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패국가’(rogue state) 北에 ‘인간이성’ 기대해선 안돼

[염돈재의 독일통일 이야기] 北실체 정확히 인식해야 올바른 대북정책 짠다

노태우 정부 출범 이후 우리 정부는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해왔다. 그러나 북한의 3대 세습체제 출범, 핵 개발 및 계속적 군사도발로 한반도의 긴장은 더욱 고조되고 있고 통일의 길은 더욱 멀어져 가고 있다. 따라서 그간의 대북·통일 정책과 통일환경 변화 내용을 재점검하고 통일실현을 위한 새로운 정책방향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

우리 정부의 공식적 통일방안은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이다. 이 방안은 1989년 9월 노태우 정부가 발표한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을 1994년 8월 김영삼 정부가 3단계 통일방안으로 보완·발전시킨 것으로 김대중·노무현·이명박 정부도 이를 계승했기 때문에 현재까지 우리 정부의 공식적 통일방안으로 되어 있다.

치명적 결함을 가진 ‘민족공동체 통일방안’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은 자주·평화·민주의 3원칙하에 ①화해·협력 단계 ②남북연합 단계, ③통일국가 완성 단계 등 3단계를 거쳐 통일을 이룬다는 것이다. 이 방안은 오랜 기간의 분단과 남북 간의 적대관계를 고려, 점진적 방법으로 평화통일을 모색한다는 점에서 합리적인 통일방안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통일방안은 세 가지 중요한 결함을 갖고 있다. 첫째, 이 통일방안에는 통일한국이 지향할 가치, 즉 통일한국의 정치·경제·사회 체제가 무엇인지 명확히 밝히지 않고 있다. 둘째, 북한주민의 동의에 기초하지 않은 김일성 세습정권, 핵을 개발하고 군사도발을 일삼는 북한 정권도 화해·협력의 대상인지 여부가 불확실하다. 셋째, 정치·경제 체제가 달라도 국가연합이 가능하다는 것인지도 불분명하다. 따라서 정부정책과 국민들의 통일의식에 혼선을 초래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우리 정부는 1970년 박정희 대통령의 ‘8·15 평화통일 구상’(8·15선언) 발표 이후 1972년부터 2012년까지 40년 동안 북한과 총 606회의 회담을 갖고 224건의 문서에 합의하는 등 남북관계 개선과 통일여건 조성에 노력해 왔으며, 특히 1995년 이후 2013년까지 32조 2,379억 원 상당의 인도적 지원을 했으나 북한의 핵 개발과 군사도발로 긴장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노태우 정부는 남북관계의 개선과 제도화를 위해 ‘남북기본합의서’를 체결하고 ‘한반도 비핵화 선언’에 합의했으나 북한의 합의 불이행으로 통일에는 도움이 되지 못했다. 김영삼 정부도 미전향 장기수 북송 및 15만 톤의 쌀 지원으로 남북관계 개선에 노력했으나 북한의 핵 개발로 성과 없이 끝났고, 쌀 수송선 삼선비너스호 억류로 북한에 사과까지 해야 하는 수모를 겪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하고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에 합의했으나 김정일 답방과 금강산 면회소 설치 등 우리 측 중요 요구사항은 대부분 실현되지 못한 채 5억 달러의 정상회담 뒷돈 거래와 대규모 경제지원으로 북한의 위기탈출과 핵 개발에 도움만 준 결과가 되었다. 이명박 정부도 ‘비핵·개방·3000’ 계획을 발표했으나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개방을 할 경우 경제지원을 하겠다는, 북한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내용을 담고 있는 데다 금강산 관광객 피살,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등으로 남북관계가 더욱 경색된 가운데 끝나고 말았다.

북한의 군사도발과 제3차 핵실험으로 남북관계가 최고로 긴장된 가운데 출범한 박근혜 정부는 튼튼한 안보를 바탕으로 남북 간의 신뢰를 형성하여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정착 및 통일기반 구축을 이루겠다는 이른바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발표한 후 원칙에 입각한 대북정책을 추진하여 국민적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북한의 경직된 태도로 남북관계가 답보상태에 머물고 국민들의 대북관계 개선 요구가 높아지자 2014년 3월 ‘드레스덴 선언’을 발표, 남북관계 개선이나 북한의 호응이 없어도 북한주민을 위한 인도적 지원이 가능토록 길을 열어 놓았다.

