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비용은 얼마나 들었는가?

독일통일 과정에서 가장 큰 주목과 논란의 대상이 된 것이 통일비용 문제이다. 통일 직전 서독정부는 1994년까지 4년간 1,150억 마르크의 통일비용을 투입하면 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통일 후 동독 경제상태가 예상보다 훨씬 열악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에는 2000년까지 10년간 2조 마르크를 투자하면 동독경제를 서독 못사는 주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통일 후 통일비용이 급증, 2005년까지 15년간 총 1조 4,000억 유로(1,750조 원)를 통일비용으로 지출함으로써 독일경제가 큰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이렇게 예상보다 훨씬 많은 통일비용이 소요된 것은 당초 동독 산업의 생산력과 동독 국유재산의 가치를 잘못 평가한데다, 통일 후 동독경제가 급속히 붕괴되어 실업자가 양산되고 사회보장비가 급증한데 따른 것이며, 통일비용 문제는 우리나라에서도 큰 관심 대상이 되고 있다.

독일은 국채발행, 세금 및 사회보험료 인상, 사회보장 혜택의 축소, 예산절감, 국유재산 매각, 공기업의 민영화, 각종 기금의 활용 등을 통해 통일비용을 조달했으며, 국채발행이 많아 통일 후 5년 동안 공공부채가 60%나 증가했다.

통일비용의 정의와 내역

일반적으로 통일비용은 통일을 위해 지출된 모든 비용을 의미한다. 따라서 ①동독재건 및 생활수준 향상을 위한 시설투자 및 환경정화 비용, ②신연방주에 대한 재정지원, ③동독경제를 서독수준으로 끌어올리고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한 민간기업 및 공공기관의 투자, ④신연방주 주민에 대한 사회보장 혜택의 제공, ⑤구동독의 부채청산, 몰수재산 처리와 과거 청산에 따른 보상, 소련군 주둔 및 철수비용 지원 등 1회성 지출 등이 모두 포함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독일정부가 발표하는 통일비용에는 ①도로, 철도, 주택 등 동독 인프라 재건 비용, ②지역경제 활성화 및 농업구조 조정을 위한 경제활성화 지원금, ③연금, 노동시장 보조금, 육아 및 교육 보조금 등 사회보장성 지출, ④독일통일 기금, 연방정부 보조금 등 신연방주 재정보조를 위한 지원금, ⑤각종 인건비 및 국방비 지출 등이 포함되어 있는 반면, 민간투자와 1회성 지출은 포함되지 않는다.

따라서 독일에서의 통일비용은 구서독지역에서 구동독지역으로 지원되는 공공부문의 이전금액만을 의미하며 이전 주체가 연방정부, 서독지역 주정부, 각종 사회보험인 경우만 통일비용으로 집계된다. 총 통일비용은 구서독지역에서 구동독지역으로 이전된 전체금액을 의미하며, 순 통일비용은 총 통일비용 중에서 구동독지역이 연방정부에 납부한 세금과 사회보장 기금 등을 제외한 금액을 말한다.

통일직후 통일비용 예상액

1990년 초 서독정부는 1994년까지 총 1,150억 마르크의 통일비용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했고 이 가운데 200억 마르크는 분단비용의 절감을 통해서, 나머지 950억 마르크는 연방정부, 주정부 및 지방정부가 차관으로 조달할 계획이었다. 서독정부가 이렇게 통일비용을 낮게 추정한 것은 동독이 세계 10위의 공업국이라는 전제하에 동독의 총 재산 가치를 1조 2,000억 마르크 규모로 평가한 데다 동독경제가 일정 수준의 자생력을 갖고 있다고 판단한데 따른 것이다.

통일 전 서독 정부는 동독국유 재산을 매각하면 모든 부채를 청산하고 동독 국민들에게 일정액의 재산권 지분을 나누어 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여 이를 통일조약 10조 ⑥항에 규정해 놓기도 했다. 그러나 실제 소요된 통일비용은 당초 예상약보다 훨씬 많았다.

