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주민 “노동신문은 舊聞…입소문이 훨씬 빨라”

4월 8일은 북한의 체신절이다. 체신절은 남한의 체신의 날과 같은 의미다.

북한에는 중앙에 정무원(내각) 산하 체신성과 각도 체신관리국, 시군별로 체신소라는 일원화된 우정체계가 있다. 체신사업에는 편지(외국편지 포함), 전보, 소포, 전화, 방송 및 TV 중계 관리, 신문 잡지 배송 등이 속한다. 이외 각종 우표발행사업과 형식적인 보험사업도 일부 담당하고 있다.

1990년대 이후 국가 체신체계 완전히 무너져

북한의 체신소는 각 지역 리 단위까지 통신원들을 두고 편지와 소포, 전보문을 접수하고 배송한다. 그러나 지난 1995년부터 이른바 ‘고난의 행군’을 겪으면서 사실상 편지 및 전보, 소포 전달체계는 완전히 파괴되어 지금은 형식적으로 남아있다.

북한에서 편지와 전보, 소포의 접수, 배송체계가 파괴된 것은 정확성과 신속성, 신뢰성이 파괴된 결과이다.

북한경제와 주민들의 생활이 비교적 안정적이었다고 하는 1980년대까지만 해도 평양에서 지방의 농촌마을까지 편지가 접수되려면 빠르면 15일, 보통은 한 두달 정도씩 걸려야 했다.

전보의 경우에도 지방까지 타전된 전보문이 해당 농촌 통신원들을 통해 전달되려면 3~4일 걸리는 경우가 많았다. 1980년대 후반 이런 결함을 극복하고 정보통신의 신속성을 보장하기 위해 농촌 통신원들에게 일본산 자전거를 공급하기도 했다.

그러나 ‘고난의 행군’을 겪으며 열차의 지연, 잦은 정전으로 편지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어지고 전보 같은 경우는 전기부족으로 사실상 유명무실 했졌다. 소포의 경우도 잦은 정전과 열차관리의 열악한 환경, 열차 도둑들의 극성으로 대부분 분실되다 보니 주민들이 당연히 이용하지 않게 됐다.

‘국가비밀 유출’ 핑계로 유선전화도 통제

북한에서 편지와 전보 체계가 파괴된 것은 나름대로 북한의 정보통신의 발전과도 연관이 있다.

북한은 별도의 전력공급을 받는 전화체계를 사용한다. 지방별로 정전이 발생한다 하더라도 전화망은 살아있다. 또한 1993년 이후 전국에 구축한 ‘빛 섬유 케이블(광케이블)’망을 통한 전화가 가능하게 되면서 편지와 전보통신이 사라졌다. 북한 주민들은 이것을 ‘빛 전화’라고 부른다.

북한은 1998년 중국의 기계설비들 들여오고 기술자들을 초청하여 다중통신기술(케이블 한 선으로 동시 수천 명 이상 통화할 수 있는 기술)을 실현하면서 각 도, 시, 군들에 있던 전화 교환수들을 모두 해고시키고 자동통신체계를 구축했다.

2003년부터는 간부 집들을 중심으로 가정전화를 허용하고 2005년부터는 한 달에 전화 기본료 2,000원(노동자 한 달 월급은 1.500원임)을 내는 조건에서 가정집 전화를 허용했다.

그러나 지난 2007년 8월부터 국가의 중대 비밀들이 노출된다는 이유로 전화사용에 대한 통제를 강화해 같은 도(道) 내에서만 통화가 가능하고 타 지방으로 통화할 수 없는 정책을 실시하고 있다.

노동신문은 ‘신문(新聞)’ 아니라 ‘구문(舊聞)’

TV나 방송의 경우도 체신성을 통해 관리된다. 북한은 아직까지 케이블 TV 방송을 실현하지 못하고 있다. 지방마다 초단파 중계소를 두고 전파중계방식으로 TV 방송을 관리한다.

지금 현재 북한은 태국과 위성통신협약을 체결하고 태국위성을 이용한 TV 송신체계를 갖추고 있으며 지방에서는 위성방송을 중계할 수 있는 미국산 중계 장비들을 가지고 있다.

방송의 경우 라디오 방송은 들을 수가 없고 주민들은 유선화 된 ‘조선중앙방송’만 청취할 수 있는데 방송중계기들이 낡고 방송선들이 파괴되어 농촌지역들에서는 방송청취가 어려운 상태이다.

북한에서 ‘신문(新聞)은 구문(舊聞)’이라는 말이 있다. 북한은 노동당 기관지인 ‘노동신문’ 전달체계에 대해 특별히 신경을 쓰는데 ‘노동신문’의 경우 평양에서 각 도까지 기차로 옮겨져 다시 시, 군까지 옮겨지려면 정상적이라야 4~5일, 늦으면 1주일 이상이 걸린다. 그래서 신문이 아니라 구문이라고 비아냥을 받는다.

또 노동신문을 직접 받아서 읽는 것보다, 사람들 입소문으로 듣는 것이 더 빠르기 때문에 ‘구문(口聞)’이라는 말도 생겨났다. 이러한 배송체계 때문에 ‘신년공동사설’ 같은 중요 내용은 아예 헬기를 이용해 각 도들에 배송한다는 소문도 있다.

수용소로 끌려간 체신소 일꾼들

지난 1992년 영국에서 빛 섬유 케이블을 생산하는 공장 설비를 들여와 국가재정을 낭비했다는 이유로 체신상을 비롯한 중앙부처 전원이 철직(해직), 체신상과 부상은 가족들까지 정치범 수용소로 끌려간 사건이 있었다.

당시 북한은 국가 면적이 좁은 형편에서 케이블 공장까지 세울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공장 설비를 사 들여 수출에 성공하면 많은 외화를 획득할 수 있다는 제의서를 김정일에게 올려 영국에서 낡아빠진 공장을 들여온 것이다.

그러나 당시 북한산 케이블이 외국산 케이블 보다 수준이 떨어져 수출에 실패하고, 공장 설비를 들여오는 과정에 체신상을 비롯한 간부들이 막대한 국가 외화를 개인이 착복한 혐의로 처벌을 받게된 것이다.

지난 2001년에는 양강도 삼지연군 이명수 노동자구에서 위성중계기를 이용해 중국TV를 몰래 보던 TV중계소 책임자와 두 명의 직원들이 실수로 자신들이 보던 중국TV를 그대로 주민지구에 중계해 전원 수용소에 끌려가고 가족들은 농장원으로 쫓겨나는 참극을 겪었다.

북한 체신성은 보위부 직원들이 상주하고 있으며 그들을 통해 편지, 소포 또는 전화도청 등 주민들을 감시한다.

또 각 도 보위부 27국(전파감시국)과 새로 나온 12국(휴대전화 전파 감시국)들에 전문인력들을 파견하여 전파관리 및 감시체계에 상호 협조한다.

체신절을 맞아 노동신문과 조선중앙통신은 “장군님의 교시 아래 날로 발전하는 북한의 체신 설비”에 대해 자화자찬을 쏟아 낼 것이다.

하지만 이제 북한의 일반 주민들은 그 자화자찬을 보고 들을 수도 없다. 종이도, 전기도, 설비도, 운송수단도 없기 때문이다. 체신절을 맞는 ‘장군님의 심정’은 그래서 더욱 우울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