출범 이후 굳건하게 원칙을 지켜오던 박근혜 정부도 2014년 후반 이후 국민들의 남북관계 개선 열망이 높아지자 흔들리기 시작했다. ‘5·24조치’ 해제, 대북전단 살포, 금강산 관광 재개, 남북 정상회담 문제 등에 대한 정부 발표내용들이 일관성이 없어 어느 것이 공식입장인지 분간하기 어렵다. 더욱이 ‘통일헌장’ 제정, 분단 70주년 기념행사를 위한 ‘남북공동기념위원회’ 구성, 서울-신의주를 잇는 한반도 종단철도 시범 운행 등 이벤트성 계획들을 남발, 국민들을 더욱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우리 사회의 대북·통일 의식 일관성 없어

독일통일 이후 우리 사회에는 통일기피 심리가 널리 퍼져 있었으나 박근혜 대통령의 ‘통일대박론’을 계기로 통일에 대한 인식은 많이 바뀌어 가고 있다. 그러나 우리 국민들의 대북관이나 통일의식은 일관성이 없어 종잡기 어렵다. 햇볕정책의 실패에도 불구, 아직도 대화와 교류·협력을 통해 한반도의 평화정착과 통일의 길이 열리리라고 생각하는 이상주의자들이 무척 많다. 그리고 우리 정부가 북핵문제에 얽매이지 말고 ‘5·24조치’ 해제 등 과감한 양보를 통해 남북관계 개선과 북한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는 주장들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모두들 북한의 변화보다는 우리 정부를 변화시키려는데 열중하고 있다.

우리 국민들의 대북·통일관도 일관성이 없는 것 같다.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소가 발표한 ‘2013년 통일의식 조사’에 의하면 통일은 남한 체제하에 이루어져야 한다는 응답이 43.6%이지만, 남북한 체제를 절충해야 한다는 응답도 35%에 달한다. 북한정권에 대한 인식도 마찬가지이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국민이 84.6%, 북한 핵보유에 위협을 느낀다는 국민이 78.4%, 북한의 무력도발 가능성이 있다는 국민이 66%, 북한과의 대화와 타협이 가능하지 않다는 국민이 64%이지만, 북한을 경계 또는 적대 대상이라는 응답은 37.8%에 불과하고, 협력·지원 대상이라는 응답이 56%에 달한다. 우리 국민들이 모두 박애주의자가 된 것인가?

최근 수년간의 급격한 대내외 환경변화는 새로운 대북·통일 정책의 모색이 필요하다는 점을 시사한다. 북한의 경우, 공산국가에서는 유례가 없는 3대 세습체제가 출범했고 2013년 2월 제3차 핵실험으로 사실상의 핵보유국이 됐다. 따라서 북한의 개혁·개방 가능성은 더욱 멀어졌고, 앞으로 김정은 체제가 안정되면 현재와 같은 분단 상태가 최소한 50년 이상 더 지속될 가능성이 많다.

현실주의적 입장에서 대북·통일 정책 추진해야

동북아지역 정세도 대폭적인 변화가 진행되고 있다. 미·중간의 패권경쟁이 본격화 되어 우리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어려운 선택의 딜레마에 빠져들고 있다. 러시아와 일본은 북한카드를 우리와의 관계의 지렛대로 이용하려 하고 있다. 한·중 관계가 날로 강화되고 중국의 대북태도도 달라지고 있기는 하지만, 중국은 북한 핵의 ‘최대 수혜자’로서의 지위를 포기할 생각이 전혀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미래 전망이 어둡기만 한 것은 아니다. 북한은 국제사회에서 더욱 고립되어 가고 있고 북한주민의 외부정보 접근 채널은 점점 다양해지고 있다. 미·중간에는 상호의존성이 높고 아직 중국의 힘이 미국에 미치지 못해 가까운 장래에 미·중간의 패권경쟁이 위기로 발전될 가능성은 적다.

러시아와 일본은 대북관계에서 얻을 것이 많지 않아 상호관계 발전은 명확한 한계를 가진다. 중국도 국제사회의 비판과 중국 국민의 대북한 혐오감 등으로 북한카드 유지비용(cost)이 높아질 경우 북한을 포기할 가능성도 많다. 따라서 우리의 노력 여하에 따라 동북아 지역에서 우리의 활동공간이 훨씬 더 넓어질 수 있는 여지도 있다. 