독일정부가 통일비용 추정액과 그 내역에 대해 공식적으로 발표한 적이 없어 각 연구소들의 추정치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각 연구소들의 통일비용 추정액도 서로 차이가 많아 통일비용 파악에 혼선이 초래되기 쉽다. 주독일대사관이 독일정부의 발표내용과 민간연구소들의 추정내용을 종합하여 집계한 1991년 말 현재 통일비용 추정액은 <표1>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1991년부터 10년간 약 2조 마르크(약 1조 360억 유로, 연 평균 1,036억 유로)이다. 항목별 통일비용 추정액을 보면, 동독의 부채 청산 및 소련군 철수비용 등 통일을 위한 소비성 필수경비 3,700억 DM(18%), 동독재건 비용 6,400억 DM(32%), 동독지역 산업투자 1조 DM(50%)로 소비성 지출은 18%에 불과하다.

더욱이 사회간접자본 시설을 제외한 산업시설 투자는 민간 및 외국 투자를 유치하여 조달한다는 계획이었기 때문에 정부가 부담할 통일비용은 1조 마르크 정도로 예상했다. 특히 동독주민에 대한 실업보험, 의료보험, 연금보험 등 사회보장 혜택 제공을 위해 별도의 큰 비용이 소요되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기존 보험기금들을 활용하고 보험기금 적자 분은 기여금 요율 조정으로 각 보험기금에서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통일비용 지출액 및 지출내역

독일정부의 공식발표에 의하면 1991년부터 2005년까지 15년간 지출된 통일비용은 총 1조 4,000억 유로(1995년 환율로 2조 7,020억 DM, 한화 약 1,750조 원)로 연 평균 933억 유로(1,800억 마르크)가 통일비용으로 지출된 셈이다. 더욱이 이 액수 가운데는 주독대사관 추정액에 포함되어 있던 “통일을 위해 필수불가결한 1회성 지출” 3,700억 DM(1,917억 유로)과 “신연방주 생산성 향상을 위한 투자” 1조 DM은 포함되지 않았다. 따라서 실제적으로는 당초 10년간 6,400억 DM(3,316억 유로)으로 예상했던 “동독재건 및 생활수준 격차해소 비용”이 9,333억 유로로 늘어나 1991년도 예상액 보다 2.8배 많은 통일비용이 지출된 셈이다.

이렇게 예상보다 훨씬 많은 통일비용이 지출된 것은, 앞에서도 지적한 바와 같이 ①동독산업의 생산성과 동독 국유재산의 가치를 과다 평가했고, ②동독산업 시설이 국제기준에 비해 매우 낙후되어 거의 가치가 없었고, ③동독과 동유럽 지역에서 매물로 나온 국유재산이 많아 가격하락은 물론 매각자체가 어려웠고, ④동독경제가 국제경쟁력 부족, 동유럽(COMECON) 시장의 상실, 급속한 임금인상, 행정지원 체제의 미비, 동독인 경영자들의 능력부족, 동독주민의 동독물품 배척 등으로 급속히 붕괴되어 사회보장비 지출이 대폭 증가했기 때문이다

독일정부가 통일비용 지출내역을 자주 발표하지 않아 최근의 지출내역을 확인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표2> 연방건설교통부가 발표한 1991년부터 2003년까지의 통일비용 지출내역을 보면 개략적인 추세를 알 수 있다. 이 자료에 의하면 당초 예상치 않았던 사회보장성 지출이 49.2%를 차지한 반면, 인프라 건설과 경제 활성화 지원을 위한 지출은 19.5%에 불과하다. 그 외에 2009년 국정원 발간자료에서 인용된 칼 마이(Karl Mai)의 자료에 의하면 1991년부터 2003년 기간 중 지출된 통일비용 가운데 소비성 지출이 60%, 투자성 지출이 40%이다. 이렇게 볼 때 독일의 통일비용 지출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평가가 과장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더욱이 연방건설교통부가 발표한 <표2> 자료에는 화폐교환 보전금 330억 유로, 신탁청 적자보전금 1,050억 유로, 동독부채 청산기금 469억 유로, 과거청산에 따른 피해보상 81억 유로, 소련군 철수비용 지원금 67억 유로, 소련군 주둔비용 75억 유로(추정치) 등 1회성 지출경비 2,072억 유로는 포함되지 않았다. 따라서 전체적인 통일비용은 연방건설교통부 발표액 보다 더 많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