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체제 안정돼 보이지만 불안정 요소는 증가해왔다

북한 김정은은 집권 5년 동안 핵실험과 미사일 도발 등을 통해 ‘외부의 긴장을 극대화, 이를 통해 내부의 결속력을 다진다’는 전략을 구사했다. 36년 만의 개최한 당(黨) 대회를 통해 당 중심의 권력구조를 어느 정도 재구축한 것도 성과로 내세울 수 있는 대목이다. 다만 이를 통해 김정은 체제가 안정성을 지속·담보할 것이라고 속단하기엔 이르다는 평가가 많다.

전문가들은 숙청 등 공포통치를 통한 외형적 체제 안정의 지속 가능성 여부에 의문을 제기한다. 또한 내부 시장화의 진전과 붉은 자본가 ‘돈주’의 성장이 계획경제의 골격마저 위협하고 있는 상황도 주시해야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특히 대북라디오방송, USB 등을 통해 외부세계의 정보를 습득한 북한 주민들의 지속적인 각성도 체제 안정을 위협할 주요 요소라고 지적한다. 

또한 북한인권에 대한 국제사회의 압박 역시 김정은 정권을 옥죄는 요인 중 하나라는 지적도 많다. 지난 19일(현지시간) 유엔총회에서는 북한인권결의안을 ‘회원국 합의’로 채택, 북한 내 반(反)인도범죄의 책임 주체로 “리더십(leadership)”이란 표현을 처음 적시했다. 인권 유린의 책임자가 다름 아닌 최고 지도자 김정은이라는 점이 내부에서 확산된다면 민심 이반은 증폭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다만 김정은 체제에 호재(好材)로 작용할 변수도 있다는 점에서 이를 대비할 수 있는 방안을 지속 연구·개발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개성공단 폐쇄 등 대북 강경책을 펼쳐오던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 가결은 북한에게 운신의 폭을 넓게 해줄 수 있고, 무엇보다 이런 상황을 노려 향후 북한이 추가 도발을 강행할 경우 이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컨트롤타워가 부재하다는 점은 오히려 우리에게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다.

데일리NK는 ‘김정은 정권 5년 평가 및 내년도 북한 체제 전망’을 주제로 전문가들과 논의한 내용을 키워드 중심으로 정리해 봤다.

◆ 당대회는 ‘김정은 시대’ 선포식체제안정 자신감 표출



▲ 북한 김정은이 지난 5월 개최된 제7차 당대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사진=조선중앙TV 캡쳐

지난 5월 제7차 당대회 개최는 전통적인 사회주의의 당-국가 체제 확립, 즉 정상국가 체제로의 회귀를 선언한 상징적 사건이었다. 북한은 그동안 1980년 제6차 당대회 개최 이후 무려 35년 동안 당대회를 개최하지 않았었다. 당대회를 통해 거시적인 국가 경제 정책비전을 제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정은은 당대회를 개최, 강력한 지도자를 과시하며 ‘자신의 시대’를 선포했다. 이를 두고 이정철 숭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최근 데일리NK에 “7차 당대회를 통해 (군에 대한)당의 영향력이 형식적으로는 굳건해진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당대회는 이를 증명한 화룡점정이었다”면서 “새롭게 국무위원장이자 당위원장의 대관식을 마친 김정은이 그 정점에 있다는 점을 내외에 선언했다는 사실과 관련돼 있다”고 설명했다. 

물론 당대회에서 김정은이 북한 관영매체가 떠들썩하게 선전하는 것처럼 실제로 ‘휘황한 설계도’를 펼쳐 보인 것은 아니다. 정상적인 국가와 비교했을 때 김정은이 거시적인 국가 경제 정책비전을 제시했다고 보기 힘들다는 게 중론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당대회를 개최했다는 것 자체가 김정은이 권력구조 정비에 바탕을 둔 체제안정에 대한 자신감을 표출했다는 것에 대해서는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김정은이 이처럼 비교적 빠른 시간 안에 체제를 장악할 수 있었던 원동력으로 이수석 국가안보전략연구원 통일전략연구실장은 ‘공포정치를 통한 엘리트 장악’, 오경섭 통일연구원 북한인권연구센터 부센터장은 ‘국가안전보위부 및 인민보안성과 같은 감시기구의 역할 증대’, 이정철 교수는 ‘당 내에서 조직지도부를 통한 통치 메커니즘 구축’을 꼽았다.

◆ 공포정치 통한 체제 유지는 한계 봉착할 것…핵 도발, 김정은 조급함 드러내



▲ 황병서 북한 인민군 총정치국장이 김정은에게 무릎을 꿇고 보고하는 모습이 지난 8월 6일, 북한 관영 조선중앙TV에서 방영됐다. /사진=조선중앙TV 캡쳐

김정은은 올해에도 역시 ‘숙청, 은퇴, 강등 및 재임용’의 공포정치·견장정치 등을 통해 군부 및 관료를 길들이려는 모습을 보였다. 황병서 북한군 총정치국장이 ‘손자뻘’인 김정은 앞에서 공손하게 무릎 꿇고 대화하는 모습이 북한매체에 의해 공개된 것은 김정은 공포정치의 민낯을 여실히 드러냈다는 평가다.

전문가들은 김정은이 공포통치를 통해 권력의 안정화를 이뤄냈을지 모르지만, 그 자체가 체제 불안정성이란 이면을 포함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이수석 실장은 “군부 등 지도부 내 잦은 인사이동은 여전히 김정은 체제가 확고하지 않음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오경섭 부센터장도 “김정은의 통치 리더십이 ‘공포정치’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에 현재는 엘리트들이 저항을 못한다”면서도 “마음속으로는 김정은을 지지하지 않을 개연성이 크다. (엘리트들을 감시하는)북한 내 감시기구가 약화되는 시점에 김정은의 권력 역시 불안정해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공포로 이뤄낸 안정은 언젠가 한계에 봉착할 것이란 설명이다.

