부와 보안서는 사건 다음날인 20일 해당 수사팀을 꾸려 관련 주모자 색출에 나섰다고 복수의 내부 소식통이 26일 전했다.



북한에서 선거 벽보가 훼손되는 사건은 종종 있어 왔다. 그러나 한국 대통령의 실명을 거론하는  문구가 외부에 공개된 적은 이번이 처음이다. 



양강도 소식통들은 “지난 19일 혜산시 송봉1동에 위치한 신발공장, 강철공장 두 곳의 담에 붙여진 지방대의원 후보자 선전벽보에 ‘리명박을 지지한다’는 글과 후보자들의 이름을 까만 마찌크(검은색 매직)로 그어놓는 사건이 일어났다”고 전했다.



이어 “이번 사건을 보안서와 보위부에서는 ‘간첩단 사건’으로 부르며 공장 인근 사람들에 대한 감시와 출장자(해당 기간에 다른 지역을 방문한 사람 또는 양강도를 방문한 다른 지역 사람)들을 대상으로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달 10일 조선중앙통신이 지방주권기관 대의원 선거를 위한 선거자 명부를 공시했다고 보도한 바와 같이 북한은 통상 선거 보름 전부터 각 기관 공장기업소와 동사무소, 보안서 등에 후보자를 소개하는 선전벽보를 붙여 놓는다.



소식통 등에 따르면 선전벽보가 훼손된 공장들은 혜산역에서 대략 4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이곳은 100~150명의 노동자들이 일하는 공장이다. 공장 앞은 혜산시와 통하는 큰 도로가 있어 낮에는 유동인원이 많기 때문에 선전효과가 크다. 선거철마다 정문 옆에 위치한 경비실 외벽에 후보자 이력을 담은 소개서와 사진 등을 붙여왔다.



하지만 공장직원들이 퇴근하고, 혜산시 장마당도 끝나는 오후 7시 이후면 유동인원은 거의 없다고 한다. 더구나 공장 근처엔 가로등도 없고 단지 정문에 전등 하나가 있을 뿐이다. 이마저도 전기가 자주 끊겨 켜지지 않거나 켜지더라도 전력이 약해 희미하게 비출 뿐이어서 야밤에는 가까운 곳도 식별이 어렵다고 한다.




이에 앞서 지난 8일에도 혜화동 차수리공장 경비실 푸른색 외벽에 붙여놓은 선전벽보의 사진과 이름에 ‘X’가 표시된 사건이 발생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곳도 밤에는 유동인원이 거의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사건 직후 양강도 도당위원회가 직접 나서 “지방주권기관 대의원 선거를 방해하기 위한 반당 반혁명 분자들의 책동이 노골화 되므로 혁명적 경각성을 더욱 높이자”는 내용의 인민반회의가 진행됐던 것으로 전해졌다.



양강도 출신 한 탈북자는 “이곳들은 예전부터 강도 사건이 많아 보안원들도 순찰을 꺼리던 곳이다”라고 말했다. 



두 사건 모두 유동인원이 낮에는 많지만 밤에는 거의 없다는 점에서 보안당국은 혜산시를 잘 아는 사람들의 소행으로 보고, 경비원과 인근 주민들, 출장자 등을 대상으로 수사망을 좁히고 있지만 아직까지 이렇다 할 단서를 찾지 못했다. 


소식통은 “이번 지방 인민회의 선거 후보자 중 한 명이 신발공장 지배인이라는 점에서 그에게 불만을 품은 직원이나 주변 인물도 의심을 받고 있다”라고 말했다. 소식통에 따르면 양강도 대의원 총 23명 중에 신발공장 지배인을 포함해 김정숙사범대학 학장 등 8명이 혜산시에서 입후보했다. 



소식통은 “8일 경에 낙서를 한 사건이 있었을 때는 개인감정을 가지고 한 짓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번 사건은 남조선 대통령의 이름이 쓰여 사람들 속에서 ‘보통일이 아니다. 큰 사건이다’, ‘또 사람들을 들볶아 놓겠다’면서 걱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선거전부터 장사도 못 나가게 행사준비로 내몰더니 이번에는 주모자를 잡는다고 주민들을 들볶고 있다”며 “연이은 낙서사건이 일어나자 주민들은 ‘갈 데까지 갔다’며 웅성거린다”고 전했다. 



이번 사건을 두고 주민들은 ‘하루하루 장사로 먹고 살아야 하는데 선거를 준비한다면서 갖은 동원령이 내려지고, 선거장 꾸미기를 위해 돈까지 걷어가니까 홧김에 저지른 짓 아니냐’는 반응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북한은 26일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지난 24일 실시한 지방인민회의 대의원선거에서 전체 선거자의 99.97%가 선거에 참여해 해당 선거구들에 등록된 후보자들에게 100% 찬성·투표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