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민주화 이끈 ‘영웅’ 김영삼 前대통령 22일 서거

김영삼 전(前) 대통령이 22일 향년 88세로 서거했다. 김 전 대통령은 제14대 대통령으로 한국의 민주화를 이끈 상징적인 인물이다. 


김 전 대통령은 이날 오전 0시 22분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 중환자실에서 패혈증과 급성심부전으로 숨을 거뒀다고 오병희 서울대병원장이 이날 긴급 브리핑에서 밝혔다.


김 전 대통령은 지난 19일 정오께 고열과 호흡곤란 증상으로 입원했으며, 상태가 악화돼 21일 오후 중환자실로 옮겨 치료를 받았지만 끝내 사망했다고 오 원장은 설명했다.


김 전 대통령은 1927년 12월 20일 경남 거제시 장목면 외포리에서 아버지 김홍조씨와 어머니 박부련씨 사이에서 1남 5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본관은 김녕, 호는 거산이다.


김 전 대통령은 1951년 3월 손명순 여사와 결혼해 슬하에 2남(은철·현철) 3녀(혜영·혜경·혜숙)를 뒀다.


6·25 전쟁 발발 직전인 1950년 5월 장택상(1893~1969) 전 국무총리의 국회의원 선거운동원으로 활동했던 김 전 대통령은 1951년 장 전 총리의 비서관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장 전 총리가 1951년 5월 국무총리에 임명되자 그는 인사담당 비서관에 임명됐다.


이후 1954년 5월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 후보로 경남 거제에서 출마해 만 26세의 나이로 최연소 국회의원에 당선된 이후 5·6·7·8·9·10·13·14대 국회의원 등 9선을 지냈다.


김 전 대통령은 정치생활을 하면서 여러 중요한 직책을 역임했다.


1963년 민주정의당 대변인을 시작으로 1965년 민중당 원내총무, 1967년 신민당 원내총무(5년간 5선, 최다선 원내총무)등을 맡았고, 1970년에는 신민당의 대통령후보 지명대회에 출마를 하기도 했다. 당시 고(故) 김대중 대통령이 신민당의 대통령 후보로 지명됐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유신을 선포한 1972년 10월 후에는 1974년·1979년 신민당 총재를 맡아 야당의 지도자 역할을 했다. 1979년에는 박정희 정권에 의해 최초로 국회의원 직에서 제명되기도 했다.


이에 김 전 대통령은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오고야 만다”며 독재정권에 대한 저항 의식을 드러내는 등 민주화 운동을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후 전두환 정권 하에서 1984년 민주화추진협의회의 공동의장과 1985년 신한국민주당의 고문, 1987년·1988년에는 통일민주당의 총재를 맡았다. 1987년 6월 민주화항쟁 이후에는 직선제로 실시된 제13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다.


당시 시민들의 정권교체 열망에도 불구하고 김영삼·김대중 두 후보는 후보 단일화를 이루어내지 못하고 노태우 전 대통령을 당선되는 단초를 제공해 시민들의 원망을 사기도 했다.


김 전 대통령은 1993년 14대 대통령에서 김대중 후보를 누르며 당선돼 마침내 대통령의 꿈을 이뤘다.


이후 남북 정상회담이 추진됐지만 뜻을 이루지는 못했다. 1994년 7월 북한 김일성이 사망했고, 이에 김 전 대통령은 “보름 후면 남북 정상이 한자리에 모여 민족의 장래를 위해 허심탄회하게 논의키로 했는데 이 소식을 접하면서 아쉽게 생각한다”고 말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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