또한 핵 개발과 미사일 발사 등의 도발 이면에는 김정은의 체제 안정 욕구에 대한 조급함이 내포돼 있다는 평가도 있다. 북한은 올해 두 차례의 핵실험을 포함 탄도미사일 21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3발 등을 발사하며 전략적 수준의 도발을 감행했다.

이와 관련 고명현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대외정책에 있어 북한은 올해 엄청난 도발을 했다. 장기적으로 부담해야 할 위험을 필요 이상으로 성급하게 부담했다”면서 “이는 핵보유국지위에 대한 욕구, 김정은의 조급함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고 연구위원은 “김정은은 북한이 국제사회로부터 핵보유국으로 인정받는 것이 쉬울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이렇게 (올해)무리하게 도발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 2017年 北체제 안정성…北내부 ‘시장화, 돈주의 성장, 외부정보 유입’ 주목해야

대외 상황과 별개로 북한 내부에서도 체제 이완 요소가 늘어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이 같은 체제이완의 조짐을 곧바로 체제붕괴의 신호로 보기에는 다소 무리지만 다른 사회주의 정권 붕괴가 우발적인 사건에서 시작됐다는 점에서 북한 내 ‘시장화의 진전’과 ‘돈주’의 성장이 가져올 변화를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부 소식통들에 따르면 돈주 주도의 시장화에 북한 당국의 고민도 커진 것으로 전해진다. 돈주가 비약적으로 성장하면서 북한 당국은 이제 단순히 시장을 통제하는 수준으로는 이들의 성장을 막을 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다는 것. 북한 당국은 핵실험 등에 따른 국제 사회의 고강도 제재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 내부 시장(사금융도 포함)을 활용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때문에 전문가들은 ‘시장화’의 진전이 점진적으로 북한 체제의 안정을 위협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북한 당국으로선 ‘계획경제’라는 체제의 골격까지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기 때문이다. 사적 경제영역이 북한을 지탱하는 주요한 기제가 된 상황에서 ‘통제로의 회귀’를 꾀할 수 없을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 

오경섭 부센터장은 “북한 내부에서 정치적으로 변화할 요인은 거의 없다. 내부에서 변화를 촉진할 요인이 있다면 ‘시장’일 것”이라고 지적했고, 정영태 동양대학교 군사연구소 소장은 “장마당을 통한 자본주의 확산이 김정은 정권의 변화를 촉진하는 주요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또한 전문가들은 북한 내 ‘변화촉진’ 기제와 관련, 외부 정보 유입 부분도 주목하고 있다. “드론, USB 등을 통해 유입된 외부 정보가 북한 주민들에게 김씨 일가의 허구성을 밝히는 날, 북한은 스스로 무너지게 돼 있다”고 태영호 전 주(駐) 영국 북한대사관 공사가 27일 밝힌 것처럼 북한 주민 변화에 외부 정보가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김영환 준비하는미래 대표는 “철저히 폐쇄된 국가에 살고 있는 북한 주민들은 외부정보에 매우 민감하다”면서 “북한 내부의 정보자유가 확대되고 외부로부터의 정보유입이 촉진되면 북한주민의 의식변화를 유도해 북한을 아래로부터 변화시키는 동력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 2017年 北체제 안정성…北외부 ‘트럼프 대북정책, 중미 갈등, 韓차기정권’ 살펴봐야



▲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左)과 북한 김정은(右). /사진=연합

외교적인 측면에서 2017년은 북한에게 있어 위기와 기회라는 요소가 상존하는 시기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강력한 국제사회의 공조로 위기를 맞을 가능성은 여전하지만, 미중 관계의 불확실성을 북한이 오히려 기회로 활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때문에 전문가들은 북한이 차기 미국 행정부의 대북정책 방향이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은 시점에서 향후 자신들에게 유리한 국면을 조성하기 위해 외교력을 중국에게 집중할 것으로 내다봤다. 또한 최근 트럼프 당선인의 발언으로 미중 간 갈등 격화가 예고된 상황을 북한이 적극적으로 활용할 것으로 예측했다.

오경섭 부센터장은 “북한은 중국을 자기편으로 묶어 놓기 위해 외교적으로 총력을 기울일 것이다”면서 “이는 유엔의 대북제재 국면에서 중국이 더 많은 제재에 동참하지 않도록 하는 노력과도 연결되어 있다”고 설명했다. 

중국 전문가인 박종철 경상대 교수는 “후보 시절 그리고 최근 트럼프의 발언을 놓고 봤을 때 향후 미중간의 갈등이 심화될 것이다”면서 “이는 곧 북한의 전략적 가치가 상승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향후 무역 분야, 베트남 문제, 북핵 등을 놓고 미중 간의 투쟁이 예상된다”면서 “이런 갈등 속에서 중국은 북한을 포함한 주변국들이 상당히 필요할 것이다. 이는 북한에게 다소 좋은 점이고, 결과적으로 북한으로선 트럼프가 당선된 것이 나쁜 것이 아니다. 이 상황을 적극 이용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향후 우리 정치권이 정세를 오판할 경우 김정은 체제 강화에 빌미를 제공할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고명현 연구위원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 등의 흐름은 북한에게 사용할 수 있는 카드를 많이 주게 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북한 입장에서 상황이 나쁘지 않은 것”이라면서 “우리 정치권은 정세를 오판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주도적으로 남북관계를 이끌어 갈 수 있다는 장밋빛 환상보다는 김정은 체제 분석에 더 힘을 실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