첫째, 차후 대북·통일 정책은 북한의 실체를 정확히 인식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우선, 북한이 핵을 포기할 것이라는 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3대 세습체제가 이룬 것도, 믿을 것도, 자랑할 것도 그것밖에 없고 헌법에도 핵 보유를 명시해 놓았는데 핵을 포기할 리가 없다. 개혁·개방도 기대하기 어렵다. 북한지도부가 개혁·개방이 3대 세습체제에 미칠 영향을 정확히 간파하고 있어 그들의 말대로 “그 무슨 변화를 바란다는 것은 어리석은 개꿈”에 불과하다. 북한이 남조선혁명노선을 포기했다고 지레짐작해서도 안 된다. 북한의 핵개발은 미국과의 핵 흥정을 통해 주한미군을 철수시킨 후 기습전술로 남한을 점령하겠다는 새로운 적화통일 전략의 핵심 부분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둘째, 보다 현실주의적 입장에서 대북·통일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우리가 ‘맏형’ 입장에서 북한을 포용하고 북한의 안정과 발전을 도우면 통일의 길이 열릴 것이라는 이상주의적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 우리가 맏형’ 역할을 하기에는 북한정권이 너무 영악스럽고 호전적이다. 북한 같은 ‘깡패집단’(rogue state)에게 ‘인간이성’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흡수통일 의사가 없다는 것을 북한에 이해·설득 시킬 수 있다는 ‘허황된 꿈'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우리가 통일 대박론과 체제통합 계획 작성에 여념이 없는데 북한이 우리를 믿으리라고 생각한다면 우리만 어리석게 된다. 그리고 북한의 전략가들은 우리 정책결정자들보다 한 수 위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셋째, 북한의 민주화와 북한주민의 인권강화에 모든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우리가 어떤 노력을 하더라도 북한이 민주화 되지 않는다면 통일이 될 수도 없고 그런 통일은 해서도 안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북한정권과의 화해·협력보다는 북한 장마당의 확대, 북한주민의 인권의식 배양에 더욱 힘써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통일교육의 틀도 바꾸어야 한다. 북한주민의 동의에 기초하지 않은 정부, 즉 민주적 절차를 거치지 않은 북한정권은 ‘불가피한 대화의 상대’일 뿐 화해·협력의 대상이 아니라는 점, 국가체제가 다르면 국가연합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국민들에게, 젊은 세대, 학생들에게 명확히 인식시켜야 한다.

남북관계 개선 조급증에서 벗어나야

넷째, 주변국 관계에서도 우선순위를 명확히 해야 한다. 주변국 관계는 한미동맹을 중심으로 풀어나가야 한다. 말이 좋아 ‘동북아 균형자’ 또는 ‘균형외교’ 운운하지만 우리의 힘이 ‘힘의 균형’을 현격히 변경시킬 수 있을 때에만 가능한 얘기다. 분단 상태에서 한미동맹이 끝나는 날 우리는 중국의 ‘속국’이 되거나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사이에서 ‘낙동강 오리알’이 될 가능성이 많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러시아와의 관계에서는 먼저 우리가 소련 붕괴 후 30억 달러 차관 상환문제를 두고 러시아에 모욕을 주었던 점을 반성해야 한다. 아베 총리의 행태가 혐오스럽기는 하지만, 우리의 1인당 GDP가 일본을 능가하고 우리의 기술수준이 일본과 비슷해 질 때까지는 좀 참아야 한다. 통일을 위해서는 통일한국이 주변국에 위협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설득시켜야 한다는 어설픈 생각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통일한국의 힘을 두려워할 나라도 없고 우리가 설득하지 않아도 주변국들은 스스로 정확한 판단을 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섯째, 남북관계 개선의 조급증에서 벗어나야 한다. 핵을 가진 채 우리의 지원을 우려내 경제발전을 하겠다는 의도가 뻔한데 국민들이 남북관계 개선에 조급증을 보이면 북한을 고무시켜 북한의 변화는 더욱 요원해 지고 우리 정부는 실현 가능성 없는 이벤트성 계획들을 남발해 국민들을 혼란에 빠뜨리게 되기 때문이다.

흔히 신(神)은 디테일 속에 있다고 한다. 통일을 위해서는 새로운 통일방안의 마련보다는 세부사항의 개선이 더욱 중요하다. 따라서 통일에 도움이 될 일을 하나라도 보태고 통일에 장애가 될 요소는 하나라도 더 제거해 나가는 꾸준한 노력이 중요하다. 통일의 길은 멀고 험난한 여정이기 때문이다.  

※염돈재의 독일통일 이야기는 최근 그가 한 세미나에서 발표한 위의 글을 마지막으로 종료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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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돈재

-(現) 성균관대학교 국가전략대학원 초빙교수
-(前) 성균관대학교 국가전략대학원장
국가정보원 제1차장
주 독일대사관